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만도 못한 정치인 답답해”

[이색선거운동현장]지하철 누비는 자민련 백철 후보

등록 2004.04.13 10:26수정 2004.04.1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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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갑에 출마한 자민련 백철 후보 ⓒ 김진석

“제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고 수군거려도 한 평생 도전했던 꿈을 꺾고 싶지는 않아요. 비리를 위해 쓰일 화려한 경력은 없어도 서민들 눈물 닦아줄 정치적 신념과 의지가 있습니다. 일단 한번 시켜주시면 '국민들이 또 다시 뽑고 싶은 국회의원' 이 될 자신이 있습니다!”

'5전 6기'로 도전하고 있는 신인 아닌 정치 신인이 있다. 영등포 갑에서 출마한 네 번(국회의원선거 3번, 구청장선거 1번)의 선거에 이어 강서 갑에서 두번 째 도전을 하고 있는 백철(47·자민련) 후보는 이번 선거를 18대 예비 선거 운동으로 생각한다.

자신을 알릴만한 홈페이지도, 운동원도, 차량도 없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오로지 혼자 발로 뛰는 것이다. 백철 후보는 강서갑 주민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출퇴근 시간에 전철 구간을 오가며 땀띠가 나도록 뛰어다닌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출마한 백철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돈이 없어 전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지하철 선거 운동

지하철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선거 운동이 시작됐다. 백 후보는 5호선 까치산과 신정역 구간 사이를 출퇴근 시간에 맞춰 평균 서른 번 이상 왕복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젠 그를 먼저 알아보고 '힘내라'는 인사를 건네는 주민이 생겼다며 백 후보는 말한다.

그가 17대 총선에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서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껏 백 후보가 사용한 선거 비용은 대략 400만원 정도. 주민들을 찾아 발로 뛰어다니는 통에 이젠 어깨에 거는 띠마저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금맥을 캐는 기분으로 운동한다"

"안됐다. 안됐지만 ……. ”

어느 새 강서갑 명물(?)이 되버려 그를 알아본 유권자들은 먼저 웃음부터 터뜨린다. 그러나 명함을 주기 위해 백 후보가 다가가면 이내 곧 고개를 흔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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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유세를 하고 있는 백철 후보 ⓒ 김진석

어떤 이는 그 앞에서 바로 명함을 구기거나 찢어버리기도 한다. 간혹 질문을 해도 '나이를 물어보는 정도' 에서 그치고 만다. 백 후보도 안다. 17대 총선도 그리 승산 있는 도전이 아니라는 것을.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금맥을 캐는 기분이죠."

간혹 백 후보를 인간적으로 응원해주는 유권자를 만날 때 마다 그는 '마치 금맥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선거가 종반에 이르자 네 시간을 자며 강행군을 펼쳤던 그는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벌써 여섯 번째 입니다. 좌절하거나 회의감 같은 것에 빠져들 틈도 없어요. 차라리 그럴 순간에 명함을 한 장이라도 더 돌려 단 한 표라도 얻어야죠. 유권자들과 만나기 위해 땀띠 나도록 뛰어다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밤이 깊어지자 눈꺼풀이 무거운지 백 후보의 손이 자꾸 눈가로 올라간다. 유권자들에게 무던히도 웃어대는 그이지만 백 후보의 눈을 맞춰주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금맥을 캐는 것' 만큼 희귀했다.

"현 정치인들은 없는 사람들에게 표를 얻어가고 당선되면 곧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있는 사람 옆에 붙어있어야 '돈'과 '조직'이 늘어나기 때문이죠.”

백 후보는 '정경유착'을 현 정치인들의 가장 큰 문제이라고 지적하며, 그러한 '관성의 법칙'을 과감히 깨버리고 싶다고 다짐한다.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저라도 도전해 바른 정치를 해 보고 싶습니다. 한번 국회의원이 되면 오히려 국민들이 다시 뽑아주고 싶은 정치인이 돼야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백 후보는 단 한명이라도 그를 응원해주는 유권자가 있다면 한 명을 열명으로 만들기 위해 18,19대 총선에도 도전할 것이라 밝혔다. 백 후보는 '국민들이 다시 뽑고 싶은 국회의원'이 될 자신이 있다며 결코 자신의 도전을 후회하지 않았다.

선거를 이틀 앞둔 그는 담담했다. 16대 총선에서 5% 가량 표를 얻은 백 후보의 목표는 이번 총선을 통해 지지율을 10%이상 높이는 것이다. 명함이 든 노란 봉지와 확성기가 유일한 선거 운동 도구인 그는 단 한명의 유권자라도 더 만나기 위해 또 어디론가 바삐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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