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거대 야당에 의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다시 거리의 정치가 시작되고 탄핵 반대의 목소리가 전국을 메아리치면서 16대 국회에 대한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탄핵안을 가결시킨 정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소수 여당의 지지가 급등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의 판도와 이슈 자체가 변화됐다. 이러한 상황 자체를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며 자칫 감정의 정치로 한국을 다시 격동의 상황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존재한다.
평화롭게 진행되는 촛불 시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국민들의 정치 의식 수준은 상당한 정도에 이르지만, 선동의 정치가 등장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좀 더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이라는 장기적인 관점 속에서 총선과 그 이후를 전망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글에서는 탄핵 정국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총선 이후의 과제에 대하여 검토해볼 것이다.
탄핵 정국에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
현 상황을 가져온 탄핵은 의회의 4분의 3을 넘게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 연합이 국회의원 임기 만료를 불과 한달 앞둔 상황에서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뒤집으려 한 사건이다. 그리고 탄핵은 당내 문제와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두 야당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물이다.
이번 탄핵이 정치적 반대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정략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은 탄핵사유를 검토해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내란(內亂) 또는 외환(外患)의 죄를 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 면책 특권을 부여하고(헌법 84조), 국회에는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탄핵소추권을 부여(헌법 65조 1항)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의 규정의 적용은 한국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중시하는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임을 고려해 볼 때 국회가 탄핵소추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직의 수행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범죄와 비행(非行)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 고정적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제의 헌법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내세운 3가지 탄핵 사유(선거중립의무 위반, 대통령 측근 비리, 불법 대선자금)를 살펴보면,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절차적 합법성을 취한 대통령 중심 헌정체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대선 불법자금 문제는 대통령 되기 전의 행위이기 때문에 직무집행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측근 비리 문제도 대통령 관련 부분이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는 선거 중립의무 위반이다.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현재까지 대통령의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상이한 분할 정부적 상황은 한국 정치의 패턴이 되었고, 정부 대 의회의 대결은 일상적인 한국 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었다. 이 대결 양상 속에는 대통령 중심제에 내재되어 있는 대통령과 의회가 모두 국민주권을 대표하게 되는 이중 대표성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국민들의 사회적, 생활적 지지에 기반하지 않은 한국 보수 독점 정당체제 속에서 이 극단적인 대결 양상은 제도 내의 타협의 정치는 설 자리가 전혀 없게 되었다.
민주주의란 사회의 갈등과 균열이 정당으로 조직되고 그것이 정치 경쟁의 중심적 단위가 되는 체제임에도 정당들이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 그리고 기능적이고 계층적인 이익에 뿌리내리지 못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중의 참여, 대표, 책임의 원리가 정당을 통해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의 정당체제는 기본적으로 사회로부터 괴리된 정치 엘리트 간의 균열에 따른 단기적 손익 계산에 의한 이합집산의 결과물이다.
야당 지도부가 파국적 전략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로부터 괴리된 보수 정당 체제이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보수 정당 체제가 지속하는 한 정치 위기의 일상화는 촛불시위를 통해 분출된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총선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총선과 이후의 과제
이번 탄핵이 만들어낸 위기의 해결은 진정한 국민의 의지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다가온 총선에서 투표라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통하여 국민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이번 17대 총선이 탄핵정국에 대한 심판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하고 그 해결과 정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탄핵 가결이라는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보수독점 정당체제를 타파하고, 고질적인 지역정당체제의 해소하며, 사회의 갈등과 균열에 기반한 정당체제로 재편함으로써 다양한 국민들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대변하고 타협의 정치문화 형성에 단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탄핵 이후 현재 상황 속에서 열린 우리당은 가장 큰 수혜를 누리고 있고, 선거에서 최대의 승리를 이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정당 활동에 따른 지지도의 상승이 아닌 사회적 세력 관계로부터 단절된 정당 재편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얼마만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지 의심스럽고 그 위험성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열린 우리당에 대한 지지 자체가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의 확실한 정치 개혁의 의지와 선명성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닌 탄핵 정국 속에서 반사이익으로 얻은 점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미 여론조사에서 열린 우리당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사회적 갈등과 균열에서 벗어나 열린 우리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야당의 비판적 기능이 무력화 되거나 또 다시 다수의 독재적 구도가 형성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인 지지기반이 없는 정당 체제의 해소와 타협의 정치문화 형성이 절실히 필요한 한국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분명히 경계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야당에 대한 염증으로 생겨난 반사적인 열린 우리당에 대한 지지로 인해 또 다시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좌초되거나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을 통해 보수 독점 정당 구조를 깨어버리는 것은 한국 정당 정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고, 국민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 정당간의 생산적 경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도의 형성을 기대할 수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