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41

술 취한 세상

등록 2004.05.03 17:41수정 2004.05.0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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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세상

"뭐? 또 금주령이라고?"


아침 조례가 끝난 후 포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술 쳐 먹는 게 뭐가 대수라고 또 이런 난리람? 높으신 양반 내들은 뇌물도 잘 쳐 잡수시던데."

"쉿! 목소리가 크네! 가뭄이 들어 그렇다지 않은가!"

백위길은 포교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며 바삐 시전으로 향했다. 각 점포를 돌며 금주령이 시행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상인들의 원성은 매우 컸다.

"그래, 뭐 밥도 못 먹는 사람은 그렇다 쳐도 개똥같은 세상 잊으려 술 좀 먹는 게 그리 대수야?"


"그래봐야 양반 내들 좋은 일만 시키는 거지."

백위길은 상인들의 투덜거림을 뒤로하며 시전을 한바퀴 돈 뒤 마지막으로 기방에 들렸다. 핑계야 금주령에 대해 알리자는 것이었지만 실은 애향이를 한번 보려 들리는 것이었다.


"백포교 오셨수? 금주령 떨어진 건 알고 있다우."

윤옥이 이미 알고 있으니 그만 다른 일이나 보러 가라는 투로 대하자 백위길은 당황스러워 하며 이리저리 다른 곳을 살펴보는 시늉을 했다.

"아, 담가 놓은 술이야 잘 치워놓았으니 걱정 마시구려. 그거 팔아서 치도곤을 맞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으니까 포교께서는 안심하셔도 좋소. 이제 얼마간 물장사 공쳤구먼."

"아...... 그렇소이까? 그런데 측간이......"

윤옥은 엉뚱한 핑계를 대며 자리를 뜨지 않는 백위길을 스윽 훑어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얘 애향아! 백포교님 오셨다!"

난데없이 윤옥이 애향이를 부르자 백위길은 그만 얼굴이 벌겋게 달라 올라 버리고 말았다. 애향이는 안에서 옷맵시라도 매만지는 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문을 열고선 활짝 웃는 얼굴로 백위길을 맞이했다. 윤옥은 그런 애향이를 보며 코웃음을 치더니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백위길은 애향의 집에 자신이 장작과 돈을 주고 온 사실을 행여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더욱 낯이 달아오는 듯 했다.

"시, 실례했소."

백위길은 몸을 돌려 달리듯이 기방에서 빠져 나왔다. 애향이를 따라 집에까지 간 적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술의 힘을 빌었기 때문이었고 기실 백위길은 여자에 대해서는 숙맥이나 다름없었다.

'분명히 날 비웃을거야. 날 비웃을 거야.'

백위길은 달리고 또 달렸다.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달려가던 백위길은 그만 지게에 큰 독을 지고 가는 사내와 부딪히고 말았다.

"어이쿠!"

사내와 백위길은 동시에 넘어지고 말았고 그 바람에 지게에 얹힌 독이 굴러 떨어지며 박살이 나고 말았다. 순간 강렬한 술 냄새가 백위길의 코를 찔렀고 사내는 상대가 포교임을 알아보고선 허둥대기 시작했다.

"내 이놈! 이게 웬 술이냐!"

백위길은 황망한 가운데서도 사내를 단단히 잡고서는 엄포를 놓았다. 사내는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벌벌 떨며 손사래를 쳤다.

"소인은 맹세코 금주령이 떨어진 줄 몰랐사옵니다. 그저 용서해 주십시오."

"내 너에게 굳이 금주령에 대해 말한 적 없다!"

사내는 넙죽 엎드리며 싹싹 빌어대기만 했다.

"그저 용서해 주십시오. 주막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술을 내다 버리기도 아까워 다른 곳에 가져다 팔 작정으로 저지른 일이옵니다. 그저 불쌍히 보여주십시오."

백위길은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럴 틈도 없이 뒤에서 이순보와 두 명의 포졸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네 이놈! 그런 변명은 포도청으로나 가서 해라!"

백위길은 마치 이순보가 보라는 듯 사내의 팔을 우악스럽게 부여잡으며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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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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