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웠던 눈물이 엷은 웃음으로…

[캠핑카 타고 유럽 여행 19]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아래에 누워

등록 2004.04.14 11:10수정 2004.04.15 11:17
0
원고료로 응원
a 프랑스 중부 Corde

프랑스 중부 Corde ⓒ 권기봉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고대 로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도시나 마을이 많다.

한때 벨기에 일대와 포강 유역의 북 이탈리아까지 포함해 ‘갈리아’라고 불렸던 프랑스. 이를 두고 로마인들은 야만인들의 소굴이라 멸시할 때도 있었고, 시오노 나나미는 프랑스가 당연히 '선진 로마'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역사책 속의 이야기일 뿐.


'속도 무제한' 독일에 비해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 프랑스의 고속도로나 세세한 부분까지 잘 다듬은 시골길을 비롯, 그 어디에도 야만이란 말이 어울릴만한 곳은 없었다. 아니, 지금 이 시대에 프랑스를 여행하며 야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었는지도.

a

ⓒ 권기봉

파리를 찾은 것은 지난 99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당시에는 홀로 유럽여행을 다녔는데, 초행자의 욕심 때문이었는지 한 군데 오래 머무르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무조건 많은 나라에 가봐야 했고, 그랬기에 한 곳에 사흘 이상 머무르기란 사실상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매력적인 도시, 파리에서 이왕이면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파리에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리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a

ⓒ 권기봉

파리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진한 향수 내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비개인 파리는 목가적인 남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평평한 대지의 파리에서도 높다란 언덕에 자리한 사크레쾨르 성당과 그 뒤의 몽마르트. 몽마르트의 한 골목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신문을 읽는 말쑥한 차림의 신사며, 강아지가 용변을 마칠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주는 아주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웬지 모를 여유가 느껴진다.


생제르망 데 프레도 근처의 생 미셸과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의 거리. 그곳에 위치한 '타쉔'이라는 예술 전문 서점에서 천천히 책 구경도 하고, 작은 화랑들을 기웃거리다 보면 정말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a

ⓒ 권기봉

파리에 도착했으면 무엇보다 먼저 에펠탑에 나가볼 일이다. 파리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에펠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19세기의 거대 철 구조물.


프랑스의 옛 육군사관학교와 사이요궁 사이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에펠탑. 아무리 보고 있어도 거대 건축물을 보면 으레 생기는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먼길을 달려온 여행객의 피로를 걱정하는 듯 잠시 쉬어가라고 손길을 내밀고 있는 듯했다. 근처 골목에 캠핑카를 세워두고 에펠탑 아래 잔디밭으로 나아갔다.

굳이 에펠탑에 올라가고픈 생각은 없었다. 서울에서도 남산 타워보다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충무로가 좋았고, 상하이에 가도 ‘동양 최대’ 동방명주보다는 퀴퀴한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골목을 좋아했던 터라, 그저 사람들과 같은 높이에 머무르고 싶었다.

a

ⓒ 권기봉

아직 일광욕을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는 날씨였지만 에펠탑 주변에 펼쳐진 너른 잔디밭에 눕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것의 유혹은 강렬했다. 은근한 구름으로 가려진 파리 하늘 아래 눕자 지난 여행 때 흘렸던 눈물에 대한 기억이 났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빈에서였던 것 같다. 천천히 시내를 둘러보고 도나우 강변에 앉은 것은 오후 6시가 막 넘어설 무렵. 배낭에서 남겨두었던 빵과 물을 꺼내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던 것.

슬프지 않았다. 아픈 곳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까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온 그저 평범한 10대를 거쳐 막 20대에 접어든 내게 이 눈물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짧지 않은 여행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친구들 생각이 간절했고,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이 머리를 채우기 시작하던 때라 그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이 나올 정도로 그리움이 컸던 것일까?

a

ⓒ 권기봉

그저 서러웠다. 물론 유럽이 무조건 칭송해 마지않을 사회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인 만큼 그들도 나름의 고민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20대 청년의 눈에 그들의 풍요로운 모습은 당연히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떠나올 당시만 해도 대학을 막 졸업한 작은누이는 IMF의 충격으로 뜻하지 않던 백수 생활을 해야 했고, 알고 지내던 한 선배는 국보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다 결국 경찰에 연행될 때였다. 그렇게, 주위에서는 다들 유쾌하지 않은 일들뿐이었다.

그것이 비단 내 누이나 선배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한국 청년들이 겪고 있던 현실이자, 넓게 보면 한국 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까지도 던져주는 수많은 물음들. 그 누구의 잘못이라 함부로 말하기 힘든 역사의 굴레에 치여, 젊은이들은 꿈을 잃어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 삭막한 현실에 지쳐 하나 둘씩 나가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혼란을 이겨낼 능력이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물을 흘리는 것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노을진 도나우를 보자 은근히 잊고 있던 서러움이 복받쳤던 것일 게다.

a

ⓒ 권기봉

벤치에 앉아 조용히 비둘기에게 모이를 먹이는 노인이나 꼬마들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젊은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는 어째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엷은 웃음이다.

그 동안 복작거리며 아옹다옹 사는 것은, 미래의 삶의 질을 생각할 때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 세상이 좁든 넓든 전제부터가 잘된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여하튼 ‘잘 살아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무엇을 위해 그리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a

ⓒ 권기봉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번 여행. 동네 어귀 카페 테라스에 앉아 곧 찾아올 봄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 친구와 에스프레소 한 잔 앞에 두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멋. 그렇게, 에펠탑 아래 잔디밭에 누워 배시시…. 여행을 음미하며 조용한 웃음을 지었다.

a

ⓒ 권기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3. 3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4. 4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5. 5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