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지켜온 순백의 맵시, 나원리 오층석탑

주마간산 경주 돌아보기 <3> 나원리 오층석탑

등록 2004.04.16 01:17수정 2004.04.1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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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여행하다 보면 시내든 시 외곽이든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탑이다. 중국과 일본에는 목탑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석탑이 주를 이룬다. 남아 있는 목탑이라고 해봐야 법주사 팔상전이 유일하고, 그나마 조선시대의 탑이라고 한다. 대륙의 한 끄트머리에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질 좋은 화강암이 많았기에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아름다운 석탑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삼층석탑의 효시라는 감은사터 동서 삼층석탑과 고선사터 삼층석탑이 보여주는 장대하고 늠름한 기상이 그렇고, 삼층석탑의 형식적 완성이라는 불국사 석가탑의 우아한 자태가 그렇다.


이같은 석탑들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중 하나가 바로 나원리 오층석탑이다. 절은 오간 데 없고, 그 흔적마저 찾아 볼 수 없지만, 우거진 소나무 사이에 나원리 오층석탑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맵시를 뽐내며 서 있다.

나원리 오층석탑
나원리 오층석탑우동윤
나원리 오층석탑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수월치 않다. 무엇보다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이 좁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버스는 아예 진입조차 불가능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잘 가꾸어진 유적지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치 초등학교 소풍 때의 보물찾기처럼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마침내 나원리 오층석탑을 발견하면 그 어떤 보물보다도 아름다운 탑의 자태에 반할 것이다. 그냥 보물이 아니라 나라가 그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서 국보 제 39호로 지정됐다.

8세기쯤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나원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석탑과 달리 오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도 9.76m로 경주에서는 감은사터 삼층석탑과 고선사터 삼층석탑 다음으로 크다. 앞의 두 탑이 삼층석탑이라 전체적인 느낌이 크고 장중하다면 나원리 오층석탑은 10m에 달하는 높이만큼 날씬한 맵시가 볼수록 예쁘다.

왼쪽부터 나원리 오층석탑, 감은사터 삼층석탑, 고선사터 삼층석탑
왼쪽부터 나원리 오층석탑, 감은사터 삼층석탑, 고선사터 삼층석탑우동윤

1300여년 전 세워진 석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한 것이 놀랍다. 안내판에도 ‘이끼가 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여 나원백탑(羅原白塔)으로 불린다’고 적혀 있다. 왜 이끼가 끼지 않는 것인지, 여기에는 어떤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어 아쉽다.


‘혼자 보기 아깝다’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인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외딴 곳에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푸대접도 이런 푸대접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이 탑에게는 해로울지도 모를 일이다. 순백의 탑신이 사람들의 손때와 매연으로 더럽혀질지도 모르지 않은가.

탑과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득 피어있는 흰 꽃을 봤다. 과수원 같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도무지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하고 계시는 할머니께 여쭤보니 대뜸 “배꽃 아이가!”라며 고함을 치신다. 그것도 모르느냐는 꾸중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배꽃과 나원리 오층석탑이 몹시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배꽃과 나원리 오층석탑이 몹시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우동윤

잠시 차에서 내려 가까이서 하얀 배꽃을 감상했다. 문득 배꽃이 나원리 오층석탑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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