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만들고 보자'식 한나라당발 특검의 종말

[取중眞담] '대통령 측근비리' 김진흥 특검팀, 무얼 남겼나

등록 2004.03.31 19:55수정 2004.03.3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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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통령 측근비리수사를 담당한 김진흥 특별검사가 31일 오전 서초구 특검사무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동안 자료를 살피기 위해 안경을 만지고 있다.

대통령 측근비리수사를 담당한 김진흥 특별검사가 31일 오전 서초구 특검사무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동안 자료를 살피기 위해 안경을 만지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은 '특검의 무덤'이 될 것이다."

3개월 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사건을 담당한 김진흥 특별수사팀이 발족할 즈음 검찰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검찰이 측근비리 수사를 확실하게 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검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내비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이번 특검은 특별한 결과를 내지도, 특별한 이슈를 만들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특검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특검의 교훈은 특검 일반에 대한 부정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특검 무용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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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씨를 기소한 것 이외에 다른 측근인 이광재·양길승씨와 관련된 의혹사실에 대해서는 '사실무근' 결론을 내린 김진흥 특검은, 수사결과 발표 자리에서 기자로부터 '특검 무용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특검무용론은 특검을 만든 양반(국회의원)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나. 우리(특검팀)는 특검으로 쓰겠다고 해서 일한 사람들일 뿐이지, 사회지식인 입장에서 '특검무용론'에 대해 말하라면 몰라도, 특검 입장에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김 특검은 이어 '정치권을 원망하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원망한다면 어떻게 하려고요"라고 반문하면서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정치권의 반응은 냉담했다. 애초 특검법을 만들었던 야당은 "면죄부용 수사로 끝났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여당은 "야당 공세의 허구성이 입증됐다"고 비판했다. 서로 엇갈린 주장과 공방만 펼칠 뿐, 특검수사에 대해 노고를 치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특히 특검을 출발시킨 한나라당의 배용수 수석부대변인은 "특검이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의 진실을 확실히 밝혀주기를 바랬지만 결과는 실망스럽기만 하다"고 비난했고, '최도술 300억원 수수설'을 제기했던 홍준표 의원도 "특검선정 과정에서 약체특검이라는 지적이 있었으며, 특검수사 과정에서도 파견검사와 특검보간의 갈등도 있었다"며 특검의 '역량과 의지'를 문제삼았다.


결국 이번 김진흥 특별팀은 그 결과에 대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으로부터 강하게 비난을 받는 특검으로 기록됐다.

법조계의 반응은 '정략특검 무용론'이 대세다. 민변 소속 한 변호사는 "이번 특검이 밝혀낸 것은 없다"며 "문제는 특검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는데 야당이 정략적으로 특검을 추진했다는 점으로 '정략 특검'의 말로를 봤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특검 무용론'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는데 정치적 장난 때문에 특검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며 "검찰뿐만 아니라 법무부까지도 이 같은 논리가 확산되면 그간 우리가 힘들게 일구어낸 특검제도의 본질이 호도될 수 있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특검에서 활동했던 전 특검 관계자도 "이번 특검 역시도 정치적인 특검이었고 앞선 어느 특검도 마찬가지 아니었겠나"라며 "특검수사를 맡아 수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측근비리 특검팀에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는 이어 "(특검의) 결과가 어떻든 문제를 제기한 정치권에서는 그 결과를 따라야 할 것인데, 오늘 나온 정치권의 논평을 보면 모든 책임을 특검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이런 정치권의 모습은 너무 모순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애초부터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은 채 문제를 제기한 정치권이 반성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특검팀 관계자 "다시는 특검 맡지 않을 것"

최종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김진흥 특검팀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특검팀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치권에서 급조해 허술하게 만들어진 특검법으로 수사를 해야만 했던 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특검팀은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끝부분에 이번 대통령 측근비리 특별검사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향후 특검법을 입법할 경우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특검팀의 의견에 따르면 현행 특검법은 입법 과정에서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많고 수사대상 등을 정확히 규정하지 않아 혼선을 가져오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특검팀은 수사를 시작하면서 '측근비리 특검법'을 만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법 해석을 문의를 했지만, 워낙 급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결국 특검법안을 작성한 한나라당 법률지원단 관계자들과 논의를 하면서 정작 수사를 하지 못하고 법안 해석에 시간을 소비했다고 전했다.

그 예로 김진흥 특검이 수사결과 발표에서 밝혔듯이 이원호씨가 정치권에 제공한 돈이 법안 기록에는 '1억5000만원'이었는데,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에 문의해 여러차례 확인한 결과는 정치권과 무관한 1억500만원이 실체였다는 것.

이에 대해 특검팀 관계자는 "법안을 작성한 사람이 '급하게 하다보니 잘못 됐네요'라고 말을 하는 일도 있었다"며 "이외에도 법안을 해석하는데 있어 유추해석의 여지가 많아 처음에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3개월 동안 진행된 측근비리 특검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필요성을 심각히 고려하지 않은채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내질러버린 한나라당발 특검으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했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막대한가. 또한 그 결과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게 나왔다고 내팽개치는 한나라당식 비난으로 인해 시민사회가 '정치검찰'의 대안으로 어렵사리 띄워놓은 특검 제도 자체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하고 있는가.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누군가 해야할 일이기에 국가에 봉사한다는 마음을 갖고 참여하긴 했지만, 다시 특검에 참여하라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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