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25

별들이 모여있는 집 2

등록 2004.05.14 08:02수정 2004.05.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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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줄여 놓은 모습이란다. 저 하늘도 바다도 산도, 저 별들도 말이다. 전부 우리 집에 모여 살고 있지."

인사성 밝은 백호는 그 할아버지 앞에서 공손히 큰절을 올렸습니다. 바리 역시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지리천문신장님인 것이 틀림 없었습니다.


금가루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새 한 마리가 끼루룩 울며 할아버지 머리 위로 날아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을 뻗자 그 새는 작은 꾀꼬리인 양 손 위에 사뿐이 앉았습니다. 지리천문신장님이 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새들은, 이 금가루들을 쪼아먹고 산단다. 이 새들이 금가루를 쪼아먹으면 다시 먹은 만큼 하루에 뿌려 새로운 금가루들을 만들어내는거야."

"그럼, 저 금가루들인 다 별인가요?"

"별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이 우주엔 단지 별들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 착한 영혼들도 있고, 그리고 나쁜 영혼들도 있고, 극락도 있고, 지옥도 있고..."

부인이 바리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집이 마음에 드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별도 있고 해도 보이고...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곳에 다 들어 있나요?"


천문신장님이 말했습니다.

"다 있다고 볼 수는 없지. 네가 알고 있는 세상 외에도 이 우주에 펼쳐져 있는 다른 세상은 아주 많단다. 셈을 해서 수를 센다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럼, 천국이랑 극락이랑 지옥 같은 것도 여기에 있나요??"

천문신장님이 지팡이를 들어 어딘가를 가르치셨습니다.

"거기 불그스름하게 빛나는 별이 보이지? 그곳 어딘가에 옥황상제님과 다른 하느님들이 살고 있는 천국이 있단다. 아마 백호와 네가 여의주에 기를 받아서 저 곳으로 가게 될 거야."

"그래요? 그럼 우리가 사는 곳은 어디 있는데요?"

천문신장님은 다시 복숭아만하게 금빛으로 빛나는 불덩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저기 어딘가에 있지."

"그래요? 세상에, 그렇게 먼데 제가 어떻게 저곳에 갈 수 있어요?"

그러더니 백호를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너 날 수도 있어?"

백호는 무안해 하며 말했습니다.

"난 날 줄은 몰라, 하지만, 우린 문제 없이 저 곳에 갈 수 있을 거야, 여의주에 기를 모아서 조왕신에게 가기만 하면."

천문신장님이 말했습니다.

"그래, 아주 멀어보이지만, 아주 가까운 곳일 수도 있단다. 내가 사는 곳도 바리가 사는 곳이랑 알고 보면 그리 멀지 않지만, 우린 한번도 만날 수 없지 않았니? 아무리 가까워도 이곳은 아무나 올 수 없는 것이니까 그렇다. 그렇게 가까워도 갈 수 없는 곳이 있듯이, 두 공간의 거리가 아무리 멀더라도, 가야할 사람은 꼭 가는 법이란다."

천문신장님은 갑자기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금빛으로 빛나는 깃털로 덮인 동물이 저 아래 복숭아 같은 불덩이로 다가가 입김을 훅 불었습니다. 그 불덩이는 조금 더 앞으로 움직였습니다. 다른 쪽 아래에서는 다른 한 마리가 은덩이 같은 구슬을 들고 날아왔습니다. 그 동물을 보며 천문신장님이 말했습니다.

"아직 그 나라엔 달이 뜰 때가 안됐어. 이 천지구슬을 한번 보란 말이야."

천문신장님이 방 한가운데 놓은 그 푸르스름한 지구의 위를 도포자락으로 한번 슥 문지르자, 여기 저기 부산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안에는 태양이 뉘엇뉘엇 지고 있었습니다.

"저 기린이 조금 있다가 입김을 불어서 태양을 마저 지게 하면, 그때 이 달을 가지고 오너라. 아직 일월궁전에서 아기들이 달을 밖으로 풀어놓지 않았단 말이다"

그 동물의 이름은 기린이었나 봅니다. 그 동물은 맑고 높은 소리를 한번 내더니 그 은덩이 같은 달을 물고 다시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천문신장님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루종일 세상에 달이 뜨고 해가 뜨는 시간을 계산해서 정확한 시간에 해와 달을 보내준단다. 바로 이 천지구슬이 그 시간을 가르쳐 주지."

그 푸른 지구의 위를 도포로 다시 한번 문지르자 눈으로 뒤덮인 도시가 나왔습니다. 천문신장님이 휘파람을 불자, 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그 도시 위에 모여 있던 연기 같은 것들을 날개로 모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윽고 그 천지구슬 안에 나타난 다른 도시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린이라는 동물이 다시 나타나서, 아까 그 연기들 틈으로 입김을 불어 태양을 집어넣었습니다. 바리는 너무 너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이 천지구슬은 어떻게 시간을 알려줘요?"

"그것은 바로 일월궁전에 가면 알 수 있단다. 지금은 아무리 설명해 줘도 알 수가 없어요. 여의주를 훔쳐간 붉은호랑이들은 바로 그 일월궁전에 들어가서 이 천지구슬을 자기 마음대로 운행하고 싶은 거야, 그러면 해와 달고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가 있는 거지. 일월궁전에 여의주를 가지고 들어가면 이 천지구슬을 맘대로 운행할 수가 있게 된단다. 그리고 일월궁전에 가기만 하면 맘대로 운행할 수 있는게 이 천지구슬만은 아니지."

바리 뒤에 서계시던 부인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들, 지금 삼신할머니가 아주 기다리고 계세요. 천주떡을 만들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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