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아홉 봄날, 아내와 찾은 고창읍성

고풍스런 옛 성의 품격과 호젓함이 배어있는 고창읍성을 찾아

등록 2004.04.06 16:45수정 2004.04.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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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1829년 탈고된 괴테의 기행집 <이탈리아 기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삼십대 중반에 이미 부와 명성과 권력까지 손에 쥔 괴테는 서른 일곱 살 생일날 새벽 모든 것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낡은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 간단히 꾸린 채 이탈리아를 향해 훌쩍 떠난다. 1786년 9월 3일의 일이다. 그렇게 그는 1년 9개월 동안 마음껏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눈과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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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은 읍성이면서도 산성못지않게 조망이 빼어나다. ⓒ 장권호


서른 일곱 생일 날 새벽, 인생의 혁명을 위해 가진 것 모두를 뒤로 하고 신화의 땅 이탈리아를 향해 떠나는 괴테를 부러움으로밖에 바라볼 수 없는 나이.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음을 인정해야 하는 나이. 이제 설사 무엇을 한다 해도 가슴 설렐 일없을 것 같은 나이.

낡고 오래된 스웨터의 보풀들 마냥 남루한 마흔 아홉의 봄날, 아내와 함께 정말 오랜만에 새벽 여행을 위해 집을 나선다. 나라 안에 남아 있는 읍성들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고창읍성의 새벽 산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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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25만평 규모의 학산농장 보리밭 전경 ⓒ 장권호


전라북도의 서남단 끝자락에 자리한 고창은 넓은 들과 산 그리고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일찍부터 사람살기 좋은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고창은 삼한 시대에는 모량부리(毛良伐)로, 백제 시대에는 모양현(牟陽)으로 불려 왔다.

고창문화원장 이기화씨에 의하면 이는 모두 보리와 관련된 지명으로 예로부터 고창이 들이 넓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 경덕왕 때 붙여진 고창(高敞)이란 지명도‘높고 넓은 들’이란 뜻으로 결국 고창이 그만큼 살기 좋고 풍요로운 고장임을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지긋한 고창 사람들은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씨와 국무총리를 지낸 김상협씨와 진의종씨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말미엔 신재효와 서정주를 내비치면서 은근히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고창 하면 잊을 수 없는 분이 만정 김소희 여사다. 깊고 곡진한 소리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곱게 나이 들어가는 삶의 전형을 보여준 만정 여사, 오늘은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선생의 구음을 사운드트랙으로 준비해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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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초입의 오래 묵은 벚꽃이 만개, 옛성의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 장권호


오늘 찾아갈 고창읍성은 조선 초 해안을 침략하는 왜구들을 방어하기 위해 호남 각처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단종 원년(1453년)에 호남내륙 방어의 전진기지로 세웠다. 즉 나주진관의 거점성인 입암산성을 축으로 고창읍성과 무장읍성 그리고 법성창성이 30리 간격으로 호남내륙을 가로지르면서 조선왕조는 호남 내륙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대규모 전쟁시 군사적 목적만을 위해 세워진 산성과는 달리 조선조에 세워진 읍성들은 행정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병행하였다. 그렇지만 민관이 함께 거주했던 여느 읍성들과는 달리 고창읍성은 성내에는 관아와 그 부속건물만 지어 관리들만 거주하고 주민들은 성밖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그러다 유사시 백성들을 성안으로 대피시켜 민관이 함께 대항하여 농성할 수 있도록 4개의 우물과 2개의 연못을 포함 3개의 옹성과 6개의 치성을 쌓아 견고한 성곽을 조성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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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조성시에 호남 각 고을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 장권호


고창읍성은 읍성이면서도 낙안읍성이나 해미읍성처럼 평지에 조성된 평지성(平地城)이 아니다. 해발 108m의 장대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나지막한 산자락을 껴안고 조성된 평산성(平山城)으로 말하자면 평지성(平地城)과 산지성(山地城)의 중간 형태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그래서 성곽의 양면을 모두 돌로 쌓아 올린 평지성들과는 달리 성곽의 바깥쪽만 돌로 쌓아 올리고 안쪽은 흙과 잡석을 이용하여 쌓아올린 내탁법 기법으로 조성됐다.

새벽 다섯 시, 졸린 눈을 비비며 잠든 아내를 깨워 백 리 길을 달려가게 할 만큼 고창읍성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거기엔 고풍스런 옛 성의 품격과 호젓함, 더 나아가 질박한 아름다움까지 만날 수 있다. 토끼풀만 무성한 해미읍성의 황량함이라든지 난삽한 민속마을의 상혼으로 시름하는 낙안읍성의 상처가 없어서 나는 고창읍성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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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햇살이 비켜드는 봄날, 솔숲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꿈결 같기만 하다 ⓒ 장권호


고창읍성은 높이와 규모에 있어 일본이나 중국의 성처럼 위압적으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아서 좋다.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를 따라 조성한 성곽은 소박함 그 자체다. 전쟁 시 대규모 전투가 주로 산성(山城)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국지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국 읍성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화려하고 거대한 성들에 비해 다소 초라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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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내에는 잘 가꾸어진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적송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 장권호


일본이 자랑하는 오사카성의 웅장함과 히메지성의 화려함 앞에서도 난 결코 주눅 들지 않았고 또한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하늘을 찌를 듯 웅장한 오사카성의 천수각을 보며 오히려 섬사람들의 콤플렉스가 안쓰러웠다. 거기엔 사람 냄새 대신 무인들의 피 냄새만 가득 넘쳤다. 그래서 하룻길 관광으로 족하지, 다시 찾고픈 그런 여운이 없었다.

고창읍성은 평산성(平山城) 형태로 산성(山城)이 주는 시원한 조망과 평지성(平地城)이 주는 아기자기함까지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읍성이다. 고창읍성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성곽위로 올라 1.7km에 달하는 성곽을 따라 여유롭게 거닐며 북으로 방장산과 서쪽으로 고창의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쾌한 경관을 즐겨야 한다. 웬만한 산성 못지않게 조망이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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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내에 복원된 현청건물과 내아 건물로, 센서가 있어 사람이 다가서면 자동으로 음성 안내를 시작한다. ⓒ 장권호


소요하는 기분으로 30여 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성곽 답사가 끝나면 이번에는 성 안으로 내려와 울울(鬱鬱)한 노송들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거닐어 보아야 한다. 고색창연한 성곽을 따라 성 안쪽 나지막한 산자락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책로는 고창읍성 답사의 절정이다.

우거진 노송들 사이로 엷은 햇살이 비켜드는 봄날 저녁, 좋은 사람들과 함께 청정한 솔바람 소리에 온전히 귀를 열어놓은 채 노송 사이 산책로를 걸어 보라. 정녕 이 땅에 목숨 점지 받아 조선 백성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과 정체성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감사하게 될 것이다.

여행의 마무리

고창읍성은 나라 안 읍성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고창읍성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답성 놀이가 전해온다. 성 밝기는 저승문이 열린다는 윤달에 해야 효험이 많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절집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선운사와 2000년 12월 유네스코가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아산면의 고인돌 유적지까지를 둘러보려면 고창의 여정은 하루로는 벅찬 여행길이다. 오는 주말이면 읍성 초입의 벚꽃이 만개할 것이라고 문화유산해설사로 일하는 유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벌써부터 주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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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사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째 광주교사신문 12면에 주제가 있는 여행 꼭지를 맡아 집필하고 있다. 또한 광주과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도서관 운동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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