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22

좌충우돌 백포교

등록 2004.03.30 17:51수정 2004.03.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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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백포교

이리저리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백위길은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 뒤 포교 김언로에게 기찰할 시의 주의사항과 은어(隱語)등을 지도 받았다.

"이포교가 자네더러 무조건 바로 야간에 순라를 돌라고 했단 말인가? 어찌되었건 나로서는 자네에게 바로 그런 임무를 맡길 수 없네. 오히려 포졸들에게도 신출내기라고 무시나 당할 것이 뻔하고 돌아야할 길도 몰라 제대로 순라를 볼 수도 없을 텐데 어찌 그런 단 말인가. 시간이 좀 오래 걸릴 지라도 나와 동행함세."


백위길은 김언로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순라를 돌기 위한 복색과 도구들을 부지런히 챙겼다. 붉은 색의 두꺼운 종이를 댄 암등(暗燈)을 준비하고, 발소리가 날 새라 쇠털을 댄 미투리를 신고서 소매에는 자루 짧은 쇠도리깨를 집어넣었다. 그리고서는 미리 준비해둔 오라까지 백위길이 집어들려 하니 김언로는 웃으며 손을 내 저었다.

"오라는 챙길 필요 없네. 포졸들이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네. 그리고 종이광대는 챙겼나?"
"종이광대라니오?"

백위길은 뭘 말하는 지 몰라 이곳저곳을 살펴보았고 김언로는 껄껄 웃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이 사람 맨꽁무니일세!"
"예?"
"종이광대를 챙겨가지 않았다는 말일세. 혹시 도둑을 잡으면 그냥 길에서 포도청까지 압송해 갈 터인가? 어떤 오해나 일이 있을지 모르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얼굴에 반드시 종이광대를 씌워 데려 가게나. 정신나간 포교들이 가끔씩 이를 잊곤 하는데 자네는 그러지 말게."
"......예."
"종이광대는 내가 챙겨 둘 테니 축시(丑時)가 되면 나가세나."

백위길은 순라 시간을 기다리느라 그저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졸아대었고 급기야는 골아 떨어졌다. 얼마나 잤을까. 멀리서 축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백위길은 자신의 몸을 누군가 흔들어 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 가세나."

백위길은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자신을 흔들어 깨운 김언로를 쳐다보았다.


"어허 이 사람. 당췌 정신을 못 차리는군! 어서 서두르게."

이미 도열해 있는 네 명의 포졸들을 이끌고 김언로는 나는 듯이 걸어갔고 백위길은 제정신이 아닌 양 흘러내리는 전립을 잡으며 허위허위 그 뒤를 쫓아갔다. 뒤따르는 포졸들은 그 모습을 보며 노골적으로 키득거렸다.

"아따 포교님! 전립이 뒤로 훌러덩 젖혀졌습니다. 그런데 허리를 굽혀 걷는 모양이 마치 돌덩이로 된 전립이라도 쓴 모양이오."

한 포졸이 시답잖은 소리를 하지 다른 세 명의 포졸들이 크게 웃어버렸다.

"네 이놈들! 정숙함을 지켜야 할 일에 어찌 이리 소란스럽단 말이냐! 모두들 치도곤을 당하고 싶으냐?"

김언로의 엄포에 포졸들은 뜨끔해 하며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백위길의 곁에 바싹 붙은 김언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포교 생활 편하게 하자면 포졸들을 엄하게 다루고 종사관들에게는 눈치껏 적당히 꼿꼿해야 하네."

백위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뒤 따라는 포졸들을 돌아보았다. 글들이 맡은 일은 도둑이 돌아다니지 않는가, 혹은 화제가 나지 않았는가를 살피는 일이었지만 늘 하는 일이라 그런지 왠지 성의가 없어 보였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담을 넘는 모습이 백위길의 눈에 들어왔다.

"김포교님! 뒤를 보시옵소서."

숨을 죽이며 내뱉는 백위길의 말에 김언로가 돌아보았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보이질 않거늘 무슨 일인가?"
"누군가 담을 넘었소이다! 도둑임에 틀림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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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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