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를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만들겠다"

[인터뷰] '매향리 주민대책위원회' 전만규 위원장

등록 2004.04.21 07:28수정 2004.04.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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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미군과는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다" 전만규 매향리 대책위원장은 미군 없는 땅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미군과는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다" 전만규 매향리 대책위원장은 미군 없는 땅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임신 8개월이었던 마을주민 이영자(당시 33세)씨가 지난 67년 미군 폭격기의 오폭(誤爆)에 의해 숨졌다. 이씨가 숨진 뒤 여섯 살, 네 살이었던 두 자녀가 영양실조로 죽었고, 남편은 고통에 시달리다가 몇 년 전에 사망했다. 미군의 반인륜적인 만행에 의한 비극적인 사건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매향리 미공군 국제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전만규 위원장(48)은 마을주민이 겪은 비극을 잊지 않고 있다. 11대째 매향리에서 살고 있는 그는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주범이 미군이라는 사실을 안 뒤부터 20년간 매향리 사격장 폐쇄투쟁의 한길을 걸어왔다. 그로 인해 89년과 2002년 두차례에 걸쳐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매향리 곳곳에는 "전만규 위원장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주민들은 정부당국과 미군의 회유와 분열에도 흔들리지 않고 대책위를 이끌며 성과를 이끌어낸 그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보상금 전액을 평화공원과 박물관 조성에 내놓기로 한 주민들의 결정은 그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20일 인터뷰에서 "주민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은 돈이 아니라 평화의 가치를 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주민의 단결과 각계각층의 연대투쟁에 의한 승리였기 때문에 역사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평화마을 만들기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매향리에서 훈련한 미군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투입돼 그곳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을 보면 가슴아프다 못해 죄의식을 느낀다"며 "미군주둔에 의해 고통받는 매향리를 비롯한 세계의 민중들이 연대와 단결을 통해 생존권과 존엄성을 보장받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밝혔다.

다음은 20일 매향리 대책위 사무실에서 진행된 전만규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미군주둔에 의해 고통받는 세계 민중과 연대와 단결을"


a 매향리에도 봄은 오는가. 주한미군이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을 내년 8월까지 한국에 반환키로 합의함에 따라, 54년간 싸워온 매향리 주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매향리에도 봄은 오는가. 주한미군이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을 내년 8월까지 한국에 반환키로 합의함에 따라, 54년간 싸워온 매향리 주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아낸 소감이 어떤가.
"지난 50여 년간 외국 군대에 의해 주민들의 생존권과 생명이 심각하게 위협받았지만 정부는 50여 년간 방치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승소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매향리 주민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이끌어 낸 민변 변호사 분들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 주민 2356명이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어떤 결과를 예상하는가.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법원의 확정판결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 미군당국은 사죄는 커녕 쥐꼬리만 배상 판결조차 거부하고 있다."


- 어쩌다 '반미투사'가 되었는가.
"어린 시절 미군 사격연습장에서 탄피를 주어다 엿과 아이스크림으로 바꾸어 먹었다. 어느 날 미 병사에게 붙잡혔는데 잔인하게도 탄피로 머리를 때려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미군의 야만적인 폭력과 미군에 의한 마을주민들의 고통을 겪으면서 못 배우고 가난한 촌놈이 반미 의식을 갖게 됐다.

우리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군과 인민군이 고통을 주기는 했지만 땅과 어장을 빼앗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왔다는 미군은 주민들의 땅과 어장을 빼앗고 생명을 위협했다. 한국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의 만행이 드러난 것처럼 미군과는 한 하늘아래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 미군주둔은 안보상 필요하고 따라서 사격장은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준다는 미군이 주민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했다. 미군의 폭격연습은 대량 살상 연습이며 한민족의 평화와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는 야만적인 패권야욕에 의한 것이다. 매향리에서 훈련한 미군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투입돼 그곳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을 보면 가슴 아프다 못해 죄의식을 느낀다. 미군주둔에 의해 고통받는 매향리를 비롯한 세계의 민중들이 연대와 단결을 통해 생존권과 존엄성을 보장받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 평화마을 만들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소송에 참여한 주민들이 보상금의 일부를 떼어내 사례금을 주기로 논의했다. 20년 동안 미군과 싸우느라 생계가 어렵기는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법원 승소는 주민의 단결과 각계각층의 연대투쟁에 의한 승리였다. 주민들에게 매향리를 역사의 장으로 만들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주민들이 기꺼이 동참해주었다."

a 전만규 대책위원장이 사격장 철책 안에서 논일을 하던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만규 대책위원장이 사격장 철책 안에서 논일을 하던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주민들의 이익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민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은 돈이 아니라 평화의 가치를 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향리는 미군과의 투쟁을 통해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평화운동가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일본 NHK 등이 매향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해 일본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일본관광객들의 여행코스가 됐다. 평화박물관이 들어서면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돼 주민소득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 평화마을 조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협조가 급선무일 것 같다.
"국방부의 협조가 가장 필요하다. 가난한 주민들이 돈을 포기하고 평화마을 만들기를 왜 선택했는지 정부당국이 이해해주면 좋겠다. 매향리의 비극이 우리 나라에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평화와 생명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관심과 동참을 부탁하고 싶다."

- 농섬의 환경파괴 상태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되는가.
"매향리의 옛 이름은 고온리(古溫里)다. 서해안 제일의 황금어장과 농토를 가진 매향리는 지명처럼 먹을 게 풍성하고 기온이 따스한 동네였다. 그런데 미군 폭격장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어장에는 잡을 고기가 없어졌고 갯펄에는 캐 먹을 조개가 사라졌다. 미군과 정부는 사격장을 폐쇄하기 이전에 환경오염에 파악을 위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 가족들이 겪는 고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과 남편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부끄럽다. 아내가 조개 채취해 모은 돈을 대책위 사무실 임대료로 쓴 적도 있고 수업료를 내지 못해 울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아비 노릇도 하지 못했다. 포장마차를 해 생계방편을 찾으려고 하던 아내가 이번 보상금이 필요한 눈치였는데 들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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