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36

애향이

등록 2004.04.23 17:44수정 2004.04.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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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방이라면 아까 소인이 치웠습니다만…. 별다른 것이 없었사옵니다."

백위길은 오월이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믿겠다며, 방으로 들어서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허, 아까 정녕 아무것도 없었소?"
"그럼 제가 감히 포교님에게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백위길은 허탈한 발걸음으로 김언로가 기다리고 있었던 곳으로 갔지만 그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내가 너무 꾸물거려서 기다리다 못해 가버렸는가? 답답해서 기방으로 직접 찾으러 갔다면 마주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백위길은 잠시 동안 그대로 길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행여 다른 곳으로 갔다가는 김언로와 엇갈릴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술기운으로 인해 정신이 어지러운 백위길은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콧잔등을 간질이는 바람에 백위길은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이런데서 뭐하시는 것이옵니까?"


백위길의 눈 앞에서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이는 바로 애향이였다. 백위길은 순간 부끄러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여기서 도적을 잡기 위해 기다리라고…. 누가?"


앞뒤 두서가 맞지 않은 말을 하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 백위길을 보며 애향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밤이슬은 몸에 좋지 않사옵니다. 포교님의 집이 멀다면 마침 제 집이 가까우니 그리 들어가는 것이 어떠하시옵니까?"

자신에게 호감을 보였던 애향이었기에 백위길로서는 마음이 끌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야밤에 기생의 집으로 따라간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 지는 자명하다는 생각까지 들자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먼저 갈 테니 도적을 뒤쫓듯이 천천히 따라오소서."

애향은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잔잔히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고, 백위길은 저도 모르게 애향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집이 가깝다고 한 애향의 말과는 달리 백위길은 인적 드문 언덕길을 넘어 한참을 따라 걸어가야만 했다.

'이거 차라리 내 집이 더 가깝겠구나 혹시 내가 여우에 홀린 것은 아닐까? 내 간이라도 빼 먹으려고?'

백위길이 별별 생각을 다하며 불안해 할 즈음, 구석진 곳에 불빛이 비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양에 이런 곳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허름한 초가집 서너 간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애향이는 한 초가집에 들어가 방문 앞에서 나직이 말했다.

"어머니, 애향이가 왔습니다."

'어머니?' 덜그덕 거리며 느릿하게 문고리를 푸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비스듬히 열리며 한 노파가 얼굴만을 드러낸 채 애향이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야?"

애향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지나가는 과객이온데 묵을 곳이 없다 길래 데려왔습니다."
"작은 방에 군불도 없이 눅눅할 텐데 괜찮을려나…"

그제서야 백위길은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을 후회했다. 애향은 그저 길에서 자고 있는 자신이 안쓰러워 집으로 데려온 것뿐이었다. 작은 방으로 들어선 백위길에게 애향이가 이불가지를 가져다주었고 물까지 떠다 주며 친절히 일렀다.

"불편하신 점이 있거든 언제라도 찾으십시오."

애향이가 나가자 백위길은 이부자리를 펴놓고 자리에 누웠으나 왠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곁 보기에는 화려한 기생이 이렇게 누추하게 살고 있을 줄이야. 그나저나 이렇게 신세를 져도 괜찮으려나.'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는 백위길의 귓전에 옆방에서 애향이와 그의 어머니가 두런두런 나누는 얘기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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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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