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김희수
최근 ‘신 노짱’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당선자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최고의 성공은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운동가로 마음껏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김지선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김씨는 “함께 노동운동을 하며 만남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컸다”고 말한다.
노 당선자는 “모든 일은 각자 상황이 되는 사람이 하면 된다. 집안일 역시 집에 먼저 들어와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라며 평등부부임을 한껏 과시했다.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서 판이 새까맣게 탔다’며 정치 판갈이를 주장했던 노회찬(48) 당선자. 국민을 대변하는 속시원한 말들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노 당선자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까지 인생에서 최고의 성공은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말한다. 노 당선자와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아내 김지선(49·여성의전화연합 조직위원)씨를 만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노동운동 현장서 꽃핀 사랑
“아내를 보면 고양되는 느낌을 받아요. 좀더 나아지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노회찬 당선자는 “아내를 만나 질적으로 향상된 인생을 살았으니 더 이상의 성공은 없다”고 말한다. 아내 김지선씨 역시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16년 간 결혼생활 동안 돈 벌어오라는 잔소리 한마디 안하고 하는 일마다 믿고 존중해 줬으니 자기 만한 여자가 없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해줬어요. 하고 싶은 온갖 운동 마음대로 다 하도록 말이에요. 우리는 서로 노동운동을 하며 동지 관계로 만남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컸죠.”
이들 부부는 지난 1987년 인천의 노동운동 현장에서 만났다. 당시 노 당선자는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었고, 김씨는 인천해고노동자협의회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김씨는 삼원섬유, 대성목재, 동일방직 등에서 노조 간부를 지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현장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인물. 노 당선자는 그때 우연히 아내를 보았고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한다.
“친한 선배 한 분이 자꾸 이 사람을 만나보라는 거예요. 거절도 한두 번이죠. 계속 재촉하니까 하는 수 없이 남편을 소개받는 자리에 나가게 됐어요.”
동지 관계로 만나 수배 중 초라한 결혼식
노 당선자는 집요하게 구애를 하기 시작했지만 노동운동에 여념이 없었던 김씨는 번번이 만남을 거절했다. 여성에게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노동현장에서 몸으로 체험했던 그였기에 결혼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선배가 국회의원에 출마하자 선거를 돕기 시작했고, 이후 점차 각별한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노 당선자는 당시 수배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식구들만 모인 자리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어떤 삶이 펼쳐질지 충분히 예상하고 한 결혼이었기에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었다. 서로 번갈아 감옥에 들락거렸고, 남은 사람은 뒷바라지를 하는 노동운동 동지로서의 삶이 이어졌을 뿐.
그러나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힘들거나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가난했고 모든 노동운동가들이 고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침에 딱 눈을 뜨면 듬직한 남편이 옆에서 자고 있고,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집도 있고, 장롱도 있고… 참 좋았어요. 매일 도망 다니면서 아는 사람 집에 얹혀 사느라 변변한 내 것이 없었거든요.”
부부 함께 할 시간없어 아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