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불사터 사면석불. 아미타불과 좌우로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우동윤
굴불사터는 신라 35대 경덕왕 때 세워졌다고 한다. 왕이 나들이 도중 이 근처를 지나는데 땅에서 스님의 경 읽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신하에게 그 곳을 파보라고 명했다. 땅을 파보니 사방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나왔는데 이에 감동한 왕이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석불을 파냈다는 의미에서 굴불사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 절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방불상만 남았다.
아미타불,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미륵불 등 네 분의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등 여러 보살들을 한번에 볼 수 있다. 이 중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는 손의 인(印)과 약합 등으로 알 수 있지만 다른 두 분의 부처님은 마모가 심해 판별이 어려운 것이 아쉽다.
이차돈의 순교 이후 신라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온 나라를 부처님의 공덕 아래 두고자 했다. 저 유명한 '불국사(佛國寺)'도 온 나라를 불국토, 즉 부처님의 땅으로 만들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바람이 담긴 절이 아니던가.
백률사는 이차돈의 공적과 넋을 기리고자 세운 절인 만큼 경주를 여행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또, 백률사가 있는 소금강산 역시 신라 오악 중 하나인 북악으로 불리우는 명산이었기에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높지 않은 산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 아담하고 조용한 산사를 둘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인 만큼 보고 느끼는 것도 많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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