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나라의 번영 위해 세운 절

<주마간산 경주 돌아보기-마지막편> 원원사터

등록 2004.04.22 14:08수정 2004.04.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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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당나라를 이용했다. 조공을 바치는 등 사대외교를 적극 펼쳐 당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결국 당나라는 신라의 요청을 받아 들여 660년 백제의 사비성을 침공,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병사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어 고구려도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당이 아무런 대가 없이 신라를 도와주었을 리 만무하다. 고구려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일단 대륙으로 돌아간 당은 점차 신라를 압박하며 침략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신라 역시 고구려와 백제를 물리치기는 했지만 외세가 개입된 것이었기에 완전한 통일을 이룬 것이 아니었다.


결국 신라는 670년 압록강을 넘어 먼저 당을 공격했고, 이후 6년간의 필사적인 전쟁 끝에 옛 고구려 땅에 설치된 안동도호부를 요령으로 후퇴시키며 이 땅에 당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원원사터
원원사터우동윤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원원사터(사적 제46호)는 당의 세력을 몰아낸 후, 통일된 나라의 영원한 번영을 기원하며 세운 원원사(遠願寺)가 있던 자리다. 김유신 장군이 김의원, 김술종 등과 더불어 세웠다고 전해진다.

특히, 사천왕사를 세웠던 명랑법사의 제자들인 신인종의 승려 안혜, 낭융도 힘을 보탰다고 하니 사천왕사와 함께 호국의 염원을 담은 신라불교의 성격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는 절인 것이다. 원원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창건 연유에 미루어 당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7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불국사역 구정로터리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울산방향으로 12km쯤 가다 보면 육교가 보이고 왼쪽으로 불고기단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이 표지판을 이정표 삼아 왼쪽 시멘트길로 차를 돌리면 원원사터로 가는 길이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곳곳에 원원사터를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원원사터에서 바라본 원원사. 최근에 지어진 절이다.
원원사터에서 바라본 원원사. 최근에 지어진 절이다.우동윤

지금의 원원사는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기계로 반듯하게 조각된 불상이 서 있고, 화려한 단청이 돋보이는 대웅전이 그 뒤에 있다. 대웅전 뒤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옛날 원원사가 있던 자리가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기의 삼층석탑이다. 전형적인 금당 앞 동서 쌍탑의 양식으로 지어진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7m 정도 높이의 동서 쌍탑은 무너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1933년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원원사터 삼층석탑
원원사터 삼층석탑우동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인 삼층석탑이지만, 다른 탑들과는 달리 매우 화려한 외양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원원사터 삼층석탑이다. 1층 몸돌에는 좌우 네 면에 사천왕상이 날아갈 듯 조각돼 있고, 1층 기단부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경주에서 본 다른 십이지신상과는 달리 수도하듯 앉아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1층 몸돌에 날아갈 듯 새겨진 사천왕상
1층 몸돌에 날아갈 듯 새겨진 사천왕상우동윤

이곳저곳 깨진 곳이 많이 있긴 하지만 화려하고 날렵한 몸매가 돋보이는 원원사터 삼층석탑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장식성이 강조된 이같은 양식의 탑이 크게 유행하게 된다.

예술은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듯, 당나라를 몰아내고 완전한 통일을 이룬 신라사람들은 안정되고 발전하는 나라를 기원하며 그들의 재주를 맘껏 발휘해 이처럼 화려한 탑을 만들었나 보다.

1층 기단부에 새겨진 십이지신상
1층 기단부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우동윤

동서쌍탑 사이에 부도가 하나 있다.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고, 부도는 고승의 사리를 모시는 것인데 탑과 탑의 사이에 부도가 있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다. 안내판을 보니 역시 고려시대 때 세워진 것이라 한다.

용왕이 모셔져 있는 작은 건물
용왕이 모셔져 있는 작은 건물우동윤

동서쌍탑 뒤로 그리 크지 않은 금당이 있었을 법한 흔적이 있고, 왼쪽으로는 특이하게 용왕을 모셔놓은 작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 우물도 하나 있는데 여전히 물이 괴어 있는 것이 무슨 용도인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이 우물을 용당이라고 부르며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용당이라 불리는 우물
용당이라 불리는 우물우동윤

옛 절터 아래 새로 절을 세워 놓은 것도 특이하거니와 절 이름 역시 같게 지었다는 것도 흔히 볼 수 없는 일이다. 원원사(遠願寺), 옛 절의 이름이 통일된 나라의 영원한 번영을 원한다는 의미라면 지금의 절은 무엇을 향한 염원을 담고 있을까.

원원사를 떠나오며 우리 사는 이 나라가 혼란 없이 무궁히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으리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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