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차별 철폐, 더 늦출 수 없다'

비정규직 차별, 무엇이 문제인가?

등록 2004.04.30 17:08수정 2004.05.0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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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화를 통해 한 후배의 억울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한 건설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후배는 4박 5일간의 예비군 훈련 때문에 직장 상사에게 보고했지만, 그 상사는 '훈련기간의 임금은 삭감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억울하면 회사 그만 두라’는 말까지 들었다며, 무척 흥분해 있었다.

물론, 위의 사례는 비정규직 차별 사례 전체를 보자면 말 그대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지난 2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퇴직근로자의 분신자살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고 박일수(50)씨는 “하청 노동자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살했다.

정부는 비정규직 규모를 전체근로자(1430만명)의 32.6%인 460만명으로 집계하는 반면 노동계는 784만명(55.4%)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대전시지부 민병기 정책국장은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고용의 불안정이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정규직도 마찬가지겠지만, 비정규직의 경우 회사측의 일방적인 퇴사요구에 대해 아무런 대응방안을 가지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마저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포기해야 한다.

둘째, 임금의 차별이다.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30~5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시설노동자(건물 청소 등)들의 경우 최저생계비용(현재 56만7260원)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서 임금의 정해지는 형편이다.

셋째, 4대 보험의 적용 등 노동자로서 당연해 보호받아야할 것들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비록, 30% 정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막상 산재를 당했을 경우 신청 절차가 정규직에 비해 상당히 복잡하고, 신청할 경우 사측의 퇴사요구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가 설립된 배경인 소위 ‘식칼 테러’에 대해 알아보면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4월 21일 행사
금속노조 충남지부 4월 21일 행사민주노총 충남본부 제공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 오은희 부장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던 송모(32)씨가 관리 담당자에게 월차 휴가를 건의했지만, 그는 거절했고 오히려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관리 담당자가 식칼을 들고 병원에 찾아와서 송씨의 아킬레스건을 절단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다행히, 송모씨는 완쾌되어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지난해 4월, 사내하청지회가 설립되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지 ‘블루칼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번 서울대 강사 자살사건으로, '한국 비정규직 교수 노동조합' 등이 조직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 대전광역시지부와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 지난 3월 4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정부출연 연구기관 비정규직 연구자 실태 조사'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그 심각성을 재인식하게 된다.

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과의 일차적인 차별은 물론 직종별, 학력별, 성별로 나뉘어 2차, 3차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전체 395명 중 남자 252명, 여자 137명, 무응답 6명)의 70.1%가 비정규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해 현실적으로 느끼는 차별의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응답자의 56.7%는 ‘임금이 착취 수준’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연구자들간의 학력별, 성별에 따른 차별이 존재했다. 응답자 전체 평균 임금은 128만원이었으나 학연 과정생의 경우 69.5만원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학연 과정생은 업무에 있어서 다른 비정규직과 차이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만으로 급여 수준에 있어 심각한 차별을 겪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 역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재계의 “정규직이 양보해야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의견에 대해 민주노총 충남지부 오은희 부장은 “양대 노총에 가입된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10% 이내이다. 재계가 주장하는 ‘정규직’이란 말은 결국 이들 10%의 노동조합이 있는 정규직만의 양보만을 말하는 건데, 어불성설이다”라는 입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에 정규직이 퇴직금 일부를 비정규직에게 돌리는 등 정규직의 양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스페인식 노사모델’을 권고했다. 또한, 스페인식 해법은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기업에는 벌칙을, 정규직 채용을 많이 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특징이다.

비정규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민주노총 충남본부 오은희 부장
비정규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민주노총 충남본부 오은희 부장
최근,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계기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의 논의가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은희 부장은 “아직 정확한 계획은 없지만, 총연맹 차원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협의가 이루어지는 대로 구체적인 실천투쟁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비정규직 스스로가, ‘자신이 부족해서 그렇다’라는 의식을 벗어버리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해야 이 문제가 좀 더 빨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공론화 단계는 이미 지난 듯 하다. 그 방법이 어떠하든, 가장 신속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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