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위해 순교한 이차돈 기리는 곳

주마간산 경주 돌아보기 <5> - 백률사와 소금강산

등록 2004.04.19 16:21수정 2004.04.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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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시내를 우회해 포항으로 향하는 7번 국도는 산업도로 역할을 한다. 포항의 철강단지, 경주의 자동차 부품산업단지와 우리 나라 최대의 공업도시인 울산을 오고가는 대형 트럭들로 항상 분주한 도로다.

이 도로를 타고 포항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경주시청 동천청사가 있는데, 맞은편이 소금강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280m)이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해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특히, 정상에 서면 경주 시가지가 한눈에 보여 예로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라 한다.


백률사 대웅전과 범종각.
백률사 대웅전과 범종각.우동윤
경주시청 동천천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백률사(栢栗寺)란 안내판이 있다. 이 곳이 바로 소금강산 입구다. 나무 계단을 따라 200여m 미터를 올라가면 백률사가 있다. 이 절은 법흥왕 14년(527년), 불교의 전파를 위해 순교한 이차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차돈이 순교할 때, 그의 목에서 흰 피가 흘렀고, 하늘 높이 솟구친 그의 머리가 소금강산에 떨어져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이차돈을 기렸다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천지가 진동하는 등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백률사. 원래 이름은 자추사(刺楸寺)였다고 한다.
백률사. 원래 이름은 자추사(刺楸寺)였다고 한다.우동윤
이처럼 큰 의미를 지닌 절이지만, 지금은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 몇개만 남아 있다. 대웅전도 다른 절과는 달리 그리 큰 규모가 아니다.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불국사, 석굴암 등 대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절이다. 건립 당시에는 이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고 하지만,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되고 이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립경주박물관
백률사에서 출토된 금동약사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최대의 금동불상으로 유명하다. 179cm의 키와 나무랄 데 없는 인체비례 등 지극히 사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국보 제28호인 이 불상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와 함께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신라 최고의 명필 김생이 비문을 썼다고 알려지는 이차돈 순교비도 소장돼 있다. 이 순교비는 이차돈이 순교할 때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당시의 상황이 묘사된 비문 등이 새겨져 있는 육면의 공양비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경주시내
산 정상에서 바라본 경주시내우동윤
백률사 대웅전 뒤로 좁은 등산로가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곧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경주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조그만 망원경이라도 하나 있다면, 경주시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돌아 볼 수 있다. 멀리 유채꽃이 만발해 있는 박물관도 보이고, 푸른 수풀이 우거진 대릉원도 보인다.

삼존마애불좌상
삼존마애불좌상우동윤
정상에서 북쪽으로 50여m 내려가면 삼존마애불좌상(유형문화재 재194호)이 있다. 세 분의 부처님이 너른 바위면에 얕게 새겨져 있다. 마모가 심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곳 삼존마애불좌상을 거쳐 정상까지 이르는 등산로는 경주시민들에게 꽤 인기있는 등산코스라 한다. 정상에 간단한 체육시설도 갖추고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백률사로 통하는 돌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굴불사터 사면석불(보물 제121호)까지 본다면 소금강산 일대의 유적은 거의 다 본 셈이다. 백률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사방석불(四方石佛)의 형태라 눈길을 끈다.

굴불사터 사면석불. 아미타불과 좌우로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굴불사터 사면석불. 아미타불과 좌우로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우동윤
굴불사터는 신라 35대 경덕왕 때 세워졌다고 한다. 왕이 나들이 도중 이 근처를 지나는데 땅에서 스님의 경 읽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신하에게 그 곳을 파보라고 명했다. 땅을 파보니 사방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나왔는데 이에 감동한 왕이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석불을 파냈다는 의미에서 굴불사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 절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방불상만 남았다.

아미타불,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미륵불 등 네 분의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등 여러 보살들을 한번에 볼 수 있다. 이 중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는 손의 인(印)과 약합 등으로 알 수 있지만 다른 두 분의 부처님은 마모가 심해 판별이 어려운 것이 아쉽다.

이차돈의 순교 이후 신라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온 나라를 부처님의 공덕 아래 두고자 했다. 저 유명한 '불국사(佛國寺)'도 온 나라를 불국토, 즉 부처님의 땅으로 만들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바람이 담긴 절이 아니던가.

백률사는 이차돈의 공적과 넋을 기리고자 세운 절인 만큼 경주를 여행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또, 백률사가 있는 소금강산 역시 신라 오악 중 하나인 북악으로 불리우는 명산이었기에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높지 않은 산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 아담하고 조용한 산사를 둘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인 만큼 보고 느끼는 것도 많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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