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제 국한말고 소외 이웃에 눈길을"

<그녀의 무게>로 여성영화제 출품 임순례 감독

등록 2004.03.31 17:32수정 2004.03.3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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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어서일까. 보면 그뿐이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스크린의 이면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영화를 보기 힘들다.

<우중산책>,<세 친구>,<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의 영화를 통해 ‘삶의 이면에 있는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임순례 감독은 <그녀의 무게>라는 작품으로 제6회 여성영화제에 참여한다. 여성감독의 눈으로 바라본 영화계와 예술계 그리고 삶의 풍경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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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김희수

요즘 임순례(43·사진) 감독은 너무도 바쁘게 살고 있다. 차기작 <무림고수(가제, 두 명의 청년이 전국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는 내용의 로드무비)> 시나리오 마지막 작업 중이고, 부산에 위치한 영산대학교 영화영상학부에서 전임교수 활동도 하고 있다.

“대학에 출강하는 건 후학 양성의 목적도 있지만, 생계 해결을 위한 호구지책의 면도 큽니다. 젊은 학생들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되기도 하지만 시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전히 젊은이들이 착하고 순수하다는 걸 느껴요.”

“성형미인 천민자본주의 표본”

여성영화제 참가작인 임 감독의 단편 <그녀의 무게>는 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여섯 개의 시선’이라는 옴니버스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는 작품이다.

취업을 앞둔 여고생들이 다이어트와 성형 등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여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외모’에 대한 문제의식이 배어 있다.


“똑같은 모습으로 성형수술을 한 젊은 여성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SF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어요. 가부장문화, 천민자본주의, 표피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첨단 인터넷문화가 합작으로 만든 폐해라고 생각해요.”

그렇듯 <그녀의 무게>에도 ‘소외’를 당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늘 그렇게 임 감독의 화두는 ‘소외’였다. 그 점에서 ‘소외의 눈으로 읽는 여성운동’의 몫을 생각하게 만든다. 일부 여성운동 진영이 커다란 ‘소외의 스펙트럼(노동자, 장애인, 농민,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의 연대)’을 보지 않고 오로지 여성문제에만 몰두해 진보진영과 마찰을 빚기도 하는 것에 대해 임 감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a 여자상업고등학교 취업반 학생들의 외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담은 ‘그녀의 무게’

여자상업고등학교 취업반 학생들의 외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담은 ‘그녀의 무게’ ⓒ 우먼타임스

“주류 남성의 사고가 아닌, 여성적 사고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함께 배어 있어야겠죠.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여성운동계가 긴밀하게 소통했으면 해요. 최근, 여성운동을 하던 사람이 보수정당에 진출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어요.”

임 감독은 여성영화제 초창기부터 참여했다. 작년에는 개막작 <미소>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임 감독은 여성영화제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숨기지 않으면서 “해마다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여성영화제를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발상의 전환으로 다양한 시선을 건져내는 ‘여성의 시선’이 좋다”는 것.

‘우중산책·와이키키...’ 등 삶의 이면 가감 없이 표현

임 감독의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작가, 연출가가 영화를 의식하지 말고 좀더 뮤지컬답게 바꾸면 좋을 것 같다”는 ‘열린’ 생각을 표출했다. 그의 생각처럼 각 문화 장르가 발전적으로 교류하는 게 ‘시대의 흐름’일 터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화감독의 리더십문화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막내 스태프도 챙기는 어머니 같은 모습이나, ‘부드러운 칼’을 지닌 카리스마로 젊은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임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예전에는 감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현장 장악력’이었죠. 근데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해요. 저는 원칙과 고집은 지키되, 부드럽고 자유로운 현장을 선호해요. 요즘은 저보다 훨씬 부드러운 남자 감독도 많고, 남자보다 카리스마가 강한 여성감독도 많아요.”

영화감독들의 다양한 리더십이 적용되었기 때문일까. 국내 영화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대박영화’를 양산하면서 바야흐로 ‘천만관객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몸집만 크다고 건강한 것은 아닐 터. 여기저기서 아픈 소리가 들려온다. ‘대박영화’의 양산이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것.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작가주의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임 감독도 역시 우려하고 있다.

“와이드 릴리즈 방식으로 한꺼번에 풀고 거둬들이는 배급시스템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죠. 그리고 관객들의 획일화된 취향을 지적할 수 있죠. 똑같은 형식의 대박영화도 계속 나오면 식상합니다. 그러면 한국영화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어요.”

중심보단 주변가치 더 소중

임 감독은 늘 그렇게 중심이 아닌 ‘주변의 가치’를 강조했다. 소외된 사람들을 따스한 눈길로 영화에 담아내면서 ‘주변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임 감독이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활동을 했던 이유도 그러한 맥락이리라. 그는 현 탄핵정국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노 대통령 취임 후 실망이 컸어요. 대미 외교자세, 노동자·농민 관련 정책 등이 기대와 달랐어요. 이라크 파병 결정은 결정판이죠. 하지만 야당의 탄핵은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월권행위죠. 기득권 세력이 이토록 뿌리 깊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올바른 국민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끌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삶의 이면에 담긴 의미’에 주목하며 ‘주변의 가치’를 담아내는 임 감독의 독립·저예산·작가주의영화도 ‘문화예술의 수레바퀴’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수레바퀴를 끌기 위해 노력하는 관객이 많을 때, 문화예술의 역사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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