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송이 마을' 젊은 아줌마들의 힘

부여 정보화마을 청룡마을을 다녀와서

등록 2004.05.17 13:54수정 2004.05.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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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서도 한 이틀 문 밖에 안 나가면 들녘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내가 그 지경이었는데 벌써 논에는 물을 가두고 써레질을 해놓았고 거기에 백로가 날아와 먹이를 찾는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자연이 그리는 그림을 감상하며 부여군 석성면에 ‘버섯 정보화 마을’에 다녀왔다.


정보화 마을이란 작년 어느 때인가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설치돼서 팔순 할아버지까지 인터넷을 즐기며 농업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광고처럼 정책적인 지원이 이루어진 곳을 말한다.

석성 버섯 정보화 마을의 공동 PC방
석성 버섯 정보화 마을의 공동 PC방오창경

충남 부여군에서는 석성면 현내리 청룡마을이 정보화 마을로 지정되었는데 이 마을은 양송이 버섯 생산량이 전국 1위을 차지할 정도로 원래 버섯이 유명한 마을이다.

이런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도 사후 관리가 되지 않으면 그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인력도 부족하고 재원도 없는 농촌 마을은 더 그렇다. 그런 차원에서 부여군에서는 정보통신 담당부서와 행정자치부의 협력으로 적극적인 ‘석성 버섯 정보화 마을’ 알리기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그 날은 한화그룹과의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 직원들이 사전 답사차 마을을 방문한 날이었다. 나 역시 이 마을의 홍보 차원에서 초청되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버섯 마을답게 재배사들부터 눈에 띄었고 집들도 붉은 벽돌로 지은 양옥집들이 즐비한 것이 어지간한 전원주택 단지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 동네와는 분위기부터 다른 부촌처럼 보였다. 역시 양송이버섯이 마을 사람들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었다.


회관에 모인 석성 버섯 마을의 젊고 세련된 아줌마들
회관에 모인 석성 버섯 마을의 젊고 세련된 아줌마들오창경

더 놀라운 사실은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들이 바쁜 마을회관 주방에서였다. 도시 못지 않게 젊고 세련된 주부들이 활력 넘치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요즘 시골 마을에 이 마을처럼 활기와 젊음이 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과 행정기관 사람들이 일정대로 움직이는 동안, 나는 주방의 젊은 주부들 틈에서 알려진 정보들 사이의 틈새를 찾다가 이 마을의 주부들 중에는 6자매가 한 동네에서 살면서 양송이버섯 재배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 6자매로 인해 젊은 주부들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알 수 있었다.


6자매의 맏언니인 박경자(44)씨를 필두로 경선, 경남, 경순, 경애, 경화씨가 함께 양송이를 재배하면서 모여 살고 있다. 맏언니 경자씨가 양송이 재배를 시작하면서 나머지 동생들도 합류하게 된 것인데 바쁠 때는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오순도순 살고 있다고 한다.

원래 맏언니만 이 마을에서 살았지만 나머지 동생들이 언니의 권유로 한 명씩 귀향을 하다보니 6자매가 다 모이게 된 것이었다.

남자 형제들과 달리 여자 자매들은 육아와 가사 노동 등을 공유하면서 아쉬운 소리도 쉽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 살면 당연히 좋은 점이 더 많다. 거기에 귀향한 자매들이 재배하는 양송이는 종균 상태에서 상품까지 45일밖에 안 걸리는 현금성이 높은 작목이라 전망도 밝으니 도시 생활이 부럽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양송이 재배로 소득이 높아지다 보니 몇 년 사이에 귀농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일은 힘들지만 돈벌이가 확실하게 되는 일이 있다면 시골로 살러 오겠다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 마을은 보여주고 있다.

모처럼 시골 동네에서 만난 젊은 활기들로 기분이 좋았는데 양송이로 만든 음식들이 다시 한 번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양송이는 피자에 토핑으로나 얹고 삽겹살 구울 때 함께 구워먹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렇게 쓰이는 양송이와, 청룡 마을에서 나오는 양송이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청룡마을의 양송이는 마치 하얀 달걀처럼 생긴 것이 단단하고 야무졌다.

양송이 고추장 회무침
양송이 고추장 회무침오창경
그것으로 초고추장 회무침과 부침개를 했는데 생선회인지 버섯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쫄깃쫄깃한 맛이 있었다. 같은 부여 사람이라서 내가 그 마을에 점수을 후하게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이 양송이 요리한 것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대고 더 달라고 주방을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행정자치부 지원 사업으로 설치된 공동 PC방인 이 마을의 정보화센터에서 마을을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보고 난 후에는 양송이버섯 재배사를 둘러보고 마을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마당마다 뒹구는 아이들의 장난감과 자전거 등의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서 흘러 넘쳤던 젊은 생기의 증거를 마을 곳곳에서 그렇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지금 국가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렇게 농촌 마을에 사는 젊은 주부들이 도시를 부러워하지 않는 마을이 있는 한 아직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버티는 힘은 이런 농촌 마을의 젊은이들에게 나온다. 그래서 정보통신의 혜택만큼은 도시보다 ‘석성 양송이버섯 마을’ 같은 농촌 마을에는 특혜를 줘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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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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