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일) 오후, 평소 즐겨보던 인터넷 언론에서 기사를 본 뒤 <조선닷컴>으로 향했다. 다른 인터넷 언론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60-70대는 투표날 집에서 쉬셔도…' 발언을 머리기사로 보도할 그 시점, <조선닷컴>에는 경악(?)할 만한 뉴스가 맨 위에 게재돼 있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진중권 "오마이는 파시스트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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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조선닷컴의 초기화면
제목만 보고 든 의문점 세 가지. 2002년도까지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하기도 했던 진중권씨가, 그리고 기고문 대부분이 '조선일보 비판기사'였던 그가 설마 오마이뉴스를 일컬어 파시스트 언론집단으로 규정했겠는가.
또 설령 진씨가 순간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다손치더라도 그것의 기사 비중이 <조선닷컴>의 메인면 머리기사 정도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나머지 의문점은 조선일보의 이 '특종뉴스'를 과연 다른 언론에서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조선일보 초판 보도] 'MBC 미디어비평 프로는 위험'
인터넷언론 등 진보적 언론에 대해서도 진씨는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이사) 기자가 '좋은 기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는 없는 사건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며 "오마이뉴스는 열린우리당이 만든 '파시스트' 언론집단"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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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보도에서 조선이 강조한 대목은 '오마이는 파시스트 언론'이었다
기사를 읽다 보니 의문은 자연히 풀렸다. 먼저, 오마이뉴스가 창간된 때는 2000년 2월 22일 오후 2시 22분.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민주당과 분당해서 나왔고 올해 1월에 당 의장을 뽑았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나중에 생긴 정당이 먼저 창간된 언론을 만들 수 있나. 그리고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법인데 진씨의 '오마이뉴스는 열린우리당이 만든 파시스트 정당'이라는 발언을 놓고 봤을 때, 그렇게 말한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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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대체된 조선닷컴 초기화면.
평소 <진보누리> 등에 올려진 진씨의 글로 미뤄볼 때, 조선일보 초판 보도는 여러 측면에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여러 의구심 때문에 <조선닷컴>의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기사는 대체됐다. 바뀐 기사 중에서 핵심은 '오마이는 파시스트 언론'이라는 대목은 쏙 빠지고,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이사의 발언이 '간접인용'으로 대체됐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배달판 보도] 영상매체 영향력 커져... 이젠 견제해야
인터넷언론 등 진보적 언론에 대해서도 진씨는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이사) 기자가 '좋은 기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는 없는 사건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더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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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된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다른 제목을 달았다.
왜,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기사가 대체됐는지는 오늘(2일) 오전 <연합뉴스>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고, <오마이뉴스의 입장> 글을 읽고 알 수 있었다.
<진보누리>에 올려진 진중권씨의 글을 보면 <조선일보>의 기자가 어떻게 취재했는지, 오연호 대표이사의 '없는 사건도 만들 수 있어야…' 대목도 어떻게 나온 것인지 확연해졌다.
[진보누리] 조선일보 기자가 왔다간 모양이군요(진중권)
조선일보 기자에게 전화가 왔습디다. 이제야 사실 확인을 하겠답니다. 그 다음에 기사를 좀 고친 모양이군요. 지금 집에 들어와 고친 기사를 보고 다시 항의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따옴표 안에 들어가 있는 것도 문제지만, 했던 말도 맥락에 맞지 않게 연결시켜놓았더군요. 문제가 된 오연호 발언도 내가 인터넷에서 누군가 쓴 글을 읽었다고 한 것인데, 마치 그걸 내가 직접 오연호한테 들은 것처럼 써놓았더군요. 그 부분, 항의했더니 기자 자신도 그렇게 들었다며 기사를 고친다고 합디다.
발언을 했다던 진중권씨도, 오연호씨도 <조선>의 보도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악의적이었다면서 법정으로까지 가져갈 계획임을 밝혔다. 정작 '특종(?)' 보도를 한 <조선일보>에서만 '매 본 꿩처럼' 가만히 있을 뿐이다. 아니, 아무 소리도 없이 가장 문제되는 문장은 뺐고, 두 번째로 문제되는 문장을 '했다더라'로 바꿔놓았다. 지켜보던 독자의 심정은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보도를 봤을 때 들었던 세 가지 의문점은 곧 풀렸다. 먼저, 다른 언론에서는 조선의 기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물론 편집국에서 판단할 문제이긴 하지만) 뉴스 가치도 현 상황에서 그다지 큰 기사는 아니었다. 그리고 진씨는 본인 스스로 그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4월 1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MBC 신강균의 사실은…'이 탄핵지지 문화행사에서 대통령 영부인에 대해 조롱하던 사회자의 발언을 '편집'했다고 거세게 비판한 뒤, '현장필름'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사실은…>에서는 4월 2일 방송 때, 무삭제 필름을 공개할 방침임을 밝혔다.
같은 언론에 대해 '파시스트'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어놓고 소리없이 '대체'한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서 진정한 '편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면 지나칠까. 이번 보도에 대해 조선일보측의 책임있는 대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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