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박정희, 영웅 신화에서 벗어나자

등록 2004.04.30 12:51수정 2004.04.3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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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은 부분적으로 희비가 엇갈리고 또 상반된 평가가 가능하지만 의회 권력 교체와 시민 사회의 도래를 차분하게 점쳐볼 수 있는 긍정적 정치 지형을 일구어 냈다. 아직까지 구태의연한 정치공학적 표 계산으로 배팅하듯이 유권자의 표심을 장악한 낡은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탄핵 정국 이후의 결집된 민의가 엄중하게 적용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주의라고 불릴 만큼의 한 정당의 몰표가 특정 지역에 편중되고 있는 것은 그 맥락을 자세하게 톺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양태의 근저에는 박정희 향수가 동력원으로 작동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이것은 기실 지역에 따른 편재성에 있다기 보다는 적지 않은 중장년층들 사이에 일종의 시대인식적 차원에서 강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즉,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불안과 위기의 시대에 더할 나위 없는 지도자상으로 굳어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박정희 신드롬이 감성적 차원에서만 이뤄진다면 노력을 들여 간여할 지점이 없겠지만 사회적 담론으로서 강력하게 일부 정치 권력의 배후 습지를 형성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대로부터 일정한 시간적 거리를 두고 시대를 물려받은 후대의 입장에서의 평가는 유익한 지향점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먼저 박정희 신드롬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력한 아버지상이 존재하는 권위적 세계의 질서가 현재 혼란을 겪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그를 그토록 각광받게끔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더군다나 경제적 치적 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억척스럽게 돌파해낸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모습은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과 많은 부분 대비된다.

보수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대통령은 온갖 스캔들을 몰고다니는 해외 토픽란의 연예인과 같은 가벼움의 수사학을 보여줬다. 보도는 기존의 국부로서의 존엄과 권위가 깡그리 소멸된 '인간' 노무현씨의 대통력직 수행 과정의 우왕좌왕이 대부분을 점했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의제 설정 능력의 대부분을 신문과 방송에 의존하는 시민들에게 대통령은 가부장제 권위 속에서 도태되는 것이 마땅할 정도로 나약해 보였을 것이다.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 상징적 이미지가 상당 부분 정치력과 혼용되는 사회에서 박정희의 넘을 수 없는 아버지상은 실로 강력한 복고적 감수성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의 해석을 따르자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타자화된 닮아가기를 극복해야 보편적인 자아를 갖춘 인격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금의 이 혼란스런 시대가 한국적 민주주의 패러다임 자체가 전환되는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닐까. 박정희 신드롬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그동완 미완결로 남져졌던 민주주의적 가치가 한국적으로 육화되느냐 마냐의 분기점을 상징한다고 여겨진다.

현재는 권위로 이뤄진 사회 체계가 세대가 바뀌면서 급속하게 허물어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중·장년층은 자리매김의 입지가 위태한 판국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박정희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시기야말로 제왕적 독재군주의 충직한 신민으로 되돌아 가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지 않나 싶다. 촛불 집회가 노빠들의 단체가 아니고 정치적으로 건강한 시민들의 자발적 의사 표현의 발로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콤플렉스 극복의 단초는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주체가 대통령이 아니라 다름 아닌 중·장년층 바로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야 한다. 현재의 눈부신 경제 성장이 한 독재자의 아집과 배짱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개개인의 '소박한 꿈'에 의해 추동됐다는 자긍심 또한 제대로 평가되야 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웅 신화가 주는 숭상감이리라고 생각된다. 민주적 정당성과 역사적 정통성은 없지만 군사 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차지한 남성성의 매력, 선글라스를 통한 강인하고 흔들림 없는 포커페이스의 이미지, 국민의 가난과 궁핍을 함께 느끼며 몸소 실천한 검소한 생활상 등 여러 가지가 주는 복합적 우상에 대한 심리가 그의 역사적 평가의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그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더욱이 자신의 측근으로부터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는 과정은 그리스의 비극적 영웅 신화와 닮은 점이 많다. 나폴레옹이나 시저의 몰락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재했던 한 인간의 전부로써 받아들여질 때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등의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은 잊혀진다. 통치 행위를 하는 현실적 지도자가 억압과 겁박의 수단으로 경제 성과를 울궈냈다는 사실이 묻혀져서는 안된다.

전태일의 분신과 수많은 노동 쟁의 탄압, 인권유린은 결코 묵과될 수 없다. 어느 한명이라도 대통령의 목숨보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겠으며 인권 또한 대통령의 그것과 다를 것이 있겠는가. 영웅은 현실에서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이후에 구성되어지는 것일 뿐이다. 경제 개발의 대가로 치른 민주주의가 기회 비용 차원에서 거래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눈부신 경제 성장의 토대가 마련된 것은 그의 집권 때였다고 인정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원조와 차관,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재벌 육성은 재평가되어야 할 지점이 많다. 당시의 여건을 고려할 때 종속식민지론을 뛰어넘은 쾌거로 봐야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어쨋든 국제 정치지형에서 외따로 계획된 경제 성장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동에서 근대화의 선두로 고도 성장을 했던 이라크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제재'라는 강대국들의 길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와 남미 여러 나라의 상황을 살펴본다면 한국의 고도 성장에 대한 평가가 맹목적 개인 숭배의 차원에서 좀 더 현실적 차원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합의와 화해 그리고 상생이라는 현재의 가장 뜨거운 테마와 박정희가 어떤 부분에서 겹칠 수 있는지 면밀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의 치적의 후광에 편승해서 가장 커다란 이익을 얻는 자들이 과연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지도 같이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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