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위서>인물과사상사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국의 압박에 못 이겨 조선 정부는 서울의 삼전도에 청태종 공덕비를 세워야만 했다. 민족만대의 치욕이 될 공덕비에 비문 쓰는 것을 모두 사양하였지만 인조의 어명으로 오준(吳竣)이 차출되었다.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적 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치욕스런 글을 썼지만 이를 견딜 수 없어서 돌맹이로 붓을 잡았던 오른손 엄지와 모지를 찍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僞書)> 머리말 중에서.
모래알만큼 많은 글들 가운데 '참 글'과 '거짓 글'을 가려내기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진위(眞僞) 여부를 가리는 것 자체가 '진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짓 글', 즉 위서를 둘러싼 논란은 문자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의 무게를 자랑한다. 무릇 인간의 글이란 지극한 자기욕망의 투영물인 동시에, 철저한 시대적·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김삼웅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교수(전 대한매일 주필)는 최근 위서를 둘러싼 논란의 역사를 다룬 책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인물과사상사)를 출간했다.
오랫동안 친일언론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는 전작 <한국필화사> <한국곡필사> <금서> 시리즈에 이어, 이번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왜곡된 말과 글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특히 김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커다란 파장과 논란을 불러왔던 ▲소련 신탁통치 추진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함석헌을 음해한 당시 신문기사와 책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겨냥한 <동교동 24> 등을 다루고 있어 당시 '위서' 여부 자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이 새롭게 조명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책의 내용 중에는 고당 조만식의 <학병권유논설>을 날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친일언론인 고영한(당시 매일신보 평양지사장)이 자책감 속에 결국 자살로써 자신의 과오를 씻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 땅의 지식인·언론인들에게 '당신은 과연 자신의 글에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조용히 묻고 있다.
#1. 민족의 진로와 운명을 바꾼 동아일보 기사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 1면에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란 제목의 머릿기사가 실린다. 이 기사로 인해 전국은 찬탁·반탁 간의 격렬한 대립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자료에 따르면 소련은 신탁통치에 반대 입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반도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기에 열리던 시기에 나왔던 이 엉뚱한 기사가 나온 배경에 대해서 아직도 여러 추측이 무성한 상태다.
#2. 함석헌 음해했던 '박달나무'라는 가명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해 '할 말'을 다 하는 용기를 보여준 함석헌의 글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전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박정희 군부의 민정이양 약속이 지켜지지 않던 1963년 7월 29일 당시 <서울신문>에는 '박달수'라는 이름으로 함석헌을 음해하는 <'억지 울음' 속에 숨은 음험>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박달수라는 인물이 실재하는 사람인지 조차 여전히 미지수다.
#3. 김대중 죽이기의 전형, <동교동 24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6개월쯤 앞둔 그 해 6월 20일. 김대중 후보의 경호원이었던 함윤식씨 이름으로 출간된 <동교동 24시>는 정치권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는 한 사람의 경호원이 작성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김대중 후보의 온갖 사생활과 각계 인사들과의 은밀한 대화가 유려한 필체로 서술돼 있었다. 노태우 후보 진영은 이 책을 일급 홍보물로 선정, 무차별적인 살포 작업을 통해 김대중 후보 측에 커다란 상처를 준다.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김삼웅 지음,
인물과사상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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