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전제적 경영권 집착 버려야"

[이코노미 피플 - 2]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등록 2004.05.05 12:54수정 2004.05.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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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인터뷰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인터뷰 ⓒ 남소연


"명실상부한 노동계의 씽크탱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 사무실이 들어선 서울 영등포 대영빌딩 한 켠에 최근 새로운 공간이 마련됐다. "출발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것"이라는 포부와 각오로 지난 4월 30일 문을 연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을 위한 공간이다. 향후 10년 내에 노동관련 연구단체의 '심장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김태현 정책연구원 초대 원장을 <오마이뉴스>가 지난 3일 만나봤다.

김 원장은 민주노총 창립 멤버이다. 창립 이후 기획국장, 정책기획실장 등을 역임하며 주로 정책실무에 관여한 탓에 민주노총 내에서는 '정책통'으로 꼽힌다. 3년전 잠시 민주노총을 떠나 있을 때에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을 맡을 정도로 내부에서 신망받는 '브레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이 이끄는 정책연구원의 중점 연구대상은 4가지로 요약된다. ▲노동운동 발전전략 모색(산업별 교섭모델 연구, 비정규직 조직화) ▲노동시장 연구(임금차별해소정책, 제조업 공동화 대안) ▲사회공공성 강화(빈곤해결 대책, 국민연금 개혁방안) ▲노동운동사(민주노총 10년사 정리) 등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당분간 자체 연구사업에 치중하기 보다 민주노동당과 학계, 진보적 연구소들을 모두 묶는 대단위 네트워크를 구축해 노동관련 주요 쟁점들을 연구해나갈 계획이다.

사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의 개원은 민주노총 위기의 다른 표현 형태다. "노동운동도 독자적인 정책연구 없이는 사회를 향해 발언하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개소식 소개서에 언급할 정도로, 대안없는 투쟁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민주노총이 처해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자주적 연대... 당 대의원 30% 민주노총에 할당필요"


특히 그는 현재 민주노총이 '위기국면'에 봉착해 있다고까지 말했다. 김 원장은 "조직화된 노동자는 10%대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그 중 비정규직은 조직화되지 않아 민주노총의 대표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대변조직=민주노총'이라는 등식 자체가 위협을 받고있는 상황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김 원장은 향후 민주노동당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정리할지도 정책연구원의 고민 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민주당 로비단체로 전락한 미국형 'AFL-CIO' 방식을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당의 외곽조직으로 남아버린 프랑스 공산당 모델을 따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당과 노동조합이 각각의 자주성에 기초해 결합하고 연대하는 관계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된다"며 절충형 모델을 제시했다. 이같은 건강한 '연대의 틀'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의 30%는 민주노총에 배정돼야 한다고 김 원장은 주장했다.

한편, 김 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철폐, 제조업 공동화 등과 최근 노동계 현안과 관련해서도 비교적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으며 재계 쪽 논리를 반박했다.

그는 비정규직 차별이 발생한 근본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에 있다고 지적했고 원·하청 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채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낮춘다고 해서 비정규직의 임금이 상승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청 업체의 자금 여력은 원하청 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통해 확보되는데, 이를 놔두고 정규직의 임금만 낮추겠다는 재계 쪽 논리는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김 원장은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핑계를 잡고 있다"고 재계 쪽의 태도를 비난했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3일 오후 2시 정책연구원 사무실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불공정한 원하청 구조 깨지 않고는 비정규직 해결 어렵다"

다음은 김태현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a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인터뷰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인터뷰 ⓒ 남소연

- 먼저 정책연구원의 개원을 축하드린다. 정책연구원의 개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설명해 달라.
"민주노총은 95년말 출범해 9년째가 된다. 대표적인 총연합단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전체 노동자계급의 법·제도 개선의 과제들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실제로 단기적인 대응 방식에 머물러 왔다. 중장기적인 민주노총의 진로나 과제 등에 있어 통일성을 갖추지 못하거나 단계적 사업 기획에 대한 연구가 그동안 이뤄지지 못했다. 정책연구원이 개원을 했다는 것은 중장기적 과제나 정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 정책연구원 초대 원장으로 내정된 계기가 있다면.
"정책연구원장은 민주노총 내 정무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민주노총 출범 때부터 사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정책실장까지 했다. 3년 전에는 정책실장을 그만두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했다. 노동운동의 요구와 과제를 잘 알고 있고 오랫동안 연구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적임자로 내정됐던 것 같다."

- 현재 정책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4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자문위원단의 협조가 큰 힘이 되겠지만 상근연구원이 너무 적어 연구활동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4명으로 출발하지만 노동관련 연구의 '베이스캠프'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연구위원을 6명, 8명으로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조만간 명실상부한 노동계의 씽크탱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연구위원들 중심으로 연구해서는 엄청난 과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 약 30명이 넘는 자문위원단을 구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적 학술단체와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함께 과제에 참여할 것이다. 당과도 협조를 해야 한다. 당 정책위원회와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업무 역할 분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연구원 자체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민주노동당, 연구자들을 모두 묶는 광범위한 틀을 만들어 연구에 매진할 생각이다."

