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요즘 기사들 왜 깊이가 없냐면..."
김부겸 "국민의힘? 까불지 좀 말라고 해"

[取중眞담] 열린우리당 초선들에게 '모범 안되는' 두 선배 의원

등록 2004.05.02 04:08수정 2004.05.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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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청와대를 출입했고, 총선 시기 민주당을 거쳐 현재 열린우리당을 출입하고 있는 손병관 기자입니다.

a 열린우리당 이해찬(왼쪽), 김부겸 의원.

열린우리당 이해찬(왼쪽), 김부겸 의원.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선거가 끝나면 정당별 의석분포에 따라 각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의 대규모 이동이 이뤄지는데, 민주당을 출입하던 상당수 기자들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지난주 강원도에서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숍(연찬회)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전세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기자들의 인원점검을 할 때 박영선 대변인이 "민주당 출입하던 기자들은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영등포 우리당사까지 삼보일배로 와야하는 게 아니냐?"고 우스개를 던진 게 떠오르는군요.

오늘(2일)은 워크숍 뒷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기분이 나른해지는 일요일이고 해서 처음에는 가벼운 읽을거리를 생각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방향이 그렇게 되지 않는군요. 아무래도 '정치인과 언론' 얘기를 하려하고, 언론개혁을 바라는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이 문제에 유별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론을 꺼내기 전에 먼저 워크숍 분위기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 동안 나온 기사들만 보면 3일 내내 뭔가 심각한 논쟁이 있지 않았나, 국회 개원도 하기 전에 당이 깨지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면적인 해석이고요.

지난주 워크숍을 가진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공히 소속의원들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애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동영 의장이 마지막날(4월 28일) "한나라당을 오래 출입했던 언론인이 연수회를 보고 '우리당이 잘될 것 같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상하가 없더라'고 말했다"고 전했는데, 의원들이 선수(選數)에 관계없이 부대낄 수 있는 분위기에 만족하는 눈치였습니다.

반면, 저는 워크숍 내내 선거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취재했습니다. 처음 만난 당선자들과 당직자, 타사 기자들에게 부지런히 명함을 돌리고 얼굴을 알리는 게 큰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강연 등의 공식행사만이 아니라 산행이나 술자리 등에도 안 낄 수가 없었습니다.


장면 1 : 이해찬 "요즘 기사들은 깊이가 없어. 옛날에는..."

기자와 정치인이 만나면 아무래도 '공장' 얘기가 주요 화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이 술 얘기입니다. 기자들에게는 술자리도 취재의 연장이 되기 때문에 정치인으로부터 한마디라도 더 주워담길 원하고, 정치인들은 이 자리를 빌어 언론비평을 하며 갖가지 주문을 하게 됩니다.


문희상, 이해찬, 임채정 등 일부 중진의원들은 워크숍 첫날 분임토의에 들어가는 대신 호텔 인근의 식당에서 기자들과 술자리를 겸한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이해찬 의원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2002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정국에 대해 말을 아껴온 이 의원은 지난달 22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MBC 100분토론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언론과 접촉을 기피한 이유에 대해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가 정치가 욕을 먹는 데 대한 자괴감이고, 둘째는 말 한마디에 호들갑을 떠는 언론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이 의원은 "요즘 기사들은 깊이가 없어"라고 푸념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를 "예전에는 정치인들과 기자들이 고스톱칠 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찾아볼 수 없지만, 평민당 등 야당 당사에 1진(선임) 기자들이 모여서 고스톱치는 방이 있었고, 중진의원들은 이 방에 와서 고스톱을 함께 치며 정국향방에 대한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이 의원은 95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는데, 서울시청 기자실에도 '고스톱방' 류의 편의시설은 있었다고 하네요).

후배기자들이 이래저래 각종 기자회견을 뛰어 다니고 전화를 돌리는 동안 선배기자들은 고스톱 자리에서 느긋하게 중진들의 브리핑을 받은 셈입니다. 이 의원은 "요즘은 기사가 방향도 없이 이 얘기 저 얘기 튀어나오는데, 옛날에는 정국의 맥을 짚어주는 해설기사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의원의 생각은 구시대의 정치문화와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역사인식의 빈곤'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유력 언론사 고참기자들이 중진 의원들과 고스톱이나 치면서 해설기사 꺼리를 따내는 것은 '3김'이라는 제왕적 총재와 유력 측근들이 득세하던 시대에나 통하던 행태이기 때문입니다.

이 의원이 이런 얘기를 하는 동안 옆자리에 있던 박병석 의원은 뜻 모를 미소를 지었습니다. 박 의원은 90년부터 3년간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을 지냈는데, 이 의원과 52년생 동갑이다보니 '왕년의 좋았던 시절'에 대해 공감할 만한 추억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장면 2 : 김부겸의 언론관은 '좋은 게 좋은 것'인가?

둘째날 '선배의원들의 의정활동 노하우'라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한 해라도 국회에 먼저 들어간 선배들이 100명이 넘는 초선의원들에게 특출한 비법을 전수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더군요.

