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4·19 유가족에게 항의 받아
전태일 열사 묘소부터 찾은 민노당

[현장] 각 당 지도부-당선자들, 44돌 맞은 4·19 국립묘지 참배

등록 2004.04.19 11:19수정 2004.04.1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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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및 정리 : 이한기 황방열 손병관 최경준 이성규 기자
- 사진 : 권우성 이종호 기자


총선 후 첫 월요일인 19일 오전 각 당 지도부들은 4·19혁명 44돌을 맞아 4·19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새 정치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이날 4·19 국립묘지 참배는 오전 7시30분 한나라당 지도부를 시작으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순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한 유가족으로부터 "동작동 국군묘지는 가고, 5·18 묘역도 가면서 왜 4·19 묘역은 오지 않았느냐, 회개부터 하라"는 항의를 받았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은 먼저 참배를 마친 민주당 의원들과 어색하게 조우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다른 당과는 달리 4·19 국립묘지 참배에 앞서 전태일 열사 묘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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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동영 우리당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등 당선자들이 19일 오전 4.19국립묘지에 헌화 참배하고 있다

정동영 우리당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등 당선자들이 19일 오전 4.19국립묘지에 헌화 참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 당 지도부와 당선자 100여 명이 함께 참배·헌화

오전 8시50분 17대 총선 당선자들 100여 명과 기자단을 실은 버스 4대가 4·19 국립묘지에 도착했다. 정동영 의장을 비롯해 신기남·김명자 상임중앙위원과 당선자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미리 와 있던 김근태 원내대표와 이해찬·김희선 의원, 문희상·박영선 당선자들이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이들에 앞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들이 헌화·참배를 하고 갔고,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당선자들은 오전 8시55분께 4·19 기념탑 앞에서 헌화하고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정동영 의장은 미리 준비된 방명록에 "4·19 정신을 열린우리당이 이어 받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오전 9시께 4·19 묘역을 둘러보고 나오는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에게 4·19 국립묘지를 찾은 중고생들 100명 가량이 몰려 사인과 악수를 요청해 다소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

정동영 의장에 앞서 미리 4·19 국립묘지에 도착한 김근태 원내대표와 문희상 당선자 등은 먼저 헌화와 참배를 마치고 내려온 한화갑 의원 등 민주당 지도부와 만나 잠시 어색한 악수를 나눴다.


오전 9시10분께 4·19 국립묘지 참배를 마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당선자들은 버스를 나눠 타고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국립현충원 참배를 마친 뒤 오전 11시30분 백범기념관 컨벤션센터에서 당선자대회를 가진 뒤 당 지도부와 당선자들의 오찬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이날 오전 발표한 결의문을 통해 "오늘의 대통령 권한정지 상태를 야기한 탄핵소추안을 이른 시일 안에 철회하도록 노력하는 한편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즉각적인 개혁에 나설 것"이라며 "이를 위해 곧바로 '국회개혁추진단'과 '새정치실천위원회'를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a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19일 오전 4.19국립묘지에 헌화 참배한뒤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19일 오전 4.19국립묘지에 헌화 참배한뒤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만난 한 유가족 "회개부터 해야지…"

"동작동 국군묘지는 가고, 5·18 묘역도 가면서 왜 4·19 묘역은 (그동안) 오지 않았습니까. 회개부터 해야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19일 오전 4·19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돌아서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뒤통수에 대고 한 유가족의 호통이 불벼락처럼 날아들었다.

박 대표는 이날 오전 7시30분 김형오 사무총장, 이강두 정책위의장, 정의화 원내총무 대행 등 당 지도부와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및 당직자 30여 명과 함께 4·19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박 대표는 4·19 기념탑에 헌화 및 분향을 마친 뒤 방명록에 "숭고한 4·19 정신에 경의를 표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로 그 뜻을 이루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박 대표는 이어 묘지와 만장을 둘러본 뒤 유영 봉안소에 들러 묵념을 올렸다.

박 대표는 4·19 묘역을 방문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건강은 괜찮은가"라는 질문에는 "아주 많이 좋아졌다"고 짧게 답했다.

박 대표가 유영 봉안소 참배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 가운데 한 50대 남자가 박 대표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을 유족이라고 밝힌 이 남자는 박 대표를 붙잡고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뒤, "여기 찾아주는 것은 좋아요"라며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당직자들이 곧 이 남자를 제지했고, 박 대표 일행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러자 이 남자는 박 대표 일행을 향해 "회개부터 해야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박 대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4·19 기념관을 마저 둘러본 뒤 묘역을 떠났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가운데 이재오 의원이 박 대표에게 "17대 국회에서는 4·19 혁명기념사업과 관련된 예산을 늘려서 기념관을 더 크게 지어야겠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한편, 4·19 혁명은 영구집권을 꾀했던 이승만 정권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을 출범시킨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지만, 이후 박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로 인해 '미완의 혁명'에 그치고 말았다.

