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지고 가는 일꾼들. 루클라에서 남체까지 이들이 지고 가는 등짐의 가격은 무게 1kg당 12루피(200원)에 불과하다.김남희
에베레스트. 티벳명으로는 초모 랑마, 네팔명으로는 사갈마트.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 산을 알게 된 이후 늘 내 가슴 한켠에 살아 숨쉬고 있는 이름.
세계적인 등반가 조지 맬러리나 라인홀트 매스너의 글을 읽을 때면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기 위해 얼마나 여러 번 책을 덮어야만 했던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창가에 서서 유치하게도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나를 본다.
“에베레스트여, 기다려다오. 내가 간다.”
시골 간이역 같은 공항 터미널에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지금. 올케가 보내온 한강의 ‘여수의 사랑’을 읽고 있지만 마음은 저 혼자 달음박질쳐 눈 덮인 산 속을 헤매고 있다.
아침 7시 이륙 예정이던 비행기는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 11시에나 이륙한다. 비행기는 18인승이나 될까. 지금껏 내가 타 본 가장 작은 비행기다. 승객은 정 선배님과 수영언니, 나 그리고 가이드 람, 이렇게 넷. 앞쪽에는 의자를 접고 짐을 가득 실었고, 뒤쪽에 우리 넷이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승무원이 사탕과 솜뭉치를 가득 담은 쟁반을 내민다.
“웬 솜?”
“소리 때문에 귀 아픈 사람들 귀 막으라고.”
과연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날아오른다.
비행기 왼쪽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경이롭다. 끝없이 늘어선 설산들과 구름, 그 아래 까마득한 사람의 마을. 경치에 감탄하는 사이 어느새 30분만에 비행기는 루클라 공항에 착륙한다.
가이드 람이 이끄는 대로 ‘에코-파라다이스 식당’으로 이동, 야채카레와 레몬차로 점심을 먹는다.
오후 1시. 이제 트레킹의 시작이다. 루클라에서 구한 두 명의 포터 기얀드라와 바뜨라에게 배낭을 나눠 지게 하고 우리는 작은 배낭 하나씩을 메고 걷는다. 그래도 내 가방에는 카메라가방이 따로 들어있어 꽤 무겁다.
눈 앞으로는 해발고도 6783m의 깡대(Kang Tega)산이 보이고, 어디선가 야크 방울소리가 들려온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눈 덮인 산들을 바라보며 걷자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 이렇게 산만 보면 가슴이 뛰는 걸까. 아직은 이성에 가슴이 두근거릴 나이인 것 같은데 잘 생긴 나무 한 그루, 우뚝 솟은 봉우리에만 가슴이 뛰니 이것도 병인가.
어떤 작가가 그랬다지. 자신의 인생은 산을 알기 전과 산을 안 이후로 나뉜다고. 나 역시 나이 서른에 산을 만난 이후 많이도 변했다. 사람의 마음에 지나치게 의지해 스스로를 버겁게 만들던 욕심도 좀 줄고, 침묵과 겸손의 미덕도 조금은 배웠으니. 산과 자연은 내게 사람들이 가르쳐주지 못한 것을 말없이 깨우쳐 준 큰 스승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