이미 <오마이뉴스>가 강연 전문을 보도했지만, 특히 김부겸 의원의 '언론 강의'를 듣고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기자들에게 거짓말하지 마라" "기자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김 의원의 메시지 자체는 나무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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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겸 의원 "언론에 무한신뢰 보내야 '칼질' 없을 것"

그러나 "언론과의 지나친 긴장관계는 효과적이지 않다" "언론에 무한신뢰를 보내면 '칼질'도 없을 것"이라는 말은 선뜻 수긍할 수 없더군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권력이 돼 각종 개혁의 발목을 잡아온 조중동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정치인의 진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기사를 쓴 후 독자 댓글이 비판 일변도로 흐르자 김 의원에게 발언의 진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김 의원이 제 발로 기자실을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김 의원은 이미 몇 잔의 술을 걸친 상태였는데, 자기가 한 말이 언론에 어떻게 보도될 지에 관심을 가지더군요. 제가 "우리 독자들 반응은 과히 좋지 않네요"라고 전했지만, 김 의원은 개의치 않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의힘에서 총선 전에 언론개혁 등에 동참하라는 서약서를 보냈는데, 내가 '까불지 좀 말라'고 거부했더니 나를 낙선운동 대상자로 지목하더라"며 억울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열린우리당 지지층중에 17대 국회에서 '편집국장 직선제 의무화' '언론사주 소유지분 제한' 등의 언론개혁안이 관철되길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김 의원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언론관을 접하고 은근히 걱정이 생겼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민의힘 초대대표(정청래 당선자, 서울 마포을)가 같은 당에 있는데, 앞으로 얘기가 잘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양반이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데, 지역구에서 표 얻으러 다녀보면 생각이 틀려질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옆자리의 중앙일보 기자가 기자실을 떠나는 김 의원의 등뒤로 "아예 김 의원이 문화관광위 간사를 맡지!"라고 한마디 던지는 순간, 그랬다가는 열린우리당 정말 난리 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이들이 원내대표, 문광위간사 맡으면 언론개혁 어디로 갈까?

이해찬·김부겸 의원의 취중발언을 접하고 "정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한 얘기 맞냐?"고 의아해 하는 분도 계시리라 봅니다. 저는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군요. 한 가지 부연하면, 두 의원 모두 언론사 기자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발언이었다는 것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김부겸 의원은 재선, 이해찬 의원은 5선입니다. 선수(選數)의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의 얘기에는 "수구언론과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 "기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언론과의 관계는 자연스레 해결된다"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정치인과 언론사이에는 취재원과 취재자의 관계가 있을 뿐이지, 대립관계를 빚으면서까지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지점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의원은 언론사 중견기자들과의 고스톱 자리에서 기사 꺼리를 던져주고 정보를 통제할 수 있었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김 의원은 "수구언론 기자들과의 인간적 유대로 개혁에 대한 시각 차이를 넘어설 수 있다"는 착각에 젖어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판일까요?

특히 김 의원의 경우 수구언론들의 지원을 받는 한나라당에 4년 이상 머물렀던 경험이 재야시절부터 길러온 비판의식을 무디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을 낳습니다.

행여나 이분들이 각각 원내대표와 문화관광위 간사라도 맡게되면 격론이 예상되는 정기간행물법 개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합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선배들의 오도된 인식과는 달리 17대국회에 입성한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 상당수가 수구언론과의 무원칙한 상생으로 덕을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조중동과의 정면대결이 쉽지 않은데, 2000년 언론사 세무조사와 연이은 대선·총선을 거치면서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권에만 함께 할 의원들이 30명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뒷거래 하면 지지자들이 가만 있겠나? 난 바로 탈당이야!"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발언자들의 실명을 공개할까 생각했는데 '나는 괜찮은데, 내부조율이 안된 상태에서 내가 속한 그룹이 싸잡아 공격받을 수 있다'는 요청 때문에 실명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제 글을 마쳐야 할 시점입니다. 총선이 끝난 지 20일도 안됐는데, 열린우리당에 대해 기대보다는 실망이 많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낍니다. 열린우리당이 일부러 허세를 부릴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 추구하려는 개혁에 대해 단호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실망을 주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어떤 독자 분이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딴지일보>와 가진 인터뷰(2001년 2월22일)를 보내주셨습니다. 벌써 3년 전 발언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얘기인지라 마지막으로 소개 드립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노 장관님은 직업이 정치인인데, (조선일보와) 잘 좀 지내시지.

노무현 : 저도 개인적으로 잘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지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그분들도, 공정하게도, 개인적 호불호와는 관계없이 그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비호하고, 관철하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들이 양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거기에 도전하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이익은, 짧게 말해서 수구적 이익입니다.

한국 사회에 주류적 집단이라고 스스로 자처해온 수구 기득권 세력. 멀리 올라가면 친일파의 맥이 나오고, 가까이 오면 독재정권과 항상 결탁해오고, 항상 강자와 결탁하면서 특권을 누려왔던, 부당한 이익을 누려왔던 집단이지요. 소위 한국의 주류라고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기초가 거기 있습니다. 전쟁 나면 아들 군대 안 보내고, 법 위에 군림해왔던 사람들입니다. (이 대목에서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그것이 소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수 수구 언론이 옹호하려고 하는 가치이고 이익이고, 바로 그들이 그 세력이고 그 이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양보하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김대중 대통령이 거기에 도전해서 성공했고, 겁도 없이 노무현이 초선 의원이 돼 가지고 거기에 도전한 것이지요.

...(중략) 그래서 이제 얘기하자면, 언론과 제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언론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언론에 대해서도, 과거의 것을 반성할 건 반성하고, 그렇다고 신문사 없어지라는 것도 아니고, 신문사 그냥 하란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올바른 평가의 토대 위에서 그리고 새롭게, 그야말로 좀 더 대중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도록, 그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에 동참하자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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