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3일 4월 총선에 출마할 정만호 의전비서관,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권선택 인사비서관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손병관
지난 2월 13일, 이날 사표를 낸 문희상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은 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을 찾아와 청와대를 떠나는 소회와 함께 '출마의 변'을 밝혔다. 그러나 출사표를 던지고 경기도 의정부 갑과 서울 도봉 을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할 예정인 문희상 실장과 유인태 수석의 발걸음은 결코 경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장수의 무거운 발걸음을 떠올리게 했다.
문 실장은 "오늘 이 순간까지도 대통령께서는 나더러 (지역에) 나가라고 한 적은 없다"면서 "늘 얘기하지만 시대적 흐름과 개인의 선택의 접점 사이에 내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 나가기가 싫거나 '죽을 자리'인줄 뻔히 알면서도 다른 데서 나를 필요로 하는데 아무 일 안하고 있는 것이 비겁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선택'을 한 것이라는 얘기이다.
'영원한 자유인'으로 통하는 유인태 수석은 자신의 '선택'과 관련 "다시 백수로 돌아가고 싶은데 굳이 뻘밭(정치판)으로 나가라고 하니 내키지 않은 발걸음으로 뻘밭으로 간다"고 비장감을 솔직히 토로했다. 자의(自意)보다는 타의(他意)에 의한 '징발'임을 암시했다.
그는 그 전날에도 총선에 출마하려는 도봉을에서 여론조사는 해봤냐고 묻자, 마치 남의 얘기하듯 "당에서 조사된 것이 있는데 상대후보에 비해서 오차 범위 내에서 내가 약간 지는 것으로 나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의 '신의'를 지킨 그들은 거뜬히 살아와서 돌아왔다. 그것도 '훈장'과 함께. 이번 여의도 입성으로 문희상 전 실장은 '의정부시 최초의 3선'이라는 영예를 안았으며, 유인태 전 수석은 이번 당선으로 15, 16대 두 번에 걸친 낙선과 공천탈락의 아픈 기억을 씻고 재선 의원이 되었다.
특히 문희상 전 비서실장은 16, 17대 두 번 다 청와대 출신으로 당선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개인적으로는 15, 16대에서 서로 한번씩 승패를 주고받았던 홍문종 한나라당 의원과의 결승전에서 승리한 셈이 됐다. 그는 DJ정부 초기에 정무수석을 지낸 뒤에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으나 노무현 정부의 비서실장으로 기용되자 의원직을 미련없이 버렸으나 이번에 다시 찾아온 셈이다.
14대(92∼96년) 의원을 지낸 유 전 수석은 15대 선거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해 설훈 의원(국민회의)에게 패했고 16대 선거 때는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막판에 공천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이번 입성으로 울분도 씻고 지나긴 '백수' 생활도 청산하게 되었다.
유 전 수석은 '엽기수석' 답게 정무수석 출신으로서 국회에 들어가 당(黨)·청(靑)의 가교 역할을 한 의향이 없냐고 묻자 "이 정부에서는 당정분리이기 때문에 정무수석의 역할은 할 게 없다"고 잘라 말하고 "16대 국회가 마지막 1년을 쌈박질로 보낸 것이 아쉽다"며 생산적인 국회활동을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광재 "성공한 노무현대통령 만들고 싶어"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386 최측근'이었던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도 금배지의 꿈을 이뤘다. 당초에 그는 썬앤문 관련 의혹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으며 출마 가능 여부조차 의문시됐었다. 그러나 당내 경선에서 현역인 김택기 의원을 꺾은 데 이어 본선에서도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광재 전 실장은 당선 소감을 묻는 방송 인터뷰에서도 "대통령이 다시 일할 수 있게 과반수 확보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제하고, "노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만드는 것의 제 의무다"면서 "대통령 철학을 실현하고 일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남의 벽은 여전히 두터웠다. 이해성 전 홍보수석(부산 중·동), 박재호 전 정무비서관(부산 남을), 박기환 전 지방자치비서관(경북 포항남·울릉), 배기찬 전 행정관(대구 북을) 등 이 지역에서 도전장을 낸 후보들은 줄줄이 탈락했다.