-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주로 어떤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는가.
"노조활동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는 노동시장과 관련한 것이다. 제조업 공동화, 구조조정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시장과 관련된 정책적 과제가 중심이 될 것이다. 또하나 노사 관계 전반과 관련해 노동기본권의 문제,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노사관계의 상 등이 주요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방향과 정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의 혁신도 중요한 연구과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그간의 성장과정에서 현장의 토대가 많이 취약해져 왔다. 민주노총의 방침이 결정되더라도 시행이 잘 되지 않는 현상이 최근 발생하고 있다. 그런 것을 어떻게 해서 조직적으로 수습할 것인지, 그리고 민주노총의 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 민주노총의 위기극복 방안을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이 볼 때 현재 민주노총의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보나.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대중적인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의 출범까지 이르렀다. 자본으로부터의 자주성,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성, 전투성 등 3가지를 민주노총 운동의 전통이라고 우리는 얘기해 왔다. 그 과정을 통해서 노동조건의 개선, 조직의 확대를 이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문제들, 예를 들어 조직화된 노동자는 10%대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그 중 비정규직은 조직화되지 않아 민주노총의 대표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에 노사정 위원회의 참여 문제 등을 놓고 민주노총이 지그재그 행보를 해 왔다. 참여했다가 불참했다가 참여하고….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대응해 왔다기보다는 그때 그때의 정세에 따라 행보를 해왔다.

- 정책연구원의 출범이 향후 민주노총의 투쟁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격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민주노총의 투쟁방식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이해해도 되나.
"민주노총이 그동안 전투적 투쟁을 전개해 온 것은 사회적 조건의 구조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정부분 진전됐음에도 노동배제적 기조는 유지돼 왔다. 지난해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200명 가까운 노동자가 구속됐다. 일반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와 관련된 부분은 진전이 지지부진하고 노동자의 강제가 전제될 때만 진전이 이뤄져 왔다. 민주노총 운동의 전투성은 그 과정에서 필연적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총선을 기점으로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로 바뀌었는데, 절차적 민주주의 진전 뿐 아니라 노사관계와 관련된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냐에 달려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노동계보다는 정부 정책, 자본의 노무관리 전략에 따라서 합리적 대화가 가능할 경우 합리적 방식을 선택하는 것 아니겠나.

또 하나. 그동안의 투쟁이나 분쇄, 대안보다는 정부 정책 기조에 대한 반대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원 차원에서는 당면한 저지투쟁보다는 민주노총이 어떤 대안을 만들고 대안 속에서 쟁취할 과제들이 무엇인지 보다 심도있게 연구하게 될 것이다."

- 대안을 가지고 대응하겠다는 것은 '분쇄나 저지'라는 과격한 방식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나.
"거시적 변화 등에 좀더 천착을 해봐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획득했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올지, 그리고 정부 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면밀히 검토한 다음에 결정할 문제이다."

- 최근 민주노동당은 외국기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고 재계 쪽과의 접촉도 활발하게 갖고 있다. 노동계와 재계와의 이같은 접촉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전까지 재계는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도 현장에 내려가면 부당노동행위를 비일비재하게 저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동당이 13%라는 지지율을 획득하고 10명의 국회의원 배출하면서 더이상 배제만 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선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본다. 정말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탐색하다가 과거로 회귀할 것인지, 그 기로에서 머뭇머뭇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실질적인 상대로서 인정하는 방향으로 진전이 올 것인지 아닌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에 따라서 우리의 대응도 변화가 있지 않겠나."

a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인터뷰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인터뷰 ⓒ 남소연

-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설정은 향후 정계에서도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김 원장은 민주노동당 정책그룹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결합방식과 관계 설정에 관한 모범 모델을 가지고 있나.
"AFL-CIO와 민주당이 결합하고 있는 미국식의 경우 노조는 정책적으로 민주당과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식의 관계를 가지는 로비 단체 성격이 강하다. 유럽에서 당과 노동조합과의 관계는 크게 얘기를 하면 두가지 측면이 있다. 과거 프랑스 공산당의 경우 당이 노동조합을 장악한 관계였다. 즉 노조는 당의 외곽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자주성의 기초 하에서 연대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당과 노동조합이 각각의 자주성에 기초해 결합하고 연대하는 관계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민주노동당 당원의 43% 정도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민주노동당의 중심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당은 당대로의 틀이 있고 민주노총도 나름의 틀이 있다. 민주노총은 대중조직으로서 조합원의 일상적·대중적 요구에 기초해 운동과제를 풀어가는 독자적 투쟁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대립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현재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정례협의회와 정책협의의 틀이 마련돼 있다. 이를 통해 유기적인 협조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

- 민주노동당에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이 되려면 민주노총의 지분이 일정 정도 유지돼야 하지 않나. 최근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노동부문 대의원수 할당 문제를 놓고 마찰을 일으킨 적이 있다. 전농이 민주노동당에 결합함으로써 이같은 논란을 빚게 된 것 같다. 원만하게 해소할 방안이 있다면?
"당내에서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의 30%를 가지고 있다. 지난 정례협의회에서 그 중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을 전농에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30%(민주노총):15%(전농)는 너무 과도한 것 같다'고 해서 20%:10%로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제안을 하더라. 당원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43%인데다 한국노총 조합원까지 합치면 그 이상 아닌가. 그것을 일방적으로 당이 할 수 있느냐를 놓고 언쟁이 붙기도 했다."

