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탄핵법정'서 물만난 5공세력들

[取중眞담] 소추위원과 변호인단의 면면을 통해 본 탄핵소추

등록 2004.04.12 14:47수정 2004.04.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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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 3월 30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법정에서 국회소추위측(왼쪽)과 노대통령변호인측이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맨 왼쪽이 김기춘 소추위원.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 3월 30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법정에서 국회소추위측(왼쪽)과 노대통령변호인측이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맨 왼쪽이 김기춘 소추위원. ⓒ 연합뉴스 진성철

5공의 핵심인물들이 '역사의 법정'에 전면 재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다름아닌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가 계기가 됐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헌법질서를 어지럽힌 5공화국은 이미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5공의 핵심세력 가운데 몇몇이 다른 곳도 아닌 헌법재판소 법정에 서서 '의회쿠데타'를 극력 변호하고 나섰다.

그들과 반대편에서 노 대통령을 포함, 그를 변호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5공화국 당시 독재의 그늘에서 탄압을 받았거나 아니면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인사들로 이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 마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2일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지 한 달이 됐다. 이후 탄핵의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심리가 진행중이다. 헌재 법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측의 공방은 역사를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같은 착각이 들게할 정도다.

지난달 30일 첫 공개변론에 이어 지난 9일 열린 3차 공개변론 과정에서 쏟아진 소추위원측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와 시대착오적인 발언 등을 정리해본다.

[1차 공개변론] 김기춘 소추위원 "선거운동 바쁘다... 변론 연기"

"앞으로 김기춘의 손에 달렸다."


지난 3월 12일 노 대통령 탄핵안이 타결된 뒤 정형근 의원이 한 말이다. 김기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탄핵심판 과정에서 검사역할을 맡은 소추위원으로 자동선임된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헌정사의 최대 오욕 중 하나인 72년 유신헌법의 초안작성자로 지목된 바 있는 인물이다.

원로 헌법학자 한태연(88) 전 서울대 법대 교수가 지난 2001년 12월 8일 한국헌법학회 주최로 서울대 근대법학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역사와 헌법' 학술대회에서 유신헌법 제정 경위에 대해 "신직수 법무부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법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 의원의 약력을 살펴보면 과거 독재시절에서의 맹활약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지난 1960년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를 합격하면서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고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절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국장, 청와대 법률비서관(79년)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는 1988년 제22대 검찰총장에 올랐으며, 1991년 제40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신한국당(전 한나라당)으로 제15대 국회의원(경남 거제)에 당선돼 16대 의원으로 연임 당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김 의원이 역사적인 탄핵심판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달 30일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대통령의 진퇴를 결정하는 중대성을 볼 때 정확히 해야하고 재판부의 졸속진행은 이뤄지면 안됩니다. …아시다시피 4월 1일이 국회의원 후보등록 마감일이고 4월 2일부터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시작됩니다. 저는 지역구 출마를 위해 물리적으로 (4월 2일) 출석이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2차 기일을 정하는데 적절히 조정해 줄 것을 간청하는 바입니다."

이때 기자들은 '국가적 중대한 탄핵심판에 임하면서 선거라는 개인적인 문제로 불참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간다'는 의미로 소추위원측의 대리인단인 하광용 변호사에게 질문하자, 하 변호사는 "국회의원 선거가 개인적인 문제라고 하는데, 국회의원도 헌법기관"이라며 "대통령만 중요한 게 아니고 (선거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고 항변했다.

소추위원측의 '황당 행보'는 이것이 시작이었다.

[2차 공개변론] 소추위원측 한병채 변호사... 보이지 않는 영향력 행사

a 한병채 변호사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재 제3차공개변론이 끝난 지난 9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소추인단 한병채 변호사가 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질문을 받고 있다.

한병채 변호사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재 제3차공개변론이 끝난 지난 9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소추인단 한병채 변호사가 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결국 김 의원은 지난 2일 열린 탄핵심판 사건의 2차 공개변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대신 주목을 받았던 인물은 소추위원측의 한병채(71) 변호사이다.

그의 경력 역시 김 소추위원처럼 화려하다. 특히 5공화국 때 탄탄대로를 구가했다.

58년 고시사법과 합격 60∼69년 춘천·서울·대전·대구지법 판사 69년 의성지원장 69년 변호사 개업 71년 8대국회의원(대구中 신민) 73년 9대국회의원(대구中·西·北 무소속) 75년 신민당 대변인 78년 롤러스케이팅연맹 회장 79년 10대국회의원(대구中·西·北 무소속당선·신민당 입당) 80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 81년 11대국회의원(대구中·西 민정) 81년 국회 문화공보위원장 83년 同법제사법위원장 88년 헌법재판소 상임재판관 94년 변호사 개업(현) 96년 무당파국민연합 대표위원

게다가 현재 헌법재판소의 윤영철 소장을 포함한 재판관들이 3기임을 고려하면 한 변호사는 두 기수나 '선배'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한 변호사가 2차 심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후배 법조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총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4·15 총선 전까지는 재판을 중단해야 한다. …탄핵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고 헌재는 그 적합성만 심사하면 된다."

