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12

시작된 정의구현 (10)

등록 2004.04.16 14:18수정 2004.04.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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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아아악! 이, 이 미친 년아, 대체 왜…?”
“나쁜 놈! 네놈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인이야.”

“아아악! 차, 차라리 죽여라. 아아아악!”
“흥! 어림도 없는 수작. 네 놈은 쉽게 못 죽는다.”


씹어 삼키는 듯한 보타신니의 음성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뭐라? 이번엔 살려달라고? 흥! 귓구멍에 안개가 꼈나? 분명히 말했다. 네놈을 결코 살려두지 않겠다고…”

“아악! 아아악! 그, 그럼 뭐야? 죽이지도 않고 살려두지도 않겠다는 거야? 아아아악! 그, 그만! 아아악!”
“흥! 어림도 없는 수작. 이제 겨우 시작이야. 이잇!”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아아악!”

초지악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이 여옥혜를 비롯한 일행은 와룡곡의 모든 전각을 부숴 장작으로 만들고 있었다.

전각들을 없애려면 불을 지르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전각을 허문 뒤 기둥이나 서까래, 대들보를 쪼개는 이유는 대규모 다비식(茶毘式)을 베풀기 위함이다.


그것은 예비대원들의 시신을 태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와룡곡의 끝에는 커다란 바위로 입구가 막힌 동혈이 있었다. 우연히 그곳을 발견한 왕구명은 뭐가 있나 싶어 안으로 들어섰다가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을 에일 듯한 차가운 냉풍이 불었기 때문은 아니다.


입구로부터 대략 이십여장 정도 되는 곳에 엄청난 수효의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얽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나이 이십을 넘기지 않은 여인이었는데 모두 발가벗겨져 있었다.

예비대원들은 모두 이십세 전후의 청년들이다. 그들은 짧게는 삼 년, 길게는 칠년 동안이나 와룡곡에 머문다. 혈기왕성한 그들을 가둬놓고 무공 수련만 강요하다보니 문제가 발생되었다.

타오르는 욕정을 해소하기 위해 몰래 빠져나가는 일이 발생된 것이다. 인근에는 기루가 없다. 따라서 욕정을 해소하려면 여염집 여인을 겁탈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숨겨야 한다.

아니면 쫓겨나는 것은 물론 부친의 무천장주직마저 박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저지르고는 살인멸구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재미 들린 대원들은 태산 유람 온 사람들 가운데 반반하다 싶은 여인들을 납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가둬놓고 돌아가며 겁탈을 자행했다. 그러다가 죽으면 냉기 그득한 동혈 안에 시신을 던져 넣었던 것이다.

이일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초지악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비밀을 유지한 것이다. 하긴 그 역시 대원들 모르게 여인들을 가둬놓고 즐기고 있었으니 피차일반인 셈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것은 와룡곡의 전통이 되었다. 다시 말해 현재 중원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정의수호대원 대부분이 이런 짓을 자행하는 데 가담했다는 것이다.

중인들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신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무려 일천여구 정도 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와룡곡 한복판에는 엄청난 무더기의 장작들이 쌓였고, 그 위에는 시신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보타신니를 따라왔던 비구니들이 목탁을 두들기며 거화편(炬火篇)을 외우는 동안 왕구명이 장작에 불을 붙였다.

똑똑똑똑! 똑똑똑똑!

“이 불은 삼독의 불이 아니라 여래일등삼매(如來一燈三昧)의 불이니… 이 빛을 보고 자성의 광명을 돌이켜 무생을 깨달으라.”

장작에 붙은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매캐한 연기와 더불어 화염이 솟기 시작하였다. 이때 누군가의 음성이 있었다.

“어서 불을 꺼요. 저 시신들은 여기서 어떤 악행이 자행되었는지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일지도 몰라요.”
“맞아! 어서 불을 끄자. 뭐해? 어서 불을 꺼라.”

왕구명의 명이 떨어지자 정의문 제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같은 순간 이름 없는 계곡에선 연신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악! 이 독한 년, 어서 죽여라! 아아악!”
“흥! 어림도 없는 수작. 네놈은 결코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아아악! 아아아악! 아아악! 사, 살려 줘!”

초지악의 몰골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의복은 걸레가 되어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다. 얼굴 가죽을 벗기기라도 하였는지 이목구비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 네놈을 위하여 특별히 준비했다. 맛이나 봐라!”
“헉! 그, 그런! 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보타신니가 품에서 꺼낸 것은 굵은 소금이었다. 그것은 살가죽이 벗겨져 선혈이 낭자한 곳에 뿌려졌다.

잠시 후, 초지악은 거품을 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다소 침잠된 여인의 음성이 있었다.

“저어, 소녀 신니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보타신니는 누군가의 음성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 물건을 아시는지요?”

여인이 내놓은 물건을 바라보던 보타신니의 신형은 눈에 뜨이게 떨리고 있었다. 소녀의 손에 들린 옥잠 때문이었다.

“그, 그건…?”
“알아보시는군요. 그렇다면 청 하나를 올려야겠습니다.”

“……?”
“소녀, 선사의 무덤 앞에서 저 짐승의 목숨을 앗는다 맹세하였습니다. 그러니 저 짐승의 다리라도 자르게 해주십시오.”

“선사? 그렇다면…! 아마타불! 부디 극락왕생하기를… 선사의 무덤 앞에서 한 맹세를 지켜도 좋네!”
“감사합니다.”

유라가 일월신도를 뽑아들자 연신 신음을 토하던 초지악의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그, 그건… 일월신도? 그걸 어찌 네가?”
“사부님! 이 짐승의 다리를 영전에 바칩니다. 야압!”
“아아아아악!”

이날 초지악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한덩이 육괴(肉塊)가 되어 버렸다. 살부살모하고, 동생의 정혼녀를 겁탈하였으며, 하나뿐인 아우를 독살한 짐승의 최후였다.

죽기 직전까지 그가 느낀 고통은 그가 평생동안 타인에게 주었던 고통과 맞먹을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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