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19

측간신의 집 4

등록 2004.04.29 06:21수정 2004.04.29 10:40
0
원고료로 응원
밖에는 팔선녀들이 걱정이 되는듯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에 휘감긴채 밖으로 던져진 백호와 바리를 보자 물었습니다.

“어머…. 바리야, 어떻게 되었니?”
“ 측간신님이 많이 놀라게 했구나, 그 정도면 다행이야.”
“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 그동안 아무도 없었고, 들어갈 때 인기척을 하지 않아서 측간신님이 더 놀랐을 거야.”


바리는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 측간신 아줌마, 아주 나빠요. 엉엉. 도대체 그 많은 머리카락 수를 어떻게 알아내란 말이야, 이렇게 밖으로 내던지지만 않아도 옆에서 세어볼 수나 있을 텐데 . “

도라지 선녀가 물었습니다.

“ 여의주에 기를 주지 않으시던?”

백호도 답답한 듯 말했습니다.


“ 머리카락의 수를 세오지 않으면 기를 불어넣어주지 않으시겠대.”

팔선녀들도 기가 막혔습니다. 측간신의 머리카락은 길기도 길지만, 숱이 많기로도 유명했습니다.


여덟 선녀들은 무언가 중얼중얼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 지금 들어가서 머리카락을 다 세어보는게 낫겠다.”
선녀 중 한명이 말렸습니다.

“ 백호야, 그 머리카락 한올 한올은 시도때도 없이 자기가 맡은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일을 하느라 가만히 있지를 않기 때문에 셀 수도 없을 뿐더러, 셀 수 있다 해서 수 백년이 걸릴지, 수 천년이 걸릴지 그 누구도 몰라. 그 사이에 그 나쁜 호랑이들은 어떻게 하려고 하지?

순간 바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 언니들. 그 머리카락 하나 하나가 전부 화장실을 하나씩 맡아서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 맞나요?”
“ 맞아.”
“ 우리나라 화장실의 수랑 측간신의 머리카락이랑 전부 수가 같은 거 아니에요?”

백호가 말했습니다.
“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지금부터 돌아다니면서 화장실 갯수를 다 세자는 말이야?”
“ 저기 들어앉아서 측간신 머리 세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겠다. 구청이나 시청에 가서 물어보면, 우리나라에 화장실이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선녀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 좋은 생각이긴 한데, 화장실 수 세다가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는 것이 아닐까?”

도라지 선녀가 말했습니다.
“ 하하,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그러더니 주머니 안에서 무엇인가 꺼냈습니다. 8개의 나무조각이 끈으로 묶여있었고, 조각 하나 하나에는 점들이 박혀있었습니다. 도라지 선녀가 주머니에서 그 것을 꺼내자, 조각 하나하나들이 부딪히면서 달각달각 소리를 내었고, 노을빛을 받자 조각 위에 찍혀있는 점들이 푸른빛으로 빛났습니다.

“ 그래, 갑자계산기.”
선녀들이 놀라운듯 탄성을 지르자, 도라지 선녀가 말했습니다.
“ 이것은 이세상의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란다. 이 지구가 움직이는 시간이랑, 해가 언제 뜨고 지는지, 모든 것들을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맞추어 계산을 해내는 계산기지.”
“우와, 신기해라.”

바리는 그날 신기한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도라지 선녀가 계속 말했습니다.

“이 계산기를 세상에 보내서 이 세상 화장실이 모두 몇 개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 눈 깜짝할 사이에 알아내서 그 숫자를 일러줄거야. 선녀들은 이것을 다 가지고 다니거든.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 좋은 생각이다, 좋은 생각이야.”

백호가 말했습니다.
“ 뭐해? 빨리 알아보자구. 시간이 없다.”

도라지가 두 손을 앞을 향해 모으고 양 손바닥에 갑자계산기를 얹어놓고, 입김을 부니 여덟 개의 나무조각이 손바닥 위로 둥실둥실 떠올랐습니다.

“ 이 세상의 화장실의 수가 몇 개나 되는지 알아보고 돌아오너라.”
여덟 개의 나무조각은 그냥 그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도라지의 얼굴에서는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표정이 지나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계산기는 달그락 소리를 내면서 여덟개의 조각들이 파를르 돌기 시작하더니 '오류'라는 글자가 찍혀나왔습니다.

“오,류, , , , , , .”
도라지가 갸우뚱하면 그 글자를 읽자 다시 파르륵 돌면서 다른 글자를 만들어냈습니다.

“화,장,실,개,념,불,확,실.”

그러자 도라지가 말했습니다.
“ 그래, 화장실하면 의미가 너무 많아, 죽은 사람을 태우는 곳도 화장실이 될 수 있고,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는 화장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지.”

그 말을 들은 다른 선녀는 말했습니다.
“ 맞아, 북녘에서는 위생실이라고 부른다고 하던데….그럼 어쩌지?”

바리가 말했습니다.
“ 그럼, 이렇게 해요, 사람들이 용변을 보는 곳, 소변도 보고 대변도 보는 곳, 이러면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쓰는지 중요하지 않을 거 아녜요. 비슷한 단어 때문에 혼동할 일도 없고.”

“ 그래, 맞다,”
선녀들이 다시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 갑자계산기야, 사람들이 소변도 보고 대변도 보고, 용변을 보는 곳이 전부 몇군데나 되는지 세어보고 오너라.”

