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크림슨과 윤민석

[나의승의 음악 이야기 51]

등록 2004.04.06 18:25수정 2004.04.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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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교수는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뒷부분에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음악 '에피타프(epitaph; 묘비명)'를 인용했다. 킹 크림슨의 마지막 고백이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운명의 철문 사이로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아는 자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다
Knowledges are a deadly friend/ if no one sets the rules/
민중이 우리의 헌장을 만들지 않는다면, 모든 지식은 죽음의 키스일 뿐/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 of fools/
모든 인간의 운명이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니!



 <인 더 코트 오브 더 크림슨 킹>(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 표지
<인 더 코트 오브 더 크림슨 킹>(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 표지
이 노래는 69년 <인 더 코트 오브 더 크림슨 킹>(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이라는 앨범의 타이틀로 발표된 음악이다. 일단 글을 읽고 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먼지 묻은 35년 전의 음악을 꺼내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해, 대개는 한숨을 쉰다.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혼란은 나의 묘비명이 될거야
As I crawl a cracked and broken path/
내가 무너지고 부서진 길을 따라 기어 갈 때,
If we make it we can all sit back and laugh/
우리는 모두 뒤에 물러앉아 웃을 수도 있겠지만,
But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나는 내일이 두려워 울부짖을 거야, 그래 나는 내일이 두려워 울고 있겠지


노래가 끝나도 ‘크라잉’이라는 단어는 오래 귓속을 떠나지 못한다.

무려 35년 전의 노래가 어쩌면 이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노래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혼란 속에서 내일을 만들어 가야만 할 것이다. 그 일의 주역은 ‘르 몽드’를 만드는 프랑스 사람도 아니고 ‘뉴욕 타임즈’를 만드는 사람들도 아니다.

강의실의 교단 위에서 제자들의 종아리에 사랑의 매를 때리고, 나라가 이 모양인데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남의 나라에서 식모살이 해야 할 거라고 말하는 스승. 실제로 우리들의 조국은 간호사 누나들과 광부 형들을 식모와 노동자로 팔아야 했던 적이 있다.


초·중학교도 아닌 대학에서 제자들에게 대나무 매질을 하는 것은 다소 열정이 지나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정신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 존경받아야 할 스승이다.

학교를 떠나서 옛말에 ‘훈시’라고 하는 말이 있었듯이, ‘보고 배울만한’ 진정한 스승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우리들의 시대에, 진실 앞에서 진실 할 수 있고, 옳다고 믿는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노랫말이 시대를 반영하는 예로, 한국 토종의 대표음악이 있다. 윤민석의 ‘너흰 아니야’라는 음악은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가요가 되어 있다. 인기 가요 순위의 정상에 올라야 할 것이다. 가사만 알게 되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 대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할지도 몰라/
일가 친척 측근 가리지 않고/ 검은돈 받아 챙겼을지도 모르지/
노동자 농민은 죽음으로 외치고/ 서민은 카드 빚 때문에 목을 매는/
이 개 같은 세상 거꾸로 된 이 나라/ 누군가는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너흰 아니야 XXXX 너흰 아니야/
너흰 나라를 걱정할 자격 없어/
채권에 사과상자에 이제는 아예 트럭째/ 차떼기로 갈취하는 조폭들/
그래서 너흰 아니야 XXXX 너흰 아니야/
제발 너흰 나라 걱정 좀 하지마/
너희만 삥 안 뜯어도 경제는 살아 날거야/XXXX 너희들은 아니야


‘크림슨 킹’의 울부짖음(crying)은 왕의 외침이지만, 여기서는 민초들의 막말을 노래로 내 지른다. 그것이 노래를 만든 사람만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쯤은 대개들 알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크림슨 킹’은 곧 ‘민중’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보들의 손아귀라고 지칭한 그것 역시 민중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 했던 사람들의 손일 수 있을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 시대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지루함을 대신해서 노래를 한두 곡 듣는 것으로, 책보다는 첨부 파일의 음악을 듣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로마 시대에나 있었을 방패를 손에 들고, 다리 아프게 아스팔트 위에 서 있다가, 6개월만에 외박을 나온 스물 세 살의 어느 의경은 “나는 방패를 놓고 저들처럼 촛불을 들고 싶었다”라고 고백한다.

“방패와 촛불” 그것은 우리 시대에 또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 첨부 파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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