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항기가 들추어 낸 내 더러운 심보

농사일로 다친 심신을 발포 요법으로 치료하다

등록 2004.04.22 12:50수정 2004.04.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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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불편하고 통증이 심한 손목에서는 어혈이 조금 나왔다.
제일 불편하고 통증이 심한 손목에서는 어혈이 조금 나왔다.전희식
어제 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부항으로 발포를 했는데 시커먼 죽은 피가 말도 못하게 많이 나왔다. 부항기에 가득한 어혈을 비워내고 부항을 다시 붙이면 금새 다시 부항기가 채워지곤 했다.


죽은 피 나오라고 발포를 한다지만, 이렇게 많이 나오는 피를 보면 후련한 기분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내 몸 속이 이 모양이구나' 싶어 끔찍하다. '이런 죽은 피를 몸에 담고 살았구나 ' 하고 한숨을 쉬며, '내가 이런 죽은 피를 만들어 가는 생활을 하고 있구나' 라고 다시 확인하게 된다.

1∼2년 전 부항 발포요법으로 어혈을 많이 빼냈었고, 장기간의 단식수련으로 몸을 정화시켰는데 어느새 몸이 이렇게 상해 있을까를 생각하니 아무래도 무리한 노동과 함께 내 마음 하나를 잘 다스리지 못해서 생긴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몇 달째 고생하고 있는 왼쪽 손목 관절에서 죽은 피가 가장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단중과 중완에서 아스팔트 깔 때 뿌리는 콜타르 같은 끈적끈적한 피가 흘러 나왔다.

부항기를 붙이고 1시간 쯤 후부터 발포가 시작되더니 어혈은 쉴 새 없이 나왔다.
부항기를 붙이고 1시간 쯤 후부터 발포가 시작되더니 어혈은 쉴 새 없이 나왔다.전희식
내 심보가 얼마나 시커먼지 드러나는 셈이었다. 단중은 양 젖꼭지의 한 가운데쯤 되는 곳인데 '화가 머무는 곳'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도 부항기를 붙인지 한 시간쯤 후부터 발포가 되기 시작하더니 금새 부항기에 어혈이 가득차 비워내고 다시 부항기를 붙여야 했다. 이 보다 배꼽 조금 위인 중완혈에서는 먹물 같은 피가 나왔다.

중완혈은 밥통이 있는 위치인데, 원래 명치 있는 곳에 부항을 대서 심장을 건드려 볼까 하다가 최근 배에 통증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 중완혈에 부항기를 붙였던 것인데 여기 어혈이 제일 지독했다.


참 오랜만에 부항기를 들었다. 몸 속에 고여있는 썩은 물을 빼내야겠다고 느낀 것은 한 순간이었다. 몇 달째 손목 핏대가 나가서 뜨끔거리고 어깨 관절 통증이 심했다. 요 며칠 전부터는 가슴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뒷덜미도 쑤시고 정말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사기 부항기는 주로 건식 부항 때 사용하는 것이라, 발포를 해서 어혈을 뽑아 내려고 했던 이번에는 습식부항기인 플라스틱 부항기를 챙겼다.


제일 심했던 배에서 발포된 모습
제일 심했던 배에서 발포된 모습전희식
고추 심을 밭도 갈아엎어야 하고, 목초액으로 토양관주도 해야 하는데…. 또 주워 놓은 돌덩이들로 담도 쌓아야 하는데 손목이랑 어깨가 이 모양이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자다가도 어깨 통증으로 깨어나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할 때도 많았다.

제일 불편함을 많이 느끼고 통증도 심한 손목에서 정작 맑은 액체만 두 컵 나오고 말아 가슴 쪽으로 부항기를 옮길 때는 발포조차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고 해봤던 것인데, 이 모양이었다.

'내 속이 순대 속 같다'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얼마나 뒤죽박죽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가슴 발포
가슴 발포전희식
부항기로 뽑혀 올라 온 어혈은 닦아내고, 수포가 생겨 터지지 않은 곳은 이쑤시개로 터뜨려 피를 빼냈다. 휴지통에 든 휴지를 다 쓰고 다른 휴지통을 열었다. 검붉은 피를 빨아들인 휴지뭉치가 비닐 봉투에 가득했다.

또 들에 나가야 할 시간. 부항기를 떼어내면서 시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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