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42

술 취한 세상

등록 2004.05.04 17:42수정 2004.05.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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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금주령이라? 물장사로 한 몫 벌 좋은 기회가 아닌가?"

옴 땡추는 껄껄 웃으며 무릎을 탁 쳤고 옆에서는 혹 땡추가 투덜거렸다.


"에이! 뭐 이놈의 조정은 툭하면 금주령 운운하니. 뭐 그래봐야 술은 잘만 빚어 마시더구먼."

"이 놈아. 그런다고 네가 언제는 금주령을 지킨 적이 있느냐? 오승(五僧)이는 지금 용인으로 내려가 그곳의 술도가를 운영하여 자금을 모으게."

사마귀 사내가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짚신을 챙기며 옴 땡추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후 방문을 나서려다 문득 멈춰 섰다.

"그런데 형님!"

"왜 그러느냐?"


"우리가 너무 시일을 끄는 것은 아닐런지요?"

"......"


사마귀 사내의 말에 옴 땡추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어서 가기나 하게!"

뭔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길을 나서는 사마귀 사내를 보며 옴 땡추는 신경질 적으로 몸을 긁어대었다.

"걸핏하면 옴이 오르는 나도 참고 견디고 있는데 왜들 이리도 조급한가! 거 참......"

"그런데 형님! 오승이 형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혹 땡추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옴 땡추를 쳐다보았다.

"그간 우리가 모은 돈과 물자,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를 그대로 두면 둘수록 조금씩 새어나가지 않겠습니까?"

"허, 고놈 며칠 술을 안 먹더니 머리통이 제대로 돌아가려는 모양이구나."

오랜만에 옴 땡추의 칭찬을 듣자 혹 땡추는 신이 난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뜸들 일 거 없이 단숨에 해치우자 이 말이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왜 있겠소?"

옴 땡추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놈아, 넌 우리가 나선다고 이 나라가 뒤집어질거라 생각하느냐?"

혹 땡추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아니 형님!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며 세를 키우는 것이 다 무엇 때문이오!"

"팔승(八僧)아, 넌 홍경래가 무엇 때문에 실패했다 생각하느냐?"

혹 땡추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모르겠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옴 땡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왜 산골 무지렁이일지라도 하나하나 직접 모시다시피 하여 우리와 뜻을 함께 할 것을 맹세했는가? 조선 방방곡곡에 있는 이들과 뜻을 맞추며 고루 규합해 한번에 치자는 뜻이 아닌가? 이를 위해 나 혼자는 어려우니 우리 여덟 명이 뭉치지 않았느냐? 비록 고향이 달랐으며 피도 나누지 않았으나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간 후 서로 형제로 생각하며 같은 뜻으로 움직여 왔지...... 홍경래는 십 년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겨우 오, 육 년이 지났을 뿐이다."

"허! 그야 그랬지요. 하지만 일전에는...... 도둑놈 하나도 설득 못했지 않습니까? 이래서 언제 뭘 하겠습니까?"

"그땐 우리가 너무 기고만장했어! 게다가 그 놈은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네! 그 일을 기화로 이젠 초심으로 돌아갈 때야! 말이 통할 자는 설득하고, 재물을 탐하는 자에게는 돈을 주고, 두려움이 많은 자에게는 협박하는 법인데 사람이 그렇게 달라졌을지 누가 알았나? 게다가 그 빌어먹을 포교 놈의 일과 겹쳐 여러모로 꼬인 걸세!

"에이! 역시 형님과 말로는 안되겠수다! 어디 가서 술이라도 구해와야겠소!"

"이놈아, 강 별감이 다 알아서 챙겨 줄 텐데 빡빡 깍은 머리통을 또 들키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에이! 그때까지 어찌 기다리우!"

혹 땡추가 문을 박차가 나가버리자 옴 땡추는 혀를 차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놈들아,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하는 거야.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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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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