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의 뉴한나라와 김홍신의 탄핵심판론 격돌

[4·15 총선 격전지⑪ 종로] 요동치는 판세에 두 진영 모두 긴장

등록 2004.04.09 17:21수정 2004.04.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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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뒤에는 대한민국을 이만큼 일으켜 세운 우리 어른들이 있다!”
“어! 인간시장의 김홍신이다! 이젠 시대가 새로운 개혁을 원한다!”


제17대 총선 D-7일. 탄핵안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던 정치 접전지 종로가 또 한 번 그 명성을 과시할 태세이다.

16대 총선과 2002년 보궐 선거에서 종로 유권자들의 선택은 한나라당이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을 지지하며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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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박진 의원이 어른들의 환영을 받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김진석


이처럼 판세가 어디로 튈지 모를 지역구, 종로에 나선 한나라당 박진(47) 후보와 열린우리당 김홍신(56) 후보의 대결이 눈길을 끈다.

17대 총선의 종로는 ‘뉴한나라당’ 과 ‘탄핵심판론’ 사이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3월 19일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4.4%)따르면 열린우리당 김홍신 후보의 지지율이 40.8%로, 17%에 그친 한나라 박진 후보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이 31일 다시 실시한 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32.1%의 지지율을 보이며 34.7%의 김 후보를 오차범위 안에서 바짝 뒤쫓아 종로의 격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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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우리당 김홍신 의원이 그를 알아보는 유권자에게 명함을 건네고 있다. ⓒ 김진석

여기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발언과 박근혜를 내세운 뉴한나라당의 상승세가 종로 중장년층 유권자에게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종로 구청장 1, 2기 출신 민주당 정흥진(59) 후보가 ‘지역문화복지 평가 전국 1위’, ‘서울시 사회복지 평가 1위’, '3년 연속 시민만족도 평가 최우수구’의 화려한 경력을 내세우며 박진, 김홍신 후보의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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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떡 먹고 딱 붙으세요!”, “찹쌀떡 먹고 재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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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지난 8일 종로의 관문인 무악동. 한나라 박진 후보의 유세차가 도착하자 인근에 있던 50∼60대 어른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유세차 한 곳에 마련된 대형 TV에선 한국 정치사 장면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지켜본 한 나이 든 유권자는 "나라를 잘 살게 해 준 것은 한나라당이지", "박근혜가 있는데…." 등의 말로 향수를 달랬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젊은이들은 실업의 고통으로, 어머니들은 사교육의 고통으로 … 그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는 모두 노무현 정권의 잘못된 정책 때문입니다! 정부와 여당을 견제 할 수 있는 힘을 환골탈태한 우리에게 주십시오!”
"좋아! 좋아! 우리가 있다!”

박 후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어른들은 일일이 화답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종로가 2002 보궐 선거에서 선택한 박 후보는 외무고시 출신에 대통령 정무비서관과 미국 변호사를 섭렵한 엘리트이다. 박 후보는 '종로 토박이'라는 인물론과 ‘뉴한나라’의 차세대 기수론을 이번 총선의 주무기로 내세웠다.

"건강하고 깨끗한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난 야당에 힘을 주십시오. 그동안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우리 어르신들의 허리와 어깨와 다리를 펴드리겠습니다. 종로의 아들로 태어난 제가 40대의 젊은 활력을 실어 정통 보수의 한나라당을 새롭게 살리겠습니다!”

어르신들은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1번’과 ‘박진’ 을 연신 연호했다. 어르신들의 열렬한 환호에 박 후보는 목이 잠기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세 연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종로를 행복 1번지로 만들겠다" 며 “어르신들의 아들, 조카, 친구가 되겠다”고 호소했다.

유세가 끝나자 어른들은 박 후보의 주변을 에워샀다. 어느 한 주민이 찹쌀떡을 건네며 “찹쌀떡 먹고 딱 붙으세요!”라고 격려하자 박 후보는 “찹쌀떡을 두 개나 주시니 꼭 재선해야겠습니다!"라고 응수했다.

또 한 쪽에서는 "목 쉬지 말라"며 초콜릿 조각과 우유를 건넸고, 이에 박 후보는 어른들에게 “승리하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어른들은 “어른을 무시하는 철새당 밟아 없애라”, “몰표를 주자!”, “우리가 있는 한 판세는 끝났다”라고 환호를 보태며 박 후보의 승리를 확신했다.