- 어떻게 가야 하나. 전농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그렇다고 노동계 지분을 깎아서 배정하는 것이 말이 되나. 당에선 지난번에 통과됐다고 하는데…. 우리와 협의를 통해서 결정해야지 노동계 지분을 깎아서 조율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 최소한 민주노동당 대의원 지분의 30%를 유지하는 선에서 결말을 봐야 한다는 말인가.
"민주노총의 입장은 그렇다."

- 노동계 내 소수이긴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을 "부르주아 지배체제를 합리화·효율화하는 데 일조하고 전투적 투쟁보다 대화와 타협 중심의 '합리주의'를 만연시켜 적들의 공격 앞에 완전히 무장해제되는 위험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폄하하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회에 진출한다는 것은 새로운 영역에의 진출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더불어 위험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운동권만의 계급투쟁 영역에 머물러 혁명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의회 진출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고 극복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라고 할 수 있는 레닌도 짜르 정권 하에서 전단을 뿌리고 활동하지 않았나. 의회주의 극복을 위한 실천활동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 장 못 담겠다는 식으로 의회정치를 부정한다고 해서 극복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의원 보좌관제를 통해서 교정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에서도 의원단의 독자적 비대화를 막기 위한 방안들을 만들고 있지 않나."

- 비정규직 차별철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6월 임단협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할 예정으로 알고 있다. 재계 쪽도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으나 주로 정규직의 기득권 폐지를 전제로 하고 있어 노동계측과 마찰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의 인건비 비중은 11.4%까지 올랐다가 9∼10%로 떨어졌다. 반면 경상이익률은 매우 올랐다. 예를 들어보자. 제조업 대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체계 개선에 쓸 것으로 보나.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모두 저임금으로 다운될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더 낮추겠다는 뜻이지, 둘다 같이 끌어올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지 못하게 하기 위한 핑계를 잡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의 말은 맞지 않다.

근본적으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본다. 즉 원·하청간의 불공정거래의 문제라는 얘기다. 원·하청 노동자의 고임금 때문이 아니다. 현대나 삼성은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많다.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불공정 거래를 개선해야 하는 측면이 더 많다. 중소기업이 충분한 임금을 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의 원·하청 구조로는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고 해서 비정규직의 임금이 상승하지는 않는다."

- 결국 비용부담을 대기업이 떠안게 되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재계는 노조 쪽의 요구를 거부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나.
"고임금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축소하면서 정상 근무를 해도 사회적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또 사회적 임금을 확대해야 한다. 임금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최첨단 자본주의 한국사회가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본다."

- 재계 쪽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제조업공동화' 문제가 우리나라의 높은 임금 수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임금'과 '기업의 경쟁력' 이라는 모순적 관계를 풀어나갈 해법이 있다면?
"중요한 연구의 과제 중 하나이다. 개별 기업 차원의 경우를 들자면 현대자동차가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기업의 고용안정을 반드시 보장하고 해외공장을 신설하거나 국내 공장의 폐쇄, 이전할 때 노조와 합의 없이는 안된다는 식의 대안을 만들고 있다. 사실 이런 대안은 기업별 차원에서의 대책에 불과하다. 산업전체가 구조조정 과정에 있는 상황에서는 본질적 대안이 되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경제가 어려워지고 불황 상황에서 기업이 적자를 내면 구조조정을 안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우선적으로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임금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절대 맞지 않다. 그 논리대로라면 일본이나 독일의 기업은 이미 다 망했어야 하지 않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도 고학력화 되고있다. 아니 세계에서도 가장 학력수준이 높은 사회로 변신이 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저임금의 열악한 근로조건의 일을 눈높이를 낮춰서 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고성과·고임금'으로 가야 한다."

- 대우종합기계 매각방식을 둘러싸고 정부측과 민주노동당이 대립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차입형 이솝을 통해 부실기업의 노조 인수라는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재계나 채권단, 보수매체는 이같은 노조의 참여가 결과적으로 기업의 중장기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우리사주조합 방식의 경우 미국에서 가장 발달돼 있다. 미국은 우리사주조합이 실제로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사업장이 매우 많다. 그런 사업장의 성과가 떨어지느냐. 그건 아니다. 안정적인 지분을 통해서 인수합병의 위험으로부터 방어하고 있기도 하다.

김태현 정책연구원장 프로필

▲1995년 민주노총 집행위원(정책담당)
▲1996년 민주노총 기획국장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전문위원
▲1999년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 소장
▲1999년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2002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2004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재계가 그같이 반응하는 것은 자본의 구성에 있어서 과거의 전제적 경영전권 확보, 경영자가 좌지우지하는 방식의 낡은 틀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면서 영·미식을 얘기하는 데 우리사주조합 방식은 영미권에서도 대중화된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낡은 전제주의를 유지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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