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17대 총선 '장애인 유권자 배려' 아쉬워

'무용지물' 된 장애인 투표용구

등록 2004.04.17 05:45수정 2004.04.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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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기운 속에서 '희망의 정치'를 예고하는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17대 총선이 '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의 정치를 가져올지 의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구마다 △장애인 기표대 설치 △점자형 투표용구 비치 △중증장애인 이동권 보장(투표소 1층 설치) 등의 편의제공에 신경을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5일 강원도 강릉선거구 성덕동 4투표구 성덕동사무소에 시각장애인 박영복(48·침술지압사)씨가 누나의 도움을 받으며 투표소로 들어섰다. 그는 일반인들과 다름없이 투표절차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국민세금으로 제작된 '점자형 투표용구'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장애인 기표대나 어느 곳에서도 점자형 투표용구가 비치돼 있지 않은 탓이다.

a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시각장애인의 투표편의를 위해 지역구(하얀색)와 비례대표(녹색) 점자형 투표용구를 제작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시각장애인의 투표편의를 위해 지역구(하얀색)와 비례대표(녹색) 점자형 투표용구를 제작했다. ⓒ 김경목

이에 대해 이곳 선관위원 부위원장은 "점자형 투표용구가 있는지 교육받지 못했다"며 성덕동 사무소 사무장에게 책임을 떠 안겼다. 그러나 동사무소 사무장도 시각장애인을 배려하는 데 무관심이기는 마찬가지로 보였다.

기자의 취재가 본격화되자 장 사무장은 비례대표용(14번, 녹색)으로 제작된 점자형 투표용구를 구석진 서류뭉치 속에서 꺼내 "이 투표용구로 시각장애인들의 투표 편의를 제공하게 되죠"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1인2표제로 투표용구는 지역구용(4번, 하얀색)이 하나 더 있어야 하는 데 이곳에는 비례대표용만이 있었고, 투표관리 책임자인 장 사무장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또 장애인 기표대는 있으나 마나 한 장식용으로 전락했다.


장애인 기표대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위해 입구 폭을 넓히고, 기표대 높이를 낮춰 제작됐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온 지체장애인 일부는 일반 유권자가 드나드는 기표대서 투표를 했다. 장애인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선관위원들의 무관심으로 안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에 시각장애인 박영복씨는 "투표 때 장애인에게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한다"면서 "특히 우리들의(장애인) 취업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시각장애인 박영복씨가 찾은 성덕동사무소는 강릉시 21개 동·면 중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a 한 지체장애인 유권자가 장애인기표대가 아닌 일반기표대서 투표하고 있다.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해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 지체장애인 유권자가 장애인기표대가 아닌 일반기표대서 투표하고 있다.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해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 김경목

장애인 유권자가 소외 받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17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3당(한나라, 우리, 민주)과 무소속 후보 중 점자형 공보를 제작한 곳은 한나라당 심재엽 후보뿐이다.

또 지역케이블 Y방송사는 후보토론회를 보도하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중앙선관위는 지난 달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와 '수화통역'실시를 적극 권장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17대 국회의원선거는 16대 선거보다 장애인 유권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스템들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해 장애인들의 참정권이 보장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향후 중앙선관위는 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제도적 정비뿐만 아니라 이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등 미비점을 수정·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체장애인 차영(49·무직)씨는 "없이 사는 장애인들은 전동휠체어가 없어 투표하러 오지도 못한다"면서 "(오늘) 당선될 국회의원은 '장애인을 위한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차씨는 또 "국민이 올바로 살 수 있도록 깨끗한 정치를 펼쳤으면 좋겠다"고 다가올 17대 국회의 새 정치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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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강원정치 대표기자, 2024년 3월 창간한 강원 최초·유일의 정치전문웹진 www.gangwoninnews.com ▲18년간(2006~2023) 뉴시스 취재·사진기자 ▲2004년 오마이뉴스 총선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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