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사에서 농성중인 YH 여성노동자들.
우리들의 이십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고, 이제 님과 저는 오십 줄에 들어섰습니다.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변해버린 우리들만큼이나 우리 사회 역시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 개인적으로 가슴아픈 일들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국사회에 유사 이래 최대의 부를 가져다준 산업화·근대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상처가 없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며칠 전 텔레비전에 나오는 당신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차분하고 이지적인 외모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게 보기 좋았습니다. 하지만 님께서 한나라당의 대표로 뽑히게 되었다는 소식은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이 나라의 특권지배층들이 지난 30년 동안 저질러온 일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사쿠데타당', '극우반공당', '정치범살인당', '민주화탄압당', '지역감정당', '민족분열당', '부정부패당', '수구기득권당', '광주학살당', '반노동자당', '반서민당', '재벌당', 그리고 '차떼기당'에 이르기까지 온갖 끔직한 이름표가 붙은 당이 바로 한나라당입니다. 그런 당의 대표로 선출되면서 당의 과거사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당신의 모습 앞에 저는 절망했습니다.
경제발전의 진정한 주역은 묵묵히 일한 노동자들
저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산업화 세력이라는 표현에 심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청춘을 산업화에 바친 '산업전사'의 한 사람으로서, 기업과 국가의 부를 창출하기 위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렸던 근로자의 한 사람으로서, 남의 노동에 기생하지 않고 자기 노동력에 의지해 힘껏 일했던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당신이 말하는 '경제발전의 주역이 박정희와 3공 세력'이라는 주장에 모멸감을 느낍니다.
한국사회에 부를 가져다 준 산업화 세력, 경제발전의 진정한 주역은 님의 아버지나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수구기득권층이 아니라, 당신들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을 참혹한 노동환경에서 묵묵히 일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근대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했던 농민들이었습니다. 자기 몸 하나 믿고 사회복지제도 하나 변변치 않은 천민자본주의를 견뎌냈던 이 땅의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님의 지도력 밑에서 한나라당이 깨끗하고 건전한 정당으로 거듭나길 기원합니다. 하지만 제 직감일까요. 님을 대표로 뽑은 한나라당이 다급하게 대구·경북에만 국한된 확실한 지역주의 정당으로 전락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하나의 '자민련'이 탄생하는 것이겠지요. 한나라당을 이끄는 님은 여전히 시대에 역행하며 지역에 기생하는 수구정당의 상징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한 걸음 전진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