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드는 것만이 나라 지키는 건 아니다"

예비 병역거부자 용석씨 "독일 징병대상 18만중 9만이 대체복무"

등록 2004.04.26 01:08수정 2004.04.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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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용석씨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용석씨 ⓒ 송민성

평화인권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병역 거부 양심수는 모두 521명(2004년 2월 15일 현재)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종교의 가르침, 양심과 신념에 따라 집총에 응하지 않거나 병역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병역법 위반으로 1년6개월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2002년 박시환 판사가 헌법재판소에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서 병역 거부자들의 재판이 헌재 판결 이후로 미뤄지기는 했지만 구속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와 그 후원자들의 모임인 '전쟁없는 세상(www.withoutwar.org)'의 활동가 용석씨는 이러한 조치의 부당함을 알리고 병역 거부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구속 수사는 부당하다

"현재 11명이 구속되어 있어요. 헌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위헌 소지가 있는 병역법으로 병역 거부자들을 구속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죠."

용석(25)씨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백번 양보해서 병역법을 어겼다 하더라도 구속 수사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어요. 현행 형사소송법 70조에 따르면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염려가 있을 때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고 되어 있거든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병역법 위반의 결정적인 증거인 병역 거부 소견서를 직접 제출하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병역을 거부하겠다고 알려요. 그런 사람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위험이 있다고 보세요?"

이에 항의해 국제 앰네스티 한국 지부 회원이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인 임태훈씨가 한 달여 동안 단식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용석씨의 음성이 좀더 높아졌다.

나는 예비 병역 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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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 세상

용석씨가 병역 거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2001년 12월 평화주의자이자 불교 신자인 오태양씨의 병역 거부 선언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이라크 침공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평화에 대한 고민이 커져만 가던 용석씨에게 오씨의 선언은 커다란 디딤돌이 됐다.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인 군대에 대한 반감이 컸어요. 그렇지만 병역 거부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죠. 태양씨를 만나고 그를 지지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평화와 병역 거부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런 활동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얻어낼 수 있었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사람과 환경을 죽이는 행위이므로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다 해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 역시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오랜 역사에 걸쳐 군대가 행해 온 양민 학살과 범죄들이 그 증거들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곧 평화는 아니다….'

용석씨는 자연스럽게 병역 거부를 결심하게 됐다. 병역 거부 선언으로 인해 어떤 어려움을 견뎌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용석씨는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게 옳은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똑같으니까."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실 우리나라에서 병역 거부는 (아직은) 그리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주제는 못된다. 병역 거부 이야기만 하면 군대 가기 싫어 꾀부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군대 가면 비양심이냐는 항의가 빗발친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봐요. 사병들의 월급이나 대우를 보면 피해 의식을 가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것 자체가 안타까운 거죠. 그래도 진정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이제는 국방의 의미도 넓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전 시대의 구태의연한 논리는 더 이상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꼭 총 들고 전쟁하는 것만 나라 지키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모두가 국방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무의탁 노인이나 부모 없는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소록도에서 봉사를 하는 것도 '국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체 복무를 인정하는 것은 다양성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사회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요소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독일이 왜 징병제를 폐지하지 못하는지 아세요? 18만명 중에 9만명이 대체 복무를 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비전과 평화를 위한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어야

그렇다고 해서 대체 복무가 '완벽한' 대안인 것은 아니다. 대체 복무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체 복무제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어떤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a 파병 반대와 병역 거부 인정을 위한 거리 집회를 열고 있는 '전쟁없는 세상'

파병 반대와 병역 거부 인정을 위한 거리 집회를 열고 있는 '전쟁없는 세상' ⓒ 전쟁없는 세상

"기간을 3~4배 길게 한다면 결국은 대체 복무도 징벌인 셈이죠. 딱 잘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덴마크의 경우 박물관이나 교육청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반면, 구 소련에서는 시베리아와 같은 위험한 지역으로 보내 버렸어요. 이건 양심을 존중해주는 게 아니죠. 진정으로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존중과 자유가 보장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병역 거부 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으로부터 평화로워지는 법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용석씨는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평화 운동에 매진할 꿈을 품고 있다. 병역 거부 결정 때문에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지만, 자신의 행동이 우리 사회의 자유와 관용을 더해가리라는 사실을 부모님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구속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헌재 판결이 난 다음도 고민해야겠지요. 무엇보다 다가오는 5월 15일 세계 병역 거부자의 날 행사 준비도 열심히 해야겠죠?"

이번 세계 병역 거부자의 날에는 칠레와 남미의 군사주의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비전(非戰,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전쟁 행위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반전'이 아닌 '비전'이라는 용어를 사용)'과 평화의 목소리를 모아낼 계획이라고 한다.

병역 거부의 자유를 허하라

"병역 거부자들의 신념이 수천, 수만 가지 양심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지면 좋겠어요. 감옥에 가는 것은 감수하지만 병역 거부자들을 비정상, 미성숙된 사람, 비국민으로 보는 시선만은 참 견디기 힘이 듭니다. 다양성을 위한 여러 대안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고 계속되고 있는 구속 수사도 중단되어야 합니다. 17대 국회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와의 만남이 있고 며칠 뒤 유엔인권위원회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의안에는 병역 거부자에 대한 사면과 복권을 권고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며 34개국이 공동 제안했고 한국도 결의안에 찬성했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40개국 중에 가장 철저하고 가혹하게 병역 거부권자를 처벌한다고 하는 우리 나라의 이번 결의안 찬성 결정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순간에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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