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생활이 조금은 즐거울 줄 알았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어느 여고 1년생의 글을 읽고

등록 2004.03.30 21:39수정 2004.03.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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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고 있는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보충자율학습과 관련된 글을 쓸 때마다 이런 생각이 앞을 가로막는다. 원칙과 정도를 무시하고 현실논리만을 내세워 파행으로만 치닫다보니 이제는 이성과 논리와 대화로 풀기에는 너무도 원점에서 멀리 가버렸다는 절망감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위에 계란 던지는 격인 이런 무용한(?)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은 강제적인 보충자율학습으로 인해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마음의 고통과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다음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쓴 글이다. 원문을 다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저는 올해 수원의 모 여고에 입학한 신입생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항상 7시에 일어나다가 5시 30분에 일어나려니 정말 죽을 맛이더군요. 3년간 그래야 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반쯤 정신 나간 상태에서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공부가 될 턱이 있습니까? 고등학교 생활 야자, 0교시 있어도 그래도… 그래도 조금은 즐거울 줄 알았습니다…. 정말 토요일 저녁에 오랜만에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데 눈물이 울컥 나올 뻔했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꾹 참았습니다.

하루 평균 4시간을 자니, 가장 집중해야 할 수업시간에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잘 집중이 안 됩니다. 그리고 한 반의 4분의 1 정도는 변비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여유 있게 생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픈 배를 움켜쥐고 학교에서 15시간을 버팁니다. 공부? 전혀 안됩니다. 저녁 10시까지 남아서 한다고 4시간 동안 공부한 내용이 다 머릿속에 들어갈까요? 공부 능률은 오르지 않고 스트레스만 쌓일 뿐입니다.

대부분 학생들은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하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한국의 교육제도는 어쩔 수 없다고…. 대학 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치열하게 경쟁해서 싸워 이길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학교에서 타율적으로 질리도록 공부하다 대학 들어가서 어떻게 됩니까? 모든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이 모두 바뀌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잘 할 것입니다.


이 글에서 유난히 가슴을 짓누르는 대목이 있었다.
‘공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공부해야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그는 왜 공부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을까? 그 답이 글에 나와 있다.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와 교육방송을 듣거나 숙제를 하다가 파김치가 되어 곤한 잠에 떨어지는 그런 숨 가쁜 일정 속에서 어찌 한가하게 공부하는 이유를 자신에게 캐물을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의 주변에는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물어보거나, 그 답을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어쩔 수 없다 식의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심어주거나,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경쟁해서 싸워 이길 수밖에 없다는 약육강식의 비정한 논리를 주입시켜준 교사가 있었을 뿐. 현실이 그러한데 달리 말할 수도 없었겠지만, 글을 쓴 학생이 고3 수험생도 아닌 고1 신입생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에서도 고3은 힘들다>라는 책이 있다. 지구상에 입시교육을 완전히 탈피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떤 상징적인 함의가 담겨있는 제목이다. 하지만 고3이 힘든 것과 전체 고교시절이 힘든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간디학교 보고서인 <간디학교에서 행복 찾기>에도 우리 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에서 입시교육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간디학교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넌 공부를 왜 하니?”라는 질문은 “넌 왜 사니?”라는 물음만큼이나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다. 너무 막연하기도 하지만, 깊은 철학적 사색을 요구하는 질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사는 의미를 알아가듯이,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이유를 찾아보는 지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공부하는 이유를 찾고자 하는 아이들의 건강한 정신적인 갈망을 도외시하는 어른들의 태도이다.

‘왜 공부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공부’ 속에 있다. 공교육이 정상화되어 학교에서 교육과정이 제대로 운영되기만 한다면 학생들은 자신이 배우는 교과목을 통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어 과목을 공부하다보면 모국어를 바르게 쓰는 법을 배우고 감동적인 문학작품을 통해서 자기 발견의 기쁨과 함께 타인과 세계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쌓게 된다. 또 정치 과목은 국민으로서 참여의식을 높여주고 현실 정치인들을 판단하는 안목도 키워줄 것이다.

이러한 얘기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현실이란 바로 입시교육이 아니겠는가? 모든 교과목이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소중하고 다양한 가치들을 ‘입시’ 혹은 ‘성적’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블랙홀로 빨아들임으로써 생을 풍성하게 해줄 약속의 씨앗들을 짓이고 있는 것이 바로 입시교육이요, 입시교육을 심화시키는 강제적인 보충자율학습이라는 얘기다.

입시교육의 폐해와 파행적인 보충자율학습의 부당함을 주장하면 흔히 돌아오는 말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대안은 정상을 되찾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듯이 첫 수업을 0교시가 아닌 1교시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충수업도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을 국가의 예산으로 지원해주는 제대로 된 보충수업을 하는 것이다.

‘희망자 싸움’이란 말이 있다. 학교의 교육정상화를 원하는 뜻있는 교사들이 파행적인 보충자율학습을 막아설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종의 전술적(?) 용어다. 내용은 별것 아니다. 교육부의 지침대로 희망자에 한하여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다른 담임들은 학교장의 명을 받아 다 강제로 시키는데 자기만 원칙대로 희망자 조사를 하여 실시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우군이 되어 행동통일을 해보자는 궁여지책인 셈이다.

교육부가 보충자율학습을 희망자에 한하여 실시하라는 공문을 일선학교에 내려보냈는데도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학교 당국과 싸움을 걸어야만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더 기막힌 것은 당연히 백전백승해야 마땅한 이런‘희망자 싸움’에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교육관청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다. 보충자율학습을 희망자에 한하여 시행하라는 공문을 하달하고, 이를 어기는 학교에 대하여는 엄중 문책하겠다는 말을 해놓고도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교육부는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직무유기를 일삼고 있는 꼴이다.

이제 학교에서는 ‘희망자’라든가 ‘자율’이라든가 하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교사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런 별종들은 머지않아 박물관에서나 가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는 교사도, 희망을 꿈꾸는 아이들도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학교의 위기라는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우리의 부끄럽고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맑은 눈을 가져야 한다. 맑은 눈으로 들여다보며 어디서부터 실이 엉킨 것인지 찾아내어 원상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학문의 출발점은 호기심이 아니었나? 아니면, 세상에 대한 사랑? 혹은 자기 삶에 충실한 당당한 시민?

이런 건 어떨까? 한 사람의 사랑스러운 남편이거나 아내가 되는 것은. 그런 소박한 꿈을 위해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아야 한다. 도덕시간에 배운 지식으로 충분하지만 삶의 양식이 되지 못하고 성적만 올리는 죽은 지식으로서는 곤란하다.

아주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어른들은 한 소녀의 간절한 바람 대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갖고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하나 둘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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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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