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오늘은 야외 수업하자"

벚꽃 그늘 아래에서 꽃눈을 맞으며

등록 2004.04.14 12:44수정 2004.04.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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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벚꽃 만발한 현충탑

벚꽃 만발한 현충탑 ⓒ 한준명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학교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체육대회나 야영은 기본 중에 기본이고, 학년 초에 뒷산 가득 삼겹살 냄새를 피워 올리는 학급별 단합대회와 여름 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사제동행 여행, 그리고 봄가을에 하는 야외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우리 나라에서 가장 착하고 귀여운, '짐승'같은 녀석들이 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이맘 때쯤 우리 학교에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하나 있다. 학교 뒷산 중턱에 있는 현충탑 공원을 온통 연분홍으로 수놓으며 피어나는 벚꽃이 그것이다. 꽃물결이 하늘로 솟구치듯 만개한 벚꽃은 장관, 그 자체다. 산들바람이 불어 흩날리는 벚꽃의 물결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설렘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a 봄날의 야외 수업

봄날의 야외 수업 ⓒ 한준명

나는 봄과 가을에 아이들과 함께 야외수업을 한다. 가을 산은 멀리 보아야 아름답다. 색색이 어우러져 있는 산등성이의 단풍은 쇠락하는 것조차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가을날의 야외 수업은 산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서 이루어진다.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용인 시내의 정경이며 사방에 둘러친 가을 산의 풍경은 그대로 가슴에 유화물감으로 그려 놓은 한폭의 그림이 된다.

봄날의 산은 산 속에 있을 때라야 아름답다. 곳곳에서 새순을 밀어올리는 자연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구석구석 자기의 존재를 화려하게 알리는 꽃들의 자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정취다.

현충탑에서의 야외 수업은 우리가 자연과 얼마나 가까울 수 있는가를 몸으로 느끼게 한다. 산업도로 쪽으로 난 계단의 벚꽃 그늘에 앉아 수업을 하노라면 수시로 아이들의 탄성이 터져나오곤 한다. 산들바람 불어 겨드랑이의 땀이 솔솔 말라갈 무렵, 은가루 뿌리듯 하르륵 흩날리는 꽃잎, 꽃잎들…. 그 순간 아이들과 나는 자연이 된다.

a 벚꽃 그늘 아래의 아이들

벚꽃 그늘 아래의 아이들 ⓒ 한준명

또 하나의 재미가 있다. 수업을 하느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녀석들의 시선이 멀리 계단 아래로 향하며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분명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계단을 올라와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과 아이들이 꾹꾹 눌러 참는 장난기의 묘한 변주. 그리고 그가 우리를 스쳐지나갈 때의 그 어색한 긴장…. 마음껏 풀어져버릴 것 같은 벚꽃 그늘 아래의 햇살을 팽팽히 당겨놓는 순간이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이라면 일부러 짬을 내서라도 현충탑에 한번 올라 볼 일이다. 하르륵 흩날리며 제 몸을 털어내는 자연의 놀라운 자태에 한번쯤 마음껏 취해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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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차 국어교사.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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