한편 박 후보는 탄핵 소추안 찬성을 이유로 지난 6일 2004년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낙선 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에 그는 “맑은 정치를 위한 시민단체들의 의도는 좋게 평가한다, 하지만 낙선과 당선 운동도 엄밀히 말하면 법에 위반되는 행위 아닌가?”라고 말하며 "탄핵안 가결에 동참한 것이 마치 법을 위배한 것처럼 모는 태도는 아쉽다. 이는 일방적인 결정에 불과하다"고 반론을 펼쳤다.

박 후보는 “종로가 발전하려면 종로구청장 및 서울 시장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종로에서 태어난 내가 당선이 되면 모두 같은 한나라당으로서 큰 시너지 효과를 걷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자신했다.

"이번엔 무조건 우리당 찍을 거예요!", "어디를 가든 기호 3번 우리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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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열린우리당 김홍신 후보는 젊은 유권자들, 특히 여성 유권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소설 <인간시장>의 작가로 잘 알려진 그를 '홍신오빠'라 부르며 사인을 부탁하는 여성 유권자들은 물론 지난 8일 김 후보의 유세장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한 젊은 남성 유권자는 “이번엔 무조건 우리당 찍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김 후보의 명함을 받아갔다. 또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도 김 후보를 알아본 젊은이들이 손가락 세개를 들고, 흔들며 응원을 보냈다.

“제가 한나라당에서 왕따를 당할 때 지켜줬던 분들은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1등 의원인 저를 믿어 주십시오. 당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아닌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김 후보는 2004물갈이 연대가 뽑아준 지지자 후보 발표와 국민이 선정한 1등 의원이라는 사실에 큰 자신감을 보였다. 김 후보는 성실함을 내세워 “4년 임기를 못 채워도 좋을 만큼 정말 열심히 일만 해 종로 유권자의 자존심을 살리겠다”고 호소했다.

“본 총선은 비민주와 민주적 세력간의 대결입니다. 우리 국민이 직접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지금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벌떡 일어나 일하게 해 주십시오! 4·15일 매섭게 정치인들을 혼내주십시오. 우리 국민들은 회초리를 들 자격이 있습니다.”

비록 종로 출신은 아니지만 방송 활동과 소설 <인간시장>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 후보의 인지도 또한 박 후보의 토박이론에 뒤지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김 후보의 인사에 “어! 진짜 김홍신이네!”, “이번엔 꼭 좋은 열매 맺으세요!”라고 지지를 보냈다.

"단 한 장의 명함이라도 아껴쓰겠습니다!”

김 후보는 국민이 준 세금으로 선거를 치른다며 선거 운동비 감축을 선언했다. 이미 몇 차례 김 후보를 만난 듯한 유권자들도 “아껴쓰세요. 전 이미 명함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대신 악수로 그를 맞았다.

“내 나이 70살이오. 선거 안 하고 쉴 거요.”
“죄송합니다. 제가 가서 혼내주겠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종로 또한 정동영 의장의 발언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김 후보는 "노인정을 방문할 때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며 "그저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사죄에 냉랭한 반응을 보이던 어른들도 “기껏 우리가 뒤에서 잘 살게 해줬는데, 왜 그런 소리를 했냐”고 아쉬움을 표했으나 이내 웃음으로 넒은 아량을 베풀었다.

김 후보는 “남을 희생시키는 건 혁명이고, 나를 희생시키는 건 개혁이다. 개혁을 통해 높아진 서민들의 정치 의식에 보답할 것" 이라며 ”국민에게 순종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 가장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누구의 '개혁’과 '깨끗한 정치'를 선택할 것인가

젊은 유권자들은 ‘이번 만큼은 탄핵 심판을 위해서라도 투표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고, 어른들도 ‘개혁이 꼭 필요한 시대’라며 투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러나 ‘개혁’을 평가하는 ‘기준’ 은 사람들마다 상이했다.

김종배(65)씨는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건 잘못 된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의 대세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큰 흐름”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장수(70)씨는 “젊은이들은 자기 목을 스스로 조이고 있다. 세대 모자라 툭하면 분당을 조장하는 우리당에게 어떻게 국가를 맡기겠는가?”라며 “결국 화합과 통합으로 국민을 잘 살게 할 한나라당이 ‘환골탈퇴’한 모습으로 진정한 개혁을 실천 할 것”이라고 상반된 개혁론을 펼쳤다.

이같은 여론을 의식해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박진 후보와 김홍신 후보는 모두 "국민을 위한 깨끗한 정치로 보답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 유권자가 어떤 후보의 ‘개혁’과 ‘깨끗한 정치’를 선택할 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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