그러자 갑자계산기는 불티를 튀기며 하늘도 슝 소리를 내며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해가 지어 어둑어둑 해진 하늘 위에서 불꽃꼬리를 몇 번 휘두르던 갑자계산기는 어딘로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미처 열을 다 세기도 전에 도라지 선녀의 손바닥으로 돌아왔습니다. 도라지의 손바닥 위에 여덟개의 조각을 파르르 돌리면서 숫자를 하나씩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6,4,3,9,8,0,1,9.”

“ 바리야, 이 숫자가 화장실 수라는 구나.”
도라지가 숫자 하나하나를 다 헤아리자 갑자계산기는 또 다른 숫자를 내어놓았습니다.

0,0,0,0,0,0,2,6.

“ 26? 이건 뭐에요?”

바리가 묻자마자 갑자계산기에서는 또 다른 글자가 만들어졌습니다.

“내,일,완,공,될,화,장,실.”

도라지 선녀가 말했습니다.

“ 내일 26개 화장실이 새로 만들어지니까, 아마 측간신 머리 어딘가에서 머리카락 26올이 다시 자라고 있을거야.”

그 말을 들은 다른 선녀가 말했습니다.
" 측간신님은 하루종일 머리카락을 세고 계셔. 그 머리카락을 다 세야, 머리단장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 계속 화장실이 생기고 없어지면서 머리카락 수가 달라지는 바람에, 아무리 세도 정확히 셀 수가 없었을 거야.”

골똘히 생각하던 바리는 백호에게 물었습니다.
“ 측간신님이 이야기하던 그 조왕신은 누구셔?”
“ 조왕신은 불과 부엌을 지키는 신인데, 측간신과 이전에 가진 악연 때문에 부엌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어, 그 악연 때문에 화장실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고, 그래서 항상 우울해하고 계시지.”

바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습니다.
“ 백호야. 들어가자. 어떻게 들어가야 측간신이 놀라지 않을까?”

백호는 대답 대신 자기가 앞장서 측간신의 집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헛기침을 세번 하자,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측간신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부산하게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바리는 측간신을 보고 말했습니다.

“ 측간신님, 머리카락 수 다 셌습니다.”

측간신은 믿을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 물었습니다.
“그래? 내 머리카락이 전부 몇 개더냐?”

“ 6천 4백 삼십 구 만 팔천 열 아홉 개입니다.”
머리카락들은 그래도 변함없이 여기저기 움직이고 다녔습니다.

“ 그리고 지금 26개가 막 자라고 있을거에요.”

그러자 머리카락들이 천정과 벽에서 내려와 순식간에 촤악하고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측간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그렇게 파랗게 질린 모습에 바리는 순간 겁을 먹었지만, 측간신의 얼굴은 금방 옛날로 돌아왔습니다. 측간신이 말했습니다.

“네가 내 머리카락 수를 다 세어주었구나. 이렇게 금방 셀 수 있을 줄이야.”

“ 화장실 수를 다 세었으니, 측간신님도 좀 쉬시면서 머리단장도 하고 하세요, 머리를 예쁘게 꾸미시면, 밖에 나가 다니셔도 좋을 거에요.”

바리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은 부엌과 화장실이 아주 가까워요, 조왕신님도 측간님을 미워하지 않으신다는 증거에요. 세상에 아무도 측간신을 멀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요, 요즘 화장실이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서울에 사는 아이들을 화장실에 가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답니다. “

그러면서 바리는 요즘 화장실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데, 어머니들이 화장실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바리네 화장실은 엄마가 얼마나 예쁘게 단장을 했었는지, 요즘의 화장실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 아이들이 태어나면 어머니들이 화장실이 딸린 욕탕에서 깨끗이 목욕을 시켜준답니다. 아이들이 크고 건강하게 자라도록요, 사람들이 화장실에 와서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예쁜 향기나는 꽃들을 들여놓기도 하고, 멋진 그림을 걸어놓기도 해요. 좀 큰 언니들은 그 화장실이 뭐가 좋은지 들어가면 나오지를 않는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측간신의 얼굴은 지극히 평온하게 변했습니다. 백호는 옆에서 그냥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바리는 측간신의 머리를 예쁘게 만져주기도 했습니다. 요즘에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다니는지, 차근차근 잘 이야기해 주기도 했습니다.

측간신은 부드러운 목소리를 바리를 불러 앉혔습니다.
“ 네가 오기 전에, 너와 백호와 붉은눈의 호랑이들과 싸우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어, 도대체 너 같은 꼬마가 어떻게 그 녀석들과 상대를 할 수 있을지? 그런데 이제보니 알겠구나, 넌 충분히 해낼 수 있을거야. 너 같은 착하고 용감한 아이들이 나쁜 호랑이들 때문에 아파하고 울면 안되지, 어서 여의주를 다오, 내가 기를 불어넣어주마.”

백호는 여의주를 꺼내 측간신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측간신의 머리카락이 다시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머리카락이 여의주를 붙잡고 하늘로 올렸습니다. 맑은 빛줄기가 머리카락 한올 한올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기들은 받은 여의주는 파랗게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 빛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주머니에 넣으렴.”

백호가 여의주를 받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 백호가 어디엔가 잘 보관해 두었겠지요.

측간신은 바리가 가려고 하자 친히 문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문 밖에 서있는 여덟 선녀들을 보자 밝게 웃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을 보자 선녀들 역시 밝게 웃었습니다.

문간에서 측간신은 바리에게 무언가 건네주었습니다.
“ 내가 주는 선물이야,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이 구슬을 하늘로 던져라. 그러면, 도움이 될거야.”

약간 묵직한 검은 구슬이었지만, 무겁지는 않았습니다. 바리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측간신의 집을 나왔습니다.

그날은 선녀들이 지내는 예쁜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6개 읍면 관통 345kV 송전선로, 근데 주민들은 모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