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넋 나간 사람을 봤나! 볼일이 있어 나갔다 하나 적어도 해지기 전에는 들어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백위길은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이순보의 꾸지람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더욱이 오늘은 이순보가 당직을 서는 날이기도 했다.
"당장 순라 준비나 하게! 오늘 백포교 자네는 쉬지 말고 다른 포교들을 따라 계속 순라를 돌게나!
백위길은 억울한 생각이 들어 울컥 털어놓듯이 말했다.
"하오나 전 반촌에 도둑을 잡으러 갔사옵고......"
이순보가 펄쩍 뛰며 백위길을 다그쳤다.
"이 사람이 무슨 큰일 날 소리인가! 내 그 소리는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 했던 터! 그렇게 하기 싫다면 당장 포교를 때려치우게!"
"좋다! 까짓 거 너한테 이렇게 더러운 꼬라지 당하느니 포교 자리 때려 치고 사고 한번 쳐보자! 이놈!"
그렇지 않아도 반촌에서 당한 일로 심기가 상할 대로 상해 있는 백위길은 순간적으로 화가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백위길은 이순보에게 작정하고 달려들 참으로 웃통을 벗어 젖혀 땅바닥에 매쳤다.
"뭐 하는 짓거리들인가!"
백위길이 주춤해하며 뒤돌아보니 바로 포장(捕將)인 박춘호였다. 이순보는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박춘호에게 중얼거렸다.
"박포교 자네 아직 퇴청하지 않았나? 이 녀석이 포교를 그만두겠다는 구만."
박춘호는 천천히 걸어가 땅바닥에 떨어진 백위길의 옷을 주어주며 말했다.
"포교라는 직책은 함부로 관두는 것이 아닐세. 어제 순라도 돌아보았고 피곤해 보이는 듯 하니 오늘은 이만 가서 쉬게나. 대신 순라를 돌 포교는 내가 이미 일러놓았네."
백위길은 옷을 받아든 채 뭔가 말을 더 하려다가 굳은 박춘호의 표정과 일그러진 이순보의 표정을 번갈아 보고선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런 백위길의 뒤로 박춘호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참! 앞으로 반촌에는 가지 말게!"
그 말에 백위길은 짐 하나를 덜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반촌건에 대해 들통이 난 이순보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박춘호는 이순보의 코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으르렁거리듯이 충고했다.
"이포교, 거 너무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얼마나 더 등을 쳐 먹어 잘 살겠다고 그러는 건가? 게다가 반촌을 잘못 들쑤시면 어떻게 되는 지나 알기나 하는 겐가?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이순보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어쩔 줄 몰라하다가 순라 준비를 해야겠다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대관절 한심한 놈인지 위험한 놈인지 모르겠군."
박춘호는 이순보의 뒤통수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나저나 백포교를 좀 달래야 할텐데...... 집으로 바로 갈 것 같지는 않군."
박춘호의 예상대로 백위길은 그 길로 시전 주막으로 달려가 막걸리를 들이키며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놈들...... 에이 썩을 것들......"
평소 시전 유기상을 드나들던 백위길인지라 그를 알아본 상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저 백씨 아니야? 포교가 되었다더니 포도청에서 못 볼 꼴을 많이 보는 모양이군."
"아 내가 그러지 않았어? 백씨는 포교에는 안 어울린다니까."
급기야 상인들이 곁으로 와 이런 저런 얘기를 걸어오자 백위길은 벌컥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함부로 말들 마쇼!"
씩씩거리며 주막을 나서는 백위길을 보며 상인들은 혀를 끌끌 찼다.
"거 포교가 되더니 성질도 모질고 고약해졌네 그려."
순간 백위길이 훽 하니 뒤돌아 섰기에 그 말을 한 상인은 뜨끔하여 백위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백위길은 그 상인은 보지도 않은 채 술 한 병을 사서 옆구리에 차며 중얼거렸다.
"이젠 주막에서 혼자 술도 못 마시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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