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양덕원 이야기>, 느림의 미학

연출과 연기의 경지,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2004 필견 수작

등록 2004.04.10 11:49수정 2004.04.1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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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배우들은 실제 라면을 끓여 먹는다. 관객에게 식욕을 일게 함은 물론 극을 더욱 친밀감 있게 만든다.

배우들은 실제 라면을 끓여 먹는다. 관객에게 식욕을 일게 함은 물론 극을 더욱 친밀감 있게 만든다. ⓒ 차이무

극단 차이무의 공연은 가족을 돌아보게 하는 따뜻함이 있다. 2002년에 올렸던 <행복한 가족>에서도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이는 가족 해프닝을 통해 가족의 붕괴를 걱정했다. <양덕원 이야기>(정보소극장 / 2004.3.23∼2004.5.2 / 민복기 작·연출)도 그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양덕원 이야기>는 아버지의 임종 임박을 앞두고 시골집에 모인 한 가족을 통해 현재 가족의 초상과 소중함을 묻고 있다. 연극은 3시간이면 죽는다는 아버지를 3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게 설정함으로써 바쁜 현대를 살아가 모이기 쉽지 않은 가족을 붙들어 놓는다.


머물면서 서먹서먹하게 서로의 사업 또는 안부나 묻던 식구는 차츰 잊고 살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한편, 유산문제로 다투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이것은 임종을 앞 둔 아버지가 만든 소중한 자리이다.

공연장 밖에는 차들이 바삐 오고가고 취객이 소리를 지르지만 정보소극장에선 삶의 이야기가 시냇물처럼 졸졸졸 흐르고 있다. 공연장 안의 작은 소동극은 적잖은 고민을 안고 극장을 찾은 이들에게 일시적인 평온을 가져다준다. 혹자는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릴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적어도 살아 생전 잘해드려야지 하는 다짐을 할지도.

<양덕원 이야기>는 좋은 연출과 좋은 연기가 모인 수작이다. 불필요한 등퇴장(본 공연에서의 등퇴장 출구는 집 또는 방을 들어가고 나가는 것으로 되어있다)을 없앤 무대의 효과적 활용을 비롯하여 일상의 순간을 풍요롭게 채색하는 자잘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다.

가령 실제 라면을 끓여 소주와 김치와 함께 먹는 모습은 관객에게 식욕을 일게 함은 물론 극과 관객 사이를 더욱 친밀감 있게 만든다. 한편 관객 중 한 명을 개(덕구)로 지적해(이때부터 이 관객은 극 중 캐릭터가 된다) 라면을 먹여주는 등의 잔재미도 괜히 장난스럽지 않게 극의 일부가 된다.

배우들은 이웃 동네 사람들 보는 듯 살아있다. 장남 역의 이성민(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수상), 둘째 아들 역의 오용(지난해 <이발사 박봉구>에서 관객을 자지러지며 웃게 만들었던 그! 김기덕의 영화 <사마리아>에서 치를 떨게 만들었던 그!), 장의사 지씨 역의 정석용(희와 비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호연을 펼친 <양덕원 이야기>의 최고의 스타! 영화 <무사> <영어완전정복> 등과 맥도날드 CF), 막내딸 역의 전혜진(<비언소> <돼지사냥> <거기>등 차이무의 거의 모든 연극에 출연. 영화 <정글쥬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등), 엄마 역의 김지영(공연 후 팜플렛 보고선 깜짝 놀랐다. 상당히 젊은 미인이었던 것) 등 전 출연진은 최고의 앙상블을 선보인다.


<양덕원 이야기>는 연출의 경지, 연기의 경지 그리고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올 해 놓쳐서는 안될 드문 수작 중 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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