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오래된 미래>를 읽을까? 라다크에 대한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은 흥미롭다. 지도상 어디에 있는지도, 어느 나라 소속인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가 이야기하는 라다크는 분명 관심의 대상이다. 왜일까? 굳이 베스트셀러라는 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한국과 혈맹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가적으로 주요 관심 대상도 아닌 그곳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뭘까?
<오래된 미래>는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가 16년간의 현지체험을 통해서 내놓은 책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작가는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 이상으로 라다크에서 생활했다. 그런 만큼 작가는 라다크 언어까지 알고 있을 정도다.
사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오래된 미래>가 여행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빡빡한 일정이 가득한 도심에 사는 사람들일 수록 오지에 대한 동경은 더 하지 않은가? 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위치한 라다크도 그렇게 여겨질 수 있다. 겉으로 본다면야 자원도 없고 기후도 좋지 않은 히말라야의 라다크 역시 동경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아마도 여행기 정도로 <오래된 미래>가 등장했다면 지금과 같은 관심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른 데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나아가 전세계에서 겪은 일을 지금 라다크가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문화를 갖고 살던 이들이 '서구의 문명'을 겪으며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오래된 미래>에는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히말라야의 라다크는 서구의 문명이 등장하기 전에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 곳이었을까?
"나는 또 검약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했다. 검약이라는 말은 서구에서는 늙은 아주머니들이나 좌물쇠가 채워진 식료품 저장실 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라다크에서 검약은 이 사람들의 번영의 기초가 되는 것인데, 아주 다르다. 제한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쓰는 것은 인색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것이 검약의 본래의 뜻, 즉 작은 것에서 더 많이 얻어내는 일이다. 우리가 어떤 것이 다 낡아서 아무 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내버릴 만한 경우에 라다크 사람들은 무언가 그 용도를 찾아낼 것이다. 어떤 것도 그저 내버리지는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짐승에게 먹일 수 있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은 땅에 기름이 될 수 있다.
"시간은 느슨하게 측정된다. 분을 셀 필요는 절대로 없다. 그들은 "내일 한낮에 만나러 올게, 저녁 전에"라는 식으로 몇시간이나 여유를 두고 말한다.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나타내는 많은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어두워진 다음 잘 때까지"라는 뜻의 '공그로트', "해가 산꼭대기에"라는 뜻의 '니체', 해뜨기 전 새들이 노래하는 아침시간을 나타내는 '치페-치리트'(새노래) 등 모두 너그러운 말들이다."
<오래된 미래 중>
핸드폰 밧데리가 없다고 조급해 할 필요가 없는 곳, 인터넷 연결 안된다고 울화를 터뜨릴 필요가 없는 곳, 그곳이 라다크의 모습이다. 또한 존 드 그라프가 <어풀루엔자>에서 인류 최악의 전염병이라고 밝힌 '소비중독 바이러스'가 침범할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때의 라다크가 공동체 생할을 영위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살만한 곳'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서구문명이 침범하면서 라다크의 고유문화는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 작가는 그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 중 한명으로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않으며 변화를 맞이한 라다크의 모습을 묘사한다.
"내가 라다크에서 관찰한 악순환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아마도 개인의 불안정이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이로 인해 또 개인의 자존심이 더욱 흔들린다는 것이다. 소비주의가 이 모든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정서적인 불안정 때문에 물질적인 신분상징에 대한 갈망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자기를 상당한 인물로 만들어줄 소유물을 얻고자 하는 충동을 부추기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이 물건 자체의 매력보다 훨씬 더 큰 동기이다. 실제로는 불가피하게 그 반대의 효과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찬양받고 존경받고 궁극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 물건들을 사는 것을 보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서구의 영향이 갑작스럽게 밀려옴으로 인해 일부 라다크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은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를 도매금으로 거부하고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열렬히 받아들인다. 그들은 현대성의 상징들, 선글래스,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 지나치게 작은 치수의 청바지 등을 향해 정신없이 쫓아다닌다. 청바지가 더 매력적이고 편안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대적인 삶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 중>
작가는 문명을 부정적으로 보지만은 않는다. 문명의 영향에서 라다크에 사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그렇다. 그럼에도 작가의 비판이 날카로운 것은 긍정적인 영향을 넘어서 라다크를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스개소리로 말한다. 서울과 동경의 풍경이 같고, 서울과 뉴욕의 풍경이 같다는 우스개 말. 어디를 가나 똑같은 브랜드가 보이고 똑같은 풍경의 젊은이들이 보이고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우려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라다크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개성 없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를 읽다보면 책 속의 내용들이 라다크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구문명에 대한 맹목적인 자세로 산업사회를 맞이한 이들, 심지어 서구문명의 발상지조차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오래된 미래>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목소리를 건네고 있다. 획일화에 동참해서, 불평하면서도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중앙books(중앙북스), 201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