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N*E*R*D의 두 번째 앨범 'Fly or Die'

등록 2004.04.20 09:14수정 2004.04.2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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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E*R*D의 두 번째 앨범 'Fly or Die'

N*E*R*D의 두 번째 앨범 'Fly or Die'

N*E*R*D는 프로듀싱 듀오 냅튠스(The Neptunes)의 또 다른 이름이다. 패럴 윌리엄스와 채드 휴고로 이루어진 이 마이더스의 사내들은, 근 몇 년간 브리트니 스피어스부터 제이지(Jay-Z)를 거쳐 비니 맨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성향을 불문한 온갖 음반에서 특유의 사운드 메이킹 솜씨를 과시해 왔다.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경계는 이들의 손아귀에서 무화되고, 혁신적이고 비타협적인 음악적 소스는 냅튠스의 이름으로 MTV 화면에 어울리는 소리가 되어 나온다. 2003년 한 해만 하더라도, 차트를 석권한 숱한 노래들의 크레디트에서 어김없이 이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닭살스러운(여성 팬들에게는 섹시하기 그지없게 들리는) 패럴의 가성 배킹 보컬과 함께 말이다.


이들이 샤이(Shay)를 끌어들여 N*E*R*D(No One Ever Really Dies의 줄임말)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2001년작 'In Search of...'는, 이전까지 쌓아온 냅튠스의 명성이 헛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놀라운 음반이었다.

블랙 뮤직의 비트와 록 음악의 기타 사운드, 그리고 청자의 귀를 삽시간에 붙들어 매는 빼어난 훅(hook)으로 무장한 이 음반은 실험적인 블랙 록 사운드가 어떻게 평단의 극찬을 받는 결과물로 탄생할 수 있는지를 극히 디오니소스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정치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메시지와 직설적인 성적 코드의 쿨한 병합 역시도 N*E*R*D의 미덕 가운데 하나였다.

2001년보다도 더욱 정신없는 2년간을 보낸 뒤 오랜만에 내놓은 두 번째 N*E*R*D로서의 음반 'Fly or Die'는 음반 표제를 통해 이들이 지닌 고민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숱한 상업적 히트곡과 비평적 찬사를 얻어내는 동안, 냅튠스의 사운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그 자체로서 클리셰(상투적인 표현이나 장면...편집자 주)가 된 상태다.

심지어 머나먼 한국 땅에서도 냅튠스를 ‘모방’하는 뮤지션이 있는 상황이고 보면, 이들이 거듭해온 실험적인 사운드가 더는 새롭게 들리지 않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때문에 다른 가수의 프로덕션으로서가 아닌 자신들의 그룹으로 내놓는 이 음반이 갖는 중요성은 다른 어느 음반보다 크다 할 수 있다.

하지만 'Fly or Die'는 예전 냅튠스의 행보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날’거나 ‘점프’하는 경지의 음악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이는 새 음반에서 블랙 뮤직과 록을 다루는 패럴과 채드의 방식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듯하다.


프로그래밍된 힙합 비트와 밴드 음악, 그리고 랩도 보컬도 아닌 이단적인 패럴의 가창이 한데 어우러진 전작 'In Search of…'와 달리, N*E*R*D의 새 음반은 보다 록 음악의 비트와 기타 리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록의 4비트를 잘게 쪼개고, 여기에 둔중한 기타 사운드를 얹어 넣는 스트레이트한 방법론을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싱코페이트(기본 박자를 벗어남...편집자 주)된 록 비트와 퍼즈톤(전자기타의 탁한 음...편집자 주)의 강렬한 기타 리프는 음반 전체를 아우르며 지배적인 인상을 좌우한다. 첫 곡 "Don’t Worry About It"과 동일한 스타일을 키보드를 통해 변주해 나가는 "Fly or Die"의 스타일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까지 각론만 달리하며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데 새 음반에 담긴 이런 류의 음악은 기존 블랙 록 밴드들의 음악과 비교해서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을 뿐더러, N*E*R*D 자신들의 전작과 비교해서도 신선한 맛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흑인음악의 감수성이 상당부분 줄어든 탓인지, 사운드와 메시지에 있어서도 전작의 매끄럽고 유연한 감각은 느끼기 힘들다. "Drill Sergeant" 같은 곡의 부드러운 신서사이저 음향은 전력 질주하는 오리처럼 종종 걸음하는 퍼즈 기타에 의해 과격하게 진압되며, 전작의 "Provider"의 뒤를 잇는 감미로운 선율의 곡 "Maybe" 또한 짧게 끊어대는 피아노 연주로 부드럽게 시작했다가 이내 후려치는 기타 사운드로 뒤덮인다.

패럴은 호기롭게 ‘그녀의 엉덩이는 우주선/거기 올라타고 싶다("She Wants to Moves")’고 지껄이지만, 이 또한 더는 쿨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음반 전체에 짙게 드리운 공격적이고 날이 선 사운드 기조 때문일 것이다. GQ의 화보 따위에서 헐벗은 여성 모델과 함께 한껏 메트로 섹슈얼 취향의 포즈를 취해 보이던 패럴과, 남근을 한껏 과시하는 듯한 마초적인 음악이 매치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냅튠스의 성공 요인은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요소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음악을 절묘하게 조합하는 감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메트로섹슈얼’과 ‘쿨’로 대변되는 시대적 경향과도 일정부분 맞아떨어지는 측면을 갖고 있었다.

패럴이 미국 여성들이 선정한 가장 섹시한 남성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것도 이와 상통하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Fly or Die'에서 육중한 기타 사운드와 철근을 내리찍는 듯한 드럼 비트를 들려주는 N*E*R*D는 그다지 섹시하지도 쿨하지도, 그리고 메트로섹슈얼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온갖 요소들이 능란하게 뒤섞이며 만들어내던 화학적 효과는 새 음반의 직설적이고 물리적인 사운드 병합을 통해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때문에 새 음반 'Fly or Die'는 냅튠스의 화려한 경력에서 이례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작품으로 기록될 듯하다. 이들이 이 음반에서 '죽은'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적어도 '날'지도 못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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