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란다"

아이 셋을 둔 엄마가 돼서야 비로소 어머니 마음을 깨닫습니다

등록 2004.05.05 21:02수정 2004.05.0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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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볶아 줄까?"
"식빵 구워서 잼 발라줄까?"
"아니면 우유랑 시리얼 먹을래?"
어떻게든 식탁으로 불러들여 뭐라도 좀 먹여볼까 이것저것 메뉴를 읊어대며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본다. 자녀들의 편식과 밥투정은 엄마들의 공통 관심사요, 얘깃거리다.


어릴 적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끔씩 외손주들 앞에서 30여 년 전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많이 먹어라. 네 엄마가 어렸을 때에는 얼마나 입이 짧았는지. 내가 밥 한 술 떠 먹이려면 아주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단다. 밥그릇 들고 쫓아다니며 '산토끼, 토끼야' 한 구절 부르고 한 수저, 또 '나비야, 나비야'부르고 한 수저 떠 먹이곤 했지. 쯧쯧, 뭐가 그리 예쁘다고 그렇게 정성을 다해 키웠는지…."

이제는 수십, 아니 수백 번은 들었을 법한 내 어릴 적 이야기. 아이들은 외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저희들끼리 장난치며 수저 놀리기에 바쁘지만 어머니는 잘 먹는 손주들 모습에 마냥 흐뭇해 하신다.

사실 아이들을 낳아 기르기 전까지는 나도 어머니 말씀을 흘려 듣고 일부러 시큰둥한 표정으로 퉁명스런 반응을 보인 적이 많았다.

"왜? 안 먹으면 그냥 놔두지 그랬어. 누가 힘들게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먹이래요? 난 나중에 엄마처럼 그렇게 안 할 거야. 애들이 배고프면 지들이 알아서 먹지.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먹이면 버릇만 나빠진다고."


이런 나의 설익은 뾰족한 말에도 엄마는 나를 애써 설득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으셨다. 섭섭해 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늘 나지막이 이렇게 말씀하실 뿐이었다.

"그래도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란다."


배짱 좋게 '나는 엄마를 닮지 않겠노라'며 자신감을 보였던 내가, 소리를 질러가며 '밥 볶아주랴, 토스트 구워주랴' 하며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먹일 궁리를 하고 있다. 엄마 마음은, 정말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엄마는 미리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으로밖에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그 옛날 어머니, 당신의 심정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 셋을 낳고서야 뒤늦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다니 난 참 어리석다.

"엄마, 철없고 못된 딸… 뭐가 그리 예뻐 그 정성 다해서 키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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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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