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국수집이 아니에요?"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4.03.30 07:52수정 2004.03.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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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컴퓨터 통신이나 팩시밀리를 사용하기 위해 전화를 한 대 서재에 설치했다. 주로 나만 사용하는 전화이다. 그런데 새 전화를 설치하고 나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오는데 거의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느릿느릿 박철
“거기 국수집이지요?”
“아저씨! 여기 ○○○상회인데 국수 다섯 그릇만 빨리 갖다 주시겨.”
“왜 이리 배달이 늦어요. 빨리 갖다 주셔야지 배고파 돌아가시기 직전인데….”



아마 내 서재에 설치한 전화번호가 국수집에서 사용하던 전화번호였던 모양이다. 하루에도 대여섯 차례 많을 때는 열번 이상 국수집을 찾는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번호는 맞는데 여긴 국수집이 아니에요.”


밖에서 일을 하다 전화벨 소리가 울려 뛰어 들어와 받으면 영락없이 잘못 걸려온 전화이다. “거기 국수집이지요?”하고 묻는 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어떤 사람은 순 반말이고 심지어 빨리 안 갖다 준다고 욕을 해대는 사람도 있다.

국수집이 아니라고 해도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는가 해서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지금까지 똑같은 사람에게 네 차례까지 온 적이 있다.

한번은 몸살이 나서 링거 주사를 맞고 있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불편해서 전화를 안 받았더니 한참 후에 끊긴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또 벨이 울린다. 하는 수 없이 낑낑거리며 일어나서 간신히 수화기를 집어들었더니 “거기 국수집 아니에요?”한다.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전화번호를 바꿀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지역전화 번호부에 올라 있어서 바꾸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그냥 두었다.


어느 때인가는 어떤 사람이 막 욕을 하면서 왜 빨리 안 갖다 주냐고 소리를 지른다. 나도 약이 나서 “지금 가요. 조금만 참으세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 그 사람 국수도 먹지 못하고 급한 성질에 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만 6년을 잘못 걸려온 전화에 시달렸다. 그러다 작년 봄부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전화를 이쪽에서만 걸 수 있게 하고 다른 데서 오는 전화는 벨이 울리지 않도록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우리집에 전화를 해도 왜 받지 않느냐고 한다.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꼭 받아야 할 전화를 받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수가 있다. 그리고 어쩌다 라디오방송에 전화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거실에 있는 전화를 이용할 경우 아이들이 떠들어서 잡음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새 전화기를 사서 다시 종전처럼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요즘도 가끔 “거기 국수집 아니에요?”하고 전화가 걸려온다.

아내에게 가끔 “여보, 우리 목회 그만두고 국수집이나 할까? 전화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기 국수집 아니에요?”하고 잘못 걸려온 전화는 어찌 보면 나를 수련할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잘못 걸려온 전화도 친절하게 받는다. 생각난 김에 오늘 저녁에는 국수를 삶아 먹을까 싶다. 그런데 아내가 조금 저기압이어서 말을 꺼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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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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