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한 개구쟁이 닮은 '미나리아재비'

내게로 다가온 꽃들(43)

등록 2004.04.16 17:23수정 2004.04.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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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아재비
미나리아재비김민수
양지바른 산등성이나 무덤가, 습한 습지에서도 햇살 한 줌만 따스하게 비춰주면 화사하게 눈부신 노랑꽃을 앞다투어 피우는 꽃이 있습니다. 햇살에 광택을 낸 것처럼 반짝이는 꽃, '미나리아재비'가 그것입니다.

미나리아재비는 '미(물(水)을 뜻하는 말)나리(나물을 뜻하는 말)와 아재비(아저씨의 낮춤말로 아주 가까운 사이를 가르치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조금 복잡하죠? 그러나 이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식물의 특성을 발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논이나 습지 같은 곳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잘 아실 것입니다. 같은 말이 들어가는 미나리아재비도 역시 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아재비는 아주 가까운 사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식물에 있어서는 성격은 비슷한데 모양이 다를 때 사용합니다. 결국, 미나리와는 성격이 비슷하지만 동시에 판이하게 다르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지요.

김민수
미나리아재비의 꽃말은 '천진난만함'입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미나리아재비를 보면서 저는 유년의 시절 겨울, 햇살이 따스한 어느 날인가 마당이 넓은 집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구슬치기를 하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정확한 명칭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구슬치기의 종목도 다양해 '삼각형', '봄들기', '쌈치기', '홀짝' 등을 우리는 손이 곱다 못해 터지도록 했습니다. 주머니 안에서 자글거리는 구슬 부딪히는 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호주머니에 구슬을 넣고 뛰어다니다 보면 그 소리에 온 몸이 다 근질근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김민수
미나리아재비의 다른 이름은 '애기젓가락풀'입니다. 천진난만한 것과 어울리는 이름이지요. 미나리아재비의 줄기가 비었으니, 아이들이 젓가락으로 사용하기에도 가벼워서 안성맞춤이겠지요. 그러나 미나리아재비를 상처난 손으로 만지면 피부에 좋지 않다고 하니 아이들젓가락으로 사용할 생각은 마세요.

김민수
반짝반짝 빛나는 노란 꽃들이 마치 별똥이 들판에 떨어져, 별을 박아 놓은 듯합니다. 까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낮에는 이렇게 들판에서 형형색색 여러 가지 꽃들로 피어나 빛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과 땅의 만남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간혹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그 곳이 땅이요, 동시에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수
미나리아재비의 줄기 속은 텅 비어있습니다. 이것을 부정적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텅빈충만'을 보기로 했습니다. 가운데가 비어있는 가녀린 줄기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화사하고 예쁜 꽃을 충만하게 달고 있으니 '텅빈충만'입니다.


김민수
꽃을 찾아 여행을 하다보면 마치 범인이 범죄 현장을 다시 찾는 것과 같은 심정일 때가 있습니다. 미나리아재비는 들판 어디에나 피어있는데도, 작년 이맘때 처음 만났던 그 곳에서 다시 조우하고 싶어, 주변을 여러 번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가 그들을 발견하면 "안녕, 한 해 동안 잘 있었니?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줘서 너무 고마워"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인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서, 혹은 뽑혀지거나 환경 파괴로 인해 만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때가 되지 않았다면 다시 오면 되지만, 인간의 오만함과 무지로 인해 피어나지 못한 경우에는 마음이 아픕니다.

김민수
온 식구가 나에게 전염돼 산야에 피는 모든 꽃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동행할 때에는 꽃에 대해서 아는 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줍니다. 꽃 이름에서부터 꽃말, 꽃의 전설 등을 들려주면 참 좋아합니다.

막내녀석은 아직 이름이 생소한 꽃들은 제대로 외우지 못해, 물어보고 또 물어보지만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아, 이것이 나 어릴 적 아빠랑 보았던 그 꽃이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물어볼 때마다 귀찮아하지 않고 또박또박 꽃의 이름을 이야기 해 줍니다.

그런데 간혹 꽃말도 꽃의 전설도 없는 꽃들이 있습니다. 아니 저마다 사연이 있는데,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꾸며서라도 이야기를 해줍니다. 미나리아재비도 그래야만 했습니다.

김민수
애들아, 미나리아재비는 원래 하늘에 살던 별이었단다. 별은 낮이고 밤이고 항상 하늘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별이 보이는 밤에만 별이 있다고 했어. 사실 낮에는 아주 큰 별인 해가 있어서 아무리 반짝거려도 사람들에게 자기를 보여줄 수가 없었지. 그 많은 별 중에서 아주 노란 별이 있었는데, 이 별은 한 가지 소원이 있었어.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지.

'하나님, 저는 낮에도 사람들이 예쁘다고 봐줄 수 있는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어요. 밤은 너무 춥거든요.'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하나님은 그 별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어. 노란 별은 별똥이 되어 땅으로 내려왔단다. 그리고 그 별똥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의 이파리를 가진 꽃이 피기 시작했어. 그것이 미나리아재비야.

그런데 땅에 내려오니까 또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싶잖아. 고향으로 가고 싶은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몸이 가벼워지면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해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웠어. 그래서 미나리아재비의 줄기는 텅 비우게 된 것이고, 가벼워서 '애기젓가락풀'이라는 별명도 얻었단다.


김민수
이런 이야기들을 즉석에서 해주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녀석은 "아빠, 그 이야기 좀 다시 해줘" 하고 졸라댑니다. 생각이 안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기도 하는데, 그러면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아니었는데' 하는 눈치입니다. 꽃 이야기를 꾸며내는 아빠나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재미있다고 듣는 아이들이나 다 천진난만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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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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