따라서 이날 박 대표가 4·19 묘역을 방문하는 것을 두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기자와 만나 "박 대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 문제(4·19 혁명 등)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국립현충원뿐 아니라 5·18 묘역, 4·19 묘역 등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박 대표의 4·19 묘역 참배에는 정의화 원내총무 대행을 비롯해 이재오·김문수·이강두·박찬숙·나경원 당선자 등이 함께했다.

a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19일 오전 수유리 4.19국립묘지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19일 오전 수유리 4.19국립묘지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민주노동당] 4·19묘지 가기 전 전태일 열사 묘소 참배 - 기사대체

다른 당들과는 달리 민주노동당은 19일 오전 4·19 국립묘지를 참배하기 전에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열사 묘소를 참배했다.

이날 오전 10시 전태일 열사 묘소 참배에는 권영길 대표와 단병호·천영세·강기갑·이영순·조승수 당선자 등과 당직자들 30명 가량이 참여했으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동생 전순옥 박사가 함께했다.

전태일 열사 묘소 앞에서 이소선 여사는 "태일이의 한이 풀렸다"며 "앞으로 고생할텐데 당당하고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 여사는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의원이 되고 나서는 우리가 국회 앞에서 농성할 때 외면하고 가더라"며 이를 반면교사 삼을 것을 충고했다. 이에 권 대표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이) 노동해방의 한 과정일 뿐"이라며 열심히 할 것을 다짐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당선자들은 이날 오전 전태일 열사 묘소 참배를 마치고 낮 12시께 수유리 4·19 국립묘지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과 함께 4월혁명회 주최의 기념 행사에 참석해 헌화하고 참배했다.

이 자리에서 천영세 민주노동당 부대표는 "60년 4·19 직후에 있었던 7·29 총선에서 사회대중당 등 진보정당이 4명의 의원을 냈는데, 5·16 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된 뒤 44년만에 진보정치 세력이 원내에 진출했다"며 "우리는 원내정치로만 변혁을 이뤄낼 수 없으며 아직도 거리의 정치, 항쟁의 정치가 유효하다는 것을 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의 추도식이 끝난 뒤 민주노동당은 별도로 4·15 총선 보고대회 및 추도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권영길 대표는 "오늘의 (당선자) 보고대회는 미완의 4·19 혁명을 완전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의 계기"라며 "(민주노동당이) 2008년에는 제1당, 2012년에 집권하겠다"고 약속했다. 권 대표는 방명록에 "민주노동당이 4·19 영령 뜻을 이어받아 미완의 4·19 혁명을 완성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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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완의 4월혁명 반드시 완수하겠다"


a 한화갑 민주당 전대표와 당직자들이 19일 오전 4.19국립묘지에 헌화 참배하고 있다.

한화갑 민주당 전대표와 당직자들이 19일 오전 4.19국립묘지에 헌화 참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당] 불확실한 당의 진로 탓에 무거운 분위기

총선 이후 당세가 급격히 위축된 민주당은 19일 오전 당선자들이 중심이 돼 4·19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한화갑·이정일 의원과 손봉숙·이승희·이상열 당선자, 최명헌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당직자 50여 명과 함께 4·19 영령들을 기리며 당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참배를 마친 이들은 당으로 돌아와 총선 이후 처음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갖고 당의 활로를 논의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선거를 치른 당선자들은 서로 격려의 덕담을 나눴지만, 불확실한 당의 진로 때문인지 분위기는 크게 가라앉았다.

당선자 중심의 비대위가 당을 이끌고, 이들이 합의해서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이론이 없다는 전언이다. 이날 최 총장은 "이번 선거 결과, 민심의 소재를 파악했다. 이를 자성의 충고로 받아들여야 하며 당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상임고문 및 사무총장 사퇴서를 제출했다.

손 당선자는 이에 앞서 "1∼5년된 당만 있고, 오래된 당이 없는데 민주당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앞으로 4년 동안 재보궐선거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대선까지 중요한 선거가 3번이나 있는데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정일 의원도 "열린우리당에서 나와 김효석·이낙연 의원을 데려가려고 하는 것 같다"면서도 민주당과 우리당의 당대당 통합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화갑 의원도 당대당 통합 가능성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아닌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정국 현안으로 떠오른 '탄핵 철회'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는 등 비대위가 정리된 입장을 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과 이승희, 손봉숙 당선자 등은 "헌재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이정일·이낙연 의원 등은 이미 '탄핵철회'로 마음이 기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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