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애'는 남쪽에만 있는 게 아니다

[추적발굴] 북한 적십자사, 84년 남한 집중호우 때 수해물자 보내

등록 2004.04.28 15:23수정 2004.04.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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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4년 9월 30일 북한 적십자사가 보낸 수재물자인 입쌀이 판문점을 통과, 대성동 자유의마을 야적장에 쌓여 있는 모습.
지난 84년 9월 30일 북한 적십자사가 보낸 수재물자인 입쌀이 판문점을 통과, 대성동 자유의마을 야적장에 쌓여 있는 모습.

지난 22일 북한 룡천에서 발생한 열차폭발사고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구호물품을 실은 선박이 오늘(28일) 정오 인천항을 출발했다. 그간 비료나 쌀 등 대북지원이 더러 있어왔지만 이번처럼 국민 대다수가 선뜻 동의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한편 남북간 구호물자 지원은 남한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보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꼭 20년 전인 지난 84년 9월, 북한이 남한에 쌀과 의류 등 대량의 구호물자를 보내온 바 있다.

84년 늦여름 남한 일대에 집중호우가 내려 전국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수백여명의 사망자와 수십만명의 이재민, 그리고 천억대가 넘는 재산피해를 냈다.

84년 남한 집중호우 때 북한서 수해물자 보내와

남한의 수해 소식을 전해 들은 북한은 9월 8일 방송을 통해 수해로 인명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 유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고, 수해지역 이재민들에게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물자지원 의사를 피력했다.

84년 남한에 수재민이 발생하자 북한이 구호품을 보냈다. 사진은 구호물자를 실은 북한 배가 남한으로 향하기 직전 모습.
84년 남한에 수재민이 발생하자 북한이 구호품을 보냈다. 사진은 구호물자를 실은 북한 배가 남한으로 향하기 직전 모습.조선화보
북측은 구체적으로 쌀 5만석, 옷감 50만 미터, 시멘트 10만톤, 의약품 등을 보내기로 했다고 밝히고, 대한적십자사가 이에 동의한다면 구호물자를 자동차와 배로 싣고 가겠다고 공식제의했다.

당시 우리측은 북측의 이같은 제의에 선뜻 동의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서 대부분의 수재민들이 응급복구를 끝낸 데다 국제적십자사의 구호물자 제공제의조차 사양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최종적으로 북측의 물자제공 제의를 수락키로 결정했다. 이는 북한의 제의를 활용해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내 당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보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대한적십자사는 9월 14일 성명을 통해 북한적십자사의 물자제공제의를 수락했다. 당시 북한적십자사는 대한적십자사가 수해물자 제공제의를 수락하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북측은 우리측이 당연히 거부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문에 북측은 이때부터 남측에 보낼 수해물자를 준비하느라 북한 전역의 생산-수송체제를 전환하는 등 소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8일 우리 측에서는 대한적십자사 이영덕 부총재, 북한 측에서는 북한적십자사 한웅식 부위원장 등 4명이 판문점에서 실무접촉을 가졌다.

경색된 남북관계 풀어보려 북측 물자제공 제의 수락

84년 남한 호우피해는 어느 정도?

84년 8월 31일부터 4일간 남한에는 보기 드문 집중호우가 내렸다. 한여름 무더위가 지나면서 대륙성 고기압이 확장돼 중부지방에 강력한 강우전선대가 형성됐고, 강우전선이 서서히 남하하면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폭우가 내려 전국적으로 큰 물난리를 겪었던 것. 이 집중호우는 중부지방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졌다.

당시 강수량을 살펴보면 9월 1일 서울·경기·강원·충북지방110~300mm, 2일 영서·영동·경북내륙·충남 및 호남북부지방100~300mm, 3일 영남·호남북부내륙 100~250mm의 비가 내렸다. 특히 서울은 9월 1일 268.4mm로 1907년 관측 이래 9월 중의 1일 최다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 호우로 인한 피해는 사망 및 실종 189명, 이재민 35만 1000명, 부상 153명, 건물파손 및 침수 5만7천동, 선박피해 317척, 농경지 침수 4700정보 등에 이르렀고 총 피해액이 1333억원에 달했다.
이날 실무접촉에서 북측은 자동차와 배편으로 서울, 속초, 부산으로 구호물자를 수송하는 한편 북한기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인수인계의식을 갖고 수해지역을 직접 방문, 수재민을 위로하겠다고 고집해 이날 실무접촉은 6시간 35분 동안 계속됐으나 끝내 결렬됐다.

다음날인 19일 북한은 물자수송 방식에 있어 구호물자를 자동차와 배로 싣고 가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꿔 인천 및 북평항과 판문점으로 구호물자를 실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북측은 25일 수해물자 수송계획을 남한측에 통보했고, 우리측은 26일 북한에 물자인수 계획을 통보했다.

북측의 수해물자는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판문점과 인천, 북평항에서 우리측에 정식 인도됐다. 이 당시 남북적십자사간의 수해물자 인도-인수는 6.25 이후 분단 34년만에 이뤄진 최초의 남북간 물자교류였다.

당시 우리측이 인수한 북한 적십자사의 수해물자는 ▲판문점을 통해 쌀 5만섬, 옷감 1488포, 약품 14종 759상자 ▲인천항을 통해 시멘트 6만 5천톤(장산호 등 북측선박 9척 동원) ▲북평항을 통해 시멘트 3만 5천톤(연풍호 등 북측선박 4척 동원)이었다.

우리측은 9월 30일 판문점에서 물자를 인수한 뒤 수송에 참가했던 북한대표, 기자, 수송요원들에게 답례품격으로 담요, 카세트 라디오, 손목시계, 양복지, 양장지 등 18개 품목이 든 선물가방 848개를 전달했다.

북한적십자사가 제공한 수해물자는 쌀은 우리나라 연간생산량의 1천분의 1, 옷감의 경우 1만분의 일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당시 북한의 국민총생산이 남한의 5분의 1, 1인당평균소득은 2.5분의 1이라는 북한의 경제규모로 볼 때는 상당한 무리를 감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8월 20일 전두환 대통령이 민족화합과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동포들의 생활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물자와 기술 제공을 제의했으나 북측은 이 제의를 거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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