▲김태우
광화문에서 불 타오르는 촛불의 하늘거림, 서울의 심장에서 지축을 울리며 퍼지는 사람들의 함성, 밤하늘로 새떼처럼 일제히 날아오르는 사람들의 노래. 지난 27일 촛불행사에 참가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이날을 기억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 올, 한 올 촘촘히 수놓은 자수처럼 촛불이 모여 커다란 '불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과 섞여 노래하고, 춤추며, 소리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들과 함께 쓰고 있음이 느껴졌다.
지난 보름 동안 나는 한국근대사에 대해 곰곰이 고민했다. 이 땅의 역사가 어떻게 쓰였는지, 어떻게 군화발에 짓밟혔는지, 어떤 자들이 국민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왔는지. 그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대 속에서도 시민은 어떤 모습으로 저항하고 일어났는지.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진실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다면 오욕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 되살아 나는 역사의 악령들에게 시민의 힘을 단호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우리 역사의 뻔뻔스러운 악역들’을 청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단면을 지난주 방영했던 MBC 시사프로그램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은 잘 보여주었다.
방송 중 “광주 항쟁 당시 시민군을 폭도로 규정한 보도가 정당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계엄령 상황에서 (질문한 기자가) 기자를 했으면 어떻게 했겠냐?”고 반문하는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서는 조금의 반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광주항쟁 발발 당시 그는 <조선일보>의 편집국장이었다. 피 흘린 사람들 앞에서, 이유없이 죽어간 사람을 잃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최 전 대표는 전두환 정권의 총애로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노태우 정권에서는 문화공보부 장관을 역임했다. 심지어 올 신정에는 전두환씨를 찾아가 ‘차떼기 정당’ 국면을 벗어날 수 있는 비책을 묻기도 했단다. 이에 전 씨는 “심판을 빨리 받고…”라고 답한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천 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전씨가 아닌가. 최 전 대표는 그렇게 찾아갈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아울러 현재 김기춘 법사위원장은 노태우 정권 당시 검찰총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박정희 정권 때에는 중앙 정보부 대공수사부장, 전두환 정권 때에는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유신헌법의 기초를 마련했고 공안검사로 널리 이름을 떨친 사람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결실을 맺었지만, 3당 통합이라는 사상 초유의 야합은 민주화의 열망을 좌절 시켰다. 그 때, 바로 3당 통합 추진 위원으로 활동한 사람이 박관용 국회의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