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국회 지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대체 왜 저렇게 ‘사쿠라’를 잔뜩 심어놓은 겁니까?”
기사 아저씨의 말을 듣고 보니 국회 주변에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어있었다. 아저씨의 말인즉,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벚꽃’을 왜 ‘한국의 국회’에 심어 놓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디선가 들은 벚꽃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니라 한국(제주도)이며, 한국에서 수출되어 일본의 국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국회 주변에는 무궁화를 심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벚꽃 축제다, 뭐다 하면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좀 우스워요. 물론 봄나들이도 하고, 그거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 왜 ‘무궁화 축제’는 없는 겁니까?”
사실 벚꽃은 한국 역사에서 그다지 좋은 이미지의 꽃은 아니다. 일제히 피었다가, 일제히 지는 벚꽃의 특성이 일본인의 단결력을 상징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일제의 징병을 권하는 그 수많은 친일, 매국의 문장 속에서 벚꽃은 늘 ‘조선학도의 장렬한 산화(散花)’를 미화하는 비유의 소재가 되곤 했다.
그러고 보니 국회 주변에 심어진 벚꽃은 단순한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훌륭한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풍경’이었다. 급기야 기사 아저씨는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국회 안에 순 사쿠라들만 모아 놔서 사쿠라를 심은 건가?”
아저씨의 재담에 나는 웃음을 머금었지만,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벚꽃이 만발한 여의도 거리를 걸었다. 그저 가볍게 툭, 툭 던지시는 말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급소를 찌르며 다가오든지…. 한동안 그 시니컬한 말들이 내 맘에 잔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