변론연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추위원측은 이미 헌재에 제출했던 A4용지 60여쪽짜리 의견서 및 답변서 등을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이에 대해 재판부와 대통령 변호인단이 저지하고 나섰지만 소추위원측 대리인단은 막무가내였다. 이 때문에 회의가 지연됐고, 6시간의 3분의 2 이상을 소추위원 의견서를 읽는 데 소비해야만 했다.

[3차 공개변론] 원색적인 '색깔론' 제기한 소추위원측 이진우 변호사도 5공 핵심

a 이진우 변호사  "노 대통령의 법철학은 볼셰비키즘 철학의 본류다."

이진우 변호사 "노 대통령의 법철학은 볼셰비키즘 철학의 본류다." ⓒ 연합뉴스 진성철

소추위원측 이진우 변호사는 지난 9일 탄핵심판 3차 공개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노 대통령을 지목해 원색적인 색깔론을 제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시장 입후보해서는 '법법 하지 말라. 내게는 법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것은 볼셰비키즘 철학의 본류다. 이후 대통령이 된 뒤에도 '법법 하지 말라. 너희들은 다 법 지켰느냐'며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때문에 화물연대, 한총련 등 불법시위들이 말할 수 없는 폭력과 범죄가 한해 내내 지속되었다."

이에 재판관이 "이 사건과 관련된 변론을 해달라" "피청구인 본인 심판을 채택하라는 것 아니냐" "요약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변호사의 '색깔론'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이 변호사는 포항 출신으로 지난 80년 입법회의 의원을 지낸 바 있으며, 81년에는 11대 국회의원(포항·영일·울릉 민정당), 84∼85년 국회 사무총장을 거쳐 제5공화국 시절인 87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무제1수석비서관을 지낸 대표적인 5공화국 인사이다. 그는 이후 13대 국회의원(포항 민정·민자)을 지냈고, 지난 2000년 자민련 16대총선 공천심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거쳐 현재 부패방지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 5공화국의 핵심 인물이 '의회쿠데타'로 일컬어지는 노 대통령의 탄핵 심판 법정에 나와 '색깔론'을 제기한다는 것도 역사의 한 아이러니다.

소추위원측에는 율사출신인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도 포진하고 있다. 그는 지난 80년에 중령으로 예편한 뒤 81∼84년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바 있고, 그 뒤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을 거쳐 정치인으로 성장해왔다. 김 의원은 12일 "탄핵심판에서 측근비리의 핵심은 대통령의 연루 여부를 밝혀내는 일이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록을 광범위하게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임광규, 안동일, 하경용, 박준선 변호사 등이 소추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추위원측에는 5공화국의 핵심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이번 탄핵심판의 내재적 함의를 유추해볼 수 있다. 일부에서 지적하듯 5공 세력들의 역사적 반격이라는 측면을 간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대부분 독재권력에 저항했던 인물들

a 재판정 입장하는 변호인단 2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2차변론에서 변호인단이 입장하고 있다.

재판정 입장하는 변호인단 2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2차변론에서 변호인단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반면 노 대통령 변호인단의 면면을 살펴보면, 5공화국 당시 독재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당한 피청구인('피고'역)인 노무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은 유현석, 하경철, 이용훈, 박시환, 한승헌, 김덕현, 양삼승, 강보현, 조대현, 문재인, 이종왕 변호사 등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변호인단의 '얼굴'격인 간사대리인 문재인 변호사는 75년 군부독재 반대시위로 투옥된 바 있으며, 사시에 합격하던 해인 80년에는 계엄령 위반으로 투옥된 바 있다. 그 뒤 그는 부산민주시민협회 상임이사, 한겨레 창간준비위원 등을 지낸 바 있다.

법률대리인단의 유현석(78) 변호사는 재야 원로로 권인숙씨 성고문사건 재정신청을 맡았었으며, 현재 경실련 공동대표와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 민변 고문을 맡고 있다.

또 하경철(65) 변호사는 지난 1987년 대우조선 사건에서 제3자 개입혐의로 구속됐던 노 대통령의 변호를 자원했었고, 지난 1999년부터 2004년 1월까지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여기에 대법원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이용훈(63) 변호사와 전 감사원장으로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장, 방송위원회 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바 있는 한승헌(71) 변호사(법무법인 광장)가 참여하고 있다.

5공 세력을 위시한 '창'과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방패'와의 한판 승부. 이들은 앞으로 4차(20일) 5차(23일) 공개변론을 통해 각각의 기일에서 최도술·안희정씨와 여택수·신동인씨를 상대로 증인신문을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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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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