이와 같은 서고동저(西高東低) 현상은 참여정부 각료 후보들의 성적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총선에 출마하는 전현직 장차관 가운데 김진표 경제부총리(경기 수원 영통), 한명숙 환경부장관(고양 일산갑), 변재일 전 정통부차관(충북 청원) 등 3명만이 당선되었다.
결국 열린우리당의 끈질긴 요청과 정부의 개각 필요성에 의해 이번 총선에 '올인' 했던 11명의 참여정부 장·차관 가운데 2/3가 넘는 영남권 후보들은 전부 지역주의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김 전 장관은 손학규 경기지사의 강력한 후원을 받으며 경제실정 심판을 내걸고 공격해온 한현규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를 꺾고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한 전 장관도 5선의 거물인 홍사덕 후보를 맞이해 '신승'을 거두었으며, 변 전 차관은 '행정수도 이전'이란 강력한 이슈에 힘입어 여유 있게 경쟁 상대들을 제압했다.
이처럼 중부권 주자들이 상대적으로 여유를 갖고 선거전을 치른 반면 영남에 출마했던 후보들은 관료출신을 선호하는 영남정서에 맞춘 '인물'이나 든든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노풍'(老風)까지 가세해 지역을 휩쓴 지역주의 바람의 낙엽처럼 날아가 버렸다.
윤덕홍 전 교육부 장관(대구 수성을)이나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경북 경산·청도),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경북 영주) 등 등 대구·경북 지역에 나갔던 후보들은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또 막판까지 경합이 기대됐던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부산진갑)과 최낙정 전 해수부 장관(부산 서구),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경남 남해·하동) 등 부산·경남의 후보들도 쓴잔을 들어야 했다.
염동연과 이강철의 명암
이와 같은 동저서고(東低西高) 현상은 노 대통령의 정무·조직특보 출신으로 좌(左)동연 우(右)강철로 불리는 염동연(광주 서구갑) 후보와 이강철(대구 동갑)의 엇갈린 당락에서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염 후보는 웃은 반면 노 대통령의 또 다른 오랜 측근인 이강철 후보는 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주성영 한나라당 후보에게 큰 표차로 밀려 눈물을 흘려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무특보, 열린우리당 당무조정위원장을 지낸 염씨는 앞으로 여당 의원으로서 행보가 주목된다. 그는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광주에서 '노풍'(盧風)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대선 이후 정치자금 수수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등 불운을 겪었으나 이번 당선으로 화려하게 정치권에 '롤백'했다.
염동연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열린우리당에 대한 격려로 알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참여정부가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면서 "노 대통령이 광주에 느끼는 마음의 빚을 덜어주고 지역경제를 도약시킬 수 있도록 참여정부와 광주를 잇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반면에 이강철 후보는 2002년 노 대통령 후보 조직특보, 열린우리당 외부 인사 영입추진단장으로 활동하는 등 노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지역주의 벽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대구 중구에서 한번, 수성구에서 한번 낙선한 데 이어 이번의 네 번째 도전마저 물거품이 되었다.
노 대통령의 '총선 올인(all in) 전략'은 참여정부의 사활이 걸린 4·15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권의 가용 자원을 총동원한다는 것으로, 열린우리당 출범 이후 영입추진위원장을 맡은 정동영 의장과 이강철 전 상임중앙위원 등이 앞장서서 추진해 왔다. 이 때문에 전례를 찾기 힘든 '각료 줄세우기'라는 야당의 비판을 받았으나 결국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유념할 것은 지난 1년 동안 '노무현 저격수'를 자처한 김문수·이재오·정형근·홍준표 의원 등 '한나라당 재선 4인방'이 모두 살아서 '3선의 관록'으로 돌아온 점이다. 이는 국민이 노 대통령이 운전하는 '개혁호'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독주하지 않도록 '제동 장치'를 절묘하게 끼워판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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