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규 전 경남지사오마이뉴스 이종호
'상생의 정치'는 '한달 천하'로 끝날 것인가. 김혁규 전 지사의 차기 총리 기용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의 긴장이 다시 조성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누가 봐도 한나라당이 좋아할 사람이 아니며 결과가 뻔한데, 이런 사람을 총리로 거론하는 것은 상생의 정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김 전 지사의 총리지명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쉽게 말해 한나라당 공천으로 도지사를 세 번이나 지내다가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으로 간 '배신자'를 총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김 전 지사를 차기 총리로 지명할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상생의 정치를 얘기하지만, 한나라당이 세번이나 경남지사로 공천하지 않았느냐"면서 "하자가 있다면 그렇게 공천을 했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심판 판결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청와대측이 확인은 하고있지 않지만, 노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할 경우 일단은 김 전 지사의 총리지명이 유력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17대 국회 개원벽두의 상황을 예상하기는 어렵지않다. 총리인준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의 갈등이 전개될 것이고, 결국 여야간에 치열한 표대결이 있게될 것이다. 김 전 지사는 과반수 여당의 힘으로 총리인준을 받더라도, 제1야당의 반대 속에서 총리가 되는 상황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여야가 모처럼 다짐한 상생의 정치를 모색하는데 걸림돌로 자리할 것임은 쉽게 내다볼 수 있다. 그러면 김 전 지사를 차기총리로 지명하는 문제가 그같이 값비싼 댓가를 감수할만한 중차대한 일인가. 유감스럽게도 선뜻 동의를 하기가 어렵다.
솔직히 말해, 필자는 (경남지역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김혁규 전 지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노 대통령이 총리감으로 각별히 생각하고 있다면, 아마 능력이나 자질면에서는 손색이 없는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능력과 자질 이외의 부분, 그러니까 정치적 행보와 관련된 문제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김 전 지사의 총리기용을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자신들이 뻔히 반대할 것을 알면서도 그를 기용하려는데 대한 반감이 큰 모양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그같은 문제를 불문하고 대승적으로만 판단하면 최상이겠지만, 정치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이상 한나라당의 정서를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반대속에서라도 김 전 지사의 총리지명을 강행하겠다는 청와대의 변함없는 태도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김 전지사를 차기 총리로 꼭 기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아직 넓지않은 듯하다.
여권 입장에서야 총선을 앞두고 경남지역에서 열린우리당행을 택한 '결단'에 대한 신뢰와 보상의 의미가 있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렇기에 개운치 않은 부분이 남는다.
그냥 지역주의 구도를 넘어서려는 결단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김 전 지사에게는 계속 안전한 보상만이 주어졌다. 열린우리당의 지명직 상임중앙위원으로 임명되었고, 이번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로 안전하게 국회로 입성하였다. 여기에 다시 총리지명까지….
선거를 앞둔 당적의 갑작스러운 변경은 희생을 무릅쓴 결단의 모습일 때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김 전 지사같은 경우 지역구도 극복의 결단의 의미를 가지려면, 오히려 백의종군하거나 희생을 무릅쓰고 지역구에 출마하여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더 빛이 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의 상태에서 청와대가 김 전 지사 카드를 고집하는 것은 자칫 '좁은 의리'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어려운 때 힘이 되어주었으니까, 총리 자리를 주는 모양말이다. 청와대의 진정한 속뜻이 무엇이든간에, 보여지는 그림은 그렇게 되어있다.
이것은 단지 김 전 지사를 총리에 기용하느냐만의 문제는 아니다. 야당이 반대하면, 그리고 그 반대가 부당하다고 믿으면, 더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노 대통령의 과거 스타일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이 정작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노 대통령의 직무복귀가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그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사실 탄핵심판 판결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이다. 발목잡기식 정쟁으로 일관했던 한나라당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동시에 노 대통령도 오기와 기(氣)싸움의 정치를 벗어나 대통령으로서의 넓은 지도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국민여론의 최대 공약수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노 대통령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설혹 노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김 전 지사가 최적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제1야당이 현실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면 돌아갈 줄 아는 새로운 모습이 필요하다.
지금 김 전 지사 문제는 직무복귀 이후 노 대통령의 변화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과반수 여당'이라고 하지만 절반에서 불과 2석을 넘을 뿐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무더기 재선거의 결과에 따라서는 다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민심은 언제든지 냉정하게 돌아서서 '과반수 여당'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긴장감이 필요하다.
기존 방식의 고수냐, 아니면 새로운 모습의 선택이냐. 정작 무서운 것은 한나라당의 반대가 아니라, 총리인준 씨름을 지켜보게 될 국민들의 눈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