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 2만 마리 꼭 죽여야 하나

[현지보고〕환경단체는 찬성, 정부와 관광업계는 반대

등록 2004.05.05 00:21수정 2004.05.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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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뭇가지 위에서 새끼를 보호하는 코알라

나뭇가지 위에서 새끼를 보호하는 코알라 ⓒ 오스트레일리아관광청

호주대륙의 남단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 '캥거루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코알라 2만 마리가 총으로 사살될 위기에 처했다. 그것도 그 지역의 환경단체들이 "빠른 시일 안에 코알라 2만 마리 정도를 사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찬반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환경보호정책을 당의 주요정책으로 삼는 민주당 소속의 샌드라 캐닉 당수가 코알라 사살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법안을 지난 4월 28일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의회에 발의하여,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코알라 때문에 섬이 망가지고 있다

저간의 사정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우선 샌드라 캐닉 당수를 지난 4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녀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환경보호운동가다.

다음은 캐닉 당수와의 일문일답.

- CNN에서 당신의 주장을 전 세계에 보도했다. 보도를 접한 한국에서도 호주동물 중에서 가장 귀엽게 생긴 코알라를 꼭 죽여야만 하는지 궁금해 한다.
"CNN의 보도 때문에 미국에서 400여 통의 항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알라 때문에 섬이 망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먹을 거리가 없어서 굶어죽는 코알라들을 눈으로 직접 보면 '코알라 학살' 운운하면서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전문사격수를 고용해서 코알라를 죽이자고 제안했는데.
"가능하면 코알라의 고통을 적게 하자는 뜻이다. 더구나 그 일이 아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전문가를 고용하여 깔끔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총으로 쏴서 죽이는 방법말고는 다른 대안은 없나?
"생포해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있는데 불가능한 일이다. 코알라 전문가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캥거루 섬의 코알라들은 장기간 격리되어 살았기 때문에 면역성을 잃어 내륙으로 옮기면 모두 병에 걸려서 죽게된다고 한다."


- 호주코알라협회(Australia Koala Foundation)에서는 코알라의 먹이인 나무가 너무 적어서 문제가 생겼으니, 나무를 더 심어서 코알라 서식지를 확보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말이 맞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약 20년 정도가 걸린다. 빠른 시일 안에 코알라 숫자를 조절하지 않으면 캥거루 섬의 코알라는 모두 죽을 것이다."

- 정부당국이나 환경단체들은 왜 그 지경이 되도록 지금까지 방치했나?
"사실 지난 1996년에도 똑같은 문제로 한 바탕 소동이 있었다. 그 당시엔 코알라 숫자가 5천 마리 정도였는데 불과 8년 만에 3만 마리로 불어난 것이다. 일부 코알라 전문가들이 지금의 사태를 미리 예상하고 2천 마리 정도를 사살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정부가 국민의 눈총 때문에 거절했다."


- 이 법안에 대한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민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면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자세한 내용을 파악한 후에는 찬성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다. 정확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아니지만 보좌관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결과는 70% 정도가 찬성하는 것 같다고 한다."

한편 샌드 캐닉 당수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는 퀸즈랜즈대학 생태연구소장 휴 포싱햄 교수는 "캥거루 섬에서도 해마다 몇 만 마리의 월러비를 사살하며 내륙에서는 해마다 수백만 마리의 캥거루와 한때 멸종위기에 있던 야생 거위들을 죽이고 있다. 코알라만 예외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자연보호협회의 매트 터너 회장은 그들보다 한 술 더 뜬다. 그는 "코알라 특유의 귀여운 모습 때문에 그 뉴스만 나오면 사람들이 무조건 반대한다. 그러나 코알라 때문에 죽는 유칼립투스 나무도 생각해야 한다. 관광객을 위한 코알라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알라 사살 소식에 실망한 해외 관광객

a 코알라를 안고 기념 촬영 하는 일본 관광객

코알라를 안고 기념 촬영 하는 일본 관광객 ⓒ 오스트레일리아관광청

이번에 문제가 된 캥거루 섬은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연간 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다. 특히 코알라를 좋아하는 일본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섬이다.

호주관광청 직원 마크 워랜은 "일본 모델이 곰인형처럼 생긴 코알라를 가슴에 안고 찍은 관광포스터가 많은 관광객을 호주로 불러들이고 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은 코알라를 유난히 좋아해서 호주코알라협회 일본지부를 만들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1996년에 코알라 사살계획이 발표되자 일본에서 수 천 통의 팩스와 항의편지가 올 정도로 반대가 거셌다. 그 계획이 취소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의 '호주관광 보이콧' 엄포였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존 힐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 환경장관도 "이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일본 언론들이 법석을 떤다. 관광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주 정부로서는 문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며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호주 당국의 어정쩡한 대응은 코알라가 총으로 사살되는 장면이 TV로 방영됐을 때 호주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또한 분개한 전 세계의 환경운동가들이 호주관광 보이콧 운동을 전개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주코알라협회는 미국의 워싱턴지부, 뉴욕지부와 일본지부까지 동원해서 데이빗 캠프 호주연방 환경장관과 존 힐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 환경장관에게 항의편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코알라가 많은 게 아니라 나무가 적다

코알라 사살계획에 적극 반대하고 있는 호주코알라협회의 주장은 한결같다. 현 사태가 코알라의 탓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무차별한 생태계 파괴에 대한 엄정한 대가라는 것. 다음은 호주코알라협회 데니 맥길 공보관과의 전화통화를 요약한 것이다.

캥거루 섬에는 원래 코알라가 살지 않았다.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1920년대에 사람들이 캥거루 섬에 40여 마리의 코알라를 풀어놓으면서 적절한 기후조건과 풍부한 먹이 때문에 코알라가 빠르게 번식한 것이다.

그야말로 코알라 천국이 된 것이다. 문제는 캥거루 섬으로 사람들이 이주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섬 안에 있는 숲 80% 정도를 양 목장으로 개간하는 바람에 코알라의 먹이인 유칼립투스 나무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호주의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숲이 사라지면서 코알라의 숫자도 급격하게 줄어서,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약 1200만 마리였던 것이 지금은 호주전역을 통 털어서 겨우 10만 마리 정도만 살고 있다.

특히 코알라보호정책이 없었던 1930년대에 코알라를 모피용으로 무분별하게 사냥한 것이 코알라 숫자를 줄어들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고, 농지개발을 위해서 호주 숲의 80% 정도를 불태워서 개간한 것도 코알라에겐 치명적이었다. 엄청난 수의 코알라가 불에 타서 죽었던 것.

그런 상황에서 캥거루 섬의 코알라 숫자만 빠르게 늘어난 이유는 다른데 있다. 호주전역에 번져 있는 코알라의 불임성 질병인 크레미디아 병균이 바다 건너에 있는 캥거루 섬에는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크레미디아 병균은 코알라 숫자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루에 20시간씩 자는 잠꾸러기 코알라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코알라를 소개하는 관광가이드로부터 "유칼립투스 잎이 함유하고 있는 알코올 성분 때문에 코알라가 취한 상태로 하루에 20시간씩 잠만 잔다"라는 재미있는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코알라는 호주의 동남부에 서식하는 유대류 동물로 오직 유칼립투스 잎만 먹고산다. 유칼립투스 잎은 섬유질이며 영양가는 거의 없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코알라는 운동량을 줄여서 에너지를 비축할 요량으로 먹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잠을 자는 것이다.

코알라가 하루에 먹는 유칼립투스 잎의 양은 약 800g 정도다. 그리고 코알라는 거의 물을 먹지 않는 특이한 동물로 수분을 유칼립투스 잎과 이슬에서 섭취한다. 코알라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연유했는데,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말로 코알라는 '물을 먹지 않는다(No drink)'라는 뜻이라고 한다.

코알라의 번식기는 9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로, 새끼 코알라는 7개월 동안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며 그 후에는 새끼주머니에서 나와 어미의 등에 업혀서 생활한다. 그러다가 몸무게가 불어나 어미의 등에서 떨어지면 독립하게 된다. 코알라의 수명은 15-20년 정도다.

코알라는 대나무 잎만 먹는 중국의 판다 곰처럼 지독한 편식습성을 갖고 있다. 호주에 600여 종의 유칼립투스 나무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12종류의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다.

그 이유 때문에 외국 동물원에서 코알라를 기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여 곳의 동물원에서 코알라를 기르고 있는데, 미국 샌디에고 동물원에서는 새끼까지 낳아 큰 뉴스가 된 적이 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코알라를 직접 보고싶은 사람들은 호주로 올 수밖에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딸 챌시는 코알라를 직접 보고싶어서 학교까지 빼먹으면서 아빠의 공식방문단을 따라 호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생태계의 법칙은 엄정하다

호주코알라협회의 연감에 의하면, 코알라 숫자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곳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캥거루 섬과 빅토리아 주의 깁스랜드 정도다.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오히려 줄어드는 코알라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NSW 주와 퀸즈랜드 주에서는 코알라 병원과 연구소까지 만들어서 코알라를 보호한다. 호주코알라협회에서는 코알라 보호법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캥거루 섬의 코알라들은 죽임을 당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총으로 코알라를 사살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고 말하지만, 그 방법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샌드라 캐닉 민주당 당수는 "코알라를 사살하자는 법안을 발의한 날, 너무 가슴이 아파서 밤을 꼬박 새웠다"며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생태계의 법칙은 엄정하다.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한순간이지만, 훼손된 자연을 되살리는 일은 오랜 시간의 고통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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