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시험은 몇 살까지 볼 수 있어?"

서른 넘어서 공무원시험에 도전장 낸 친구

등록 2004.04.16 19:09수정 2004.04.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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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그 땐 정말 다들 대학에 가고자 처절했던 입시전쟁을 치르던 때였다. 요즘도 입시전쟁이 치열하긴 하지만 그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소위 일류대, 이류대뿐 아니라 지방삼류대 가기도 실로 만만치 않았던 그 시절. 내 친구 서군은 대학을 포기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본인 말로는 공부에 전혀 취미가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돈벌러 간다고 했다.

졸업하고 그렇게 서군은 돈을 벌러 떠났고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그로부터 정확히 12년간을 정말 소식 한 통 없이 지냈다.

서군을 우연히도 다시 만난 건 2003년 6월경이었다. 나는 고향에서 공무원시험을 봐서 5년째 근무 중이었고 가끔 도립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곤 했다. 그 도서관에서 우연히 서군을 만나게 되었다. 졸업 후 12년. 결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한 눈에 서군을 알아 볼 수가 있었다. 바로 그 얼굴이었다. 졸업 당시의 풋풋함은 세월에 많이 녹아들었지만 웃는 모습이 여전한 서군. 반가웠다.

지난 일을 물으니 다소 망설이긴 했지만 그 비어있던 12년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다. 대구에서 견인차를 운전했다고 했다. 중간에 군대 다녀오고 여태껏 견인차 운전을 했으며 적지 않은 돈도 모았다고 했다. 하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그만 두고 고향으로 왔다고 했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듯 했고 모아둔 돈으로 무언가 장사를 해 보려 한다고 했다.

그날 이후 서군과 자주 만났다. 동창들 대부분이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우리에겐 12년의 간극이 있긴 했지만 오랜 옛친구처럼 금세 친해 졌다. 그리고 서군이 모은 돈 한도에서 적절한 사업 아이템을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음식점-경험이 없고 흔해 빠진 게 음식점이고 결정적으로 서군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해서 일단 포기, PC방-적절한 듯 싶었는데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서군에게 역시나 좀 벅찰 것 같아서 포기, 호프집-서군이 모아둔 돈 내에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포기, 실로 만만한 게 없었다.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장사 꽤나 된다는 곳을 유심히 살폈지만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그렇게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말 그대로 백수생활 6개월.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사업아이템을 찾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갔다.


어렵게 모아놓은 돈이기에 잘못해서 날리기라도 한다면 하는 걱정이 앞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했다. 물론 두드려야 문이 열리겠지만 불경기 불경기 하는 이때 쉽사리 무언가에 도전해 보는 게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런 서군은 나를 부러워했다.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쓸 일 없이 때되면 월급 나오니 얼마나 좋냐는 것이었다. 물론 직장생활에 따른 내 나름대로의 고민은 있긴 하지만 그런걸 서군에게는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분명 서군과 나, 고민은 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니까….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중심이 잡혀있지 않은 자신의 처지가 무척이나 불안하고 한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무엇을 하던 간에 불안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 치열한 경쟁이야 이미 익숙해져 있다 해도 무언가 장래에 대한 위기감 없이 안정적으로 산다는 것, 어쩌면 더이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서군이 불쑥 내민 한 마디. "공무원시험은 몇 살까지 볼 수 있어?" "공부하려고?" "응" 그 처진 눈빛에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콱 막혀 버리는 것 같았다.

"지금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 보게?" "그렇다니까!" 그랬다. 군대 생활로 간신히 연장된 연령제한 마지막 해인 올해, 서군은 소방직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책 놓은 지 13년만에 아니, 고등학교 때도 공부와 담쌓고 살았으니 실로 십수년 만에 책을 잡고 시험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청년 실업률이 높고 직장 구하기가 정말 힘들어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도 매우 높아 솔직히 불가능할 것 같이도 보였지만 서군은 진지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가유공자의 자녀로써 가산점 10%가 있다는 것. 이것은 정말 큰 힘이 되는 듯 했다.

7월 말이 시험이니 석 달 정도가 남았다. 정말 열심히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바로 공무원을 시작했으면 어엿한 사회인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그러지 못해 너무나도 먼길을 돌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마지막 도전을 시작한 서군에게 용기의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반드시 합격해 고향에서 정겹게 오래도록 같이 살자